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이후 남북 경협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판문점 선언’ 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조선일보 DB

“요즘 하루 3~4건씩 민통선 지역 땅을 사려는 투자 문의가 오고 있다. 하지만 올해 나와 있던 땅은 모두 팔렸고, 팔려고 했던 매물도 다시 회수하는 분위기다. 경기도 문산 일대 농지 가격이 20~30%가량 올랐다.”(파주시 아동동 부동산 중개소 대표)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남북 간 교통 인프라 확충 등이 가장 먼저 이뤄진다는 점에서 국내 건설사들의 기대가 크다. 남북 경제협력으로 국내 경기도 한층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건설사 관계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인해 남북 경협이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판문점 선언에는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착수, 경제특구 건설 등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의 10·4 선언 합의 사업을 적극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경협 확대의 기반이 되는 경의선 등의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작업이 조만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들은 2년 전 가동이 중단된 개성공단을 비롯해 금강산 관광, 경의선 철도 사업 등이 어떻게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14년 설립한 통일경제위원회를 ‘남북경제교류특별위원회(가칭)’로 바꿔 다시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대한상공회의소도 남북 경협 준비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개발사업권을 가진 현대아산 역시 사업 재개를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지구는 이미 시설물이 건립돼 있어 보수공사만 하면 언제든지 사업 재개가 가능하다.

국내 기업들이 가장 주목하는 분야는 철도와 도로·항공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이다. 경협 활성화에 대비해 남쪽의 인적·물적 자원이 이동할 인프라 사업이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박용석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산업정책연구실장은 “북한의 노후화된 교통 인프라와 에너지 시설, 관광, 지하자원 개발 등 대규모 건설 수요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남북 경협 활성화는 한반도 전체의 경제 성장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독일 베를린 선언에서 밝힌 ‘한반도 신경제 지도’ 구상을 담은 휴대용저장장치(USB)와 책자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한 한반도 신경제 지도의 핵심은 ‘3대 벨트’ 구축이다. 한반도의 동해안과 서해안을 남북으로 잇고 중앙의 비무장지대(DMZ)를 개발하는 ‘H’자 형태의 벨트 구축을 통해 한반도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 북방경제연계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부산~금강산~원산~나진으로 연결되는 동해안 벨트(에너지·자원)와 목포~서울~개성~평양~신의주를 잇는 서해안 벨트(산업·물류)의 양축을 DMZ로 연결해 H라인을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이번 판문점 선언에도 ‘1차적으로 동해·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한다’란 합의가 포함돼 있다.

3대 벨트 중 동해안 벨트는 금강산, 원산·단천, 청진·나선을 남북이 공동 개발한 후 우리 동해안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계획이다. 현재 끊겨 있는 남북 구간(110㎞)이 연결되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연계해 남한의 사람과 물건을 유럽까지 보낼 수 있다. 여기에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설악산·원산을 잇는 국제관광협력 사업도 포함된다. 또 단천 자원 개발 협력, 남·북·러 3각 에너지 협력 사업인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도 동해안 벨트에 포함돼 있다.

서해안 산업·물류·교통 벨트는 수도권, 개성공단, 평양·남포, 신의주를 연결하는 사업으로 경의선 개보수 사업, 서울~베이징 고속철도 연계 등 교통 인프라 건설이 핵심이다. 경의선(서울~신의주)은 이미 2004년 연결돼 2007년 12월부터 1년간 총 222회(문산~개성) 운행됐다. 운행이 중단됐던 경의선이 복원되면 평양·신의주를 지나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될 수 있다. 인천~개성~해주를 잇는 서해 복합물류 네트워크에 중국 도시가 연결되는 셈이다.

서해안 벨트에는 개성공단 재가동 및 제2 개성공단 건설, 서해 평화경제지대 조성 등도 주요 내용이다. 서해안은 잦은 충돌이 있던 지역이기 때문에 경협을 통해 평화를 구축하는 상징적인 벨트가 될 수 있다.

DMZ 환경·관광 벨트는 한강 하구부터 DMZ를 가로지르는 경기 접경 지역을 생태·환경·평화·관광 벨트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 지역은 생태 및 역사관광 잠재력이 크고, 긴장이 완화되면 DMZ 주변에 공동 시장 등이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남북 경협 활성화의 최대 수혜지로는 강원도 고성·철원, 경기도 파주·포천·연천 등이 꼽히고 있다. 특히 정부가 제2 개성공단을 파주에 조성한다는 계획이어서 경기 북부 지역이 경제 중심지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잠재 가치가 최대 3조9033억달러에 달하는 북한 내 광물 자원 개발 사업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북한에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소재인 희토류가 상당량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 경협은 북한뿐 아니라 성장 정체에 빠진 남한에도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재계에서 대북 경협 특수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낸 것도 이 때문이다.


“남한식 개발방식 밀어붙여선 안돼”

남북한 경협 체제가 구축돼 남북 경협이 이뤄지면 한반도 북방 지역이 신흥 경제권역으로 부상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경제 대국인 한국·중국·일본·러시아가 인접해 있는 북방 지역은 오래 전부터 성장 잠재력이 높은 지역으로 주목받아 왔다. 그동안 개발 발목을 잡아 온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해소되고 경협이 본격화되면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버금가는 경제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용화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북 경협에 따른 장기적인 경제적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며, 한반도 북방 지역이 거대한 경제권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나친 기대감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남북 간 경협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가 풀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5월 열리는 미·북 간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부분에 상당한 진전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 없이는 남북 경협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 중심의 경제 개발 방식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저개발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 어떤 산업이 진출해야 할지, 또 적합한 성장 방식은 무엇일지에 대한 남북 간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비핵화 문제 해결보다 경협이 앞서 나가선 안 된다”며 “북핵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북한의 인적 자원 개발 등이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도 우리 입장에서 만든 개발 방식”이라며 “이를 밀어붙이긴 보단 미래 산업 발전 과정을 감안해 북한에 적합한 성장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