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 입주를 앞둔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아파트 단지. 사진 조선일보 DB
올해 말 입주를 앞둔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아파트 단지. 사진 조선일보 DB

“9·13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지역 매수 대기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섰다. 반면 전세 수요가 늘어 전세금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9·13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자,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들이 내놓은 전망이다. 두 달이 지난 현재, 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10월 말 이후 서울 아파트 주간 전세금 변동률이 5주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가을 이사철 피크인 10월 말 서울 전세금이 떨어진 건 2012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꺾인 데 이어 전세 시장도 함께 안정을 찾은 모습이다. 통상 전세 시장 움직임은 무주택자나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사는 투자자에게는 주거·투자비용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뿐만 아니라 매매 가격의 선행지표로 시장을 예측하는 근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서울 전세 시장은 계속 안정세를 보일까.

연말쯤 공사가 마무리될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는 전세 시장을 예측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파트다. 9510가구로 단일 단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아파트 입주는 전세 공급에 직접 영향을 미쳐 주변 지역 전세금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입주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지금도 이 아파트가 전세 시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불확실하다. 현지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에 따르면 이 아파트 전세는 전용면적 84㎡가 7억원에 나와 있지만 세입자들이 더 떨어질 것으로 기대해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반면 집주인들은 전세금이 다시 오를 것으로 보고 호가(呼價)를 낮추지 않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 아파트 전세 거래 건수는 지난 8월 이후 한 달에 10건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입주가 가까워질수록 전세금이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최근 대출 규제가 심해져 집주인들이 잔금을 치르고 직접 입주하기보다 전세 매물을 많이 내놓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세금이 다시 오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헬리오시티를 시작으로 서울 동남권에 몰린 아파트 입주 물량이 한동안 전세금을 끌어내릴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전세 공급 확대는 일단 인접 지역에 영향을 미치지만 결국엔 서울 전체로 퍼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동남권 준공 물량이 많았던 2008년과 2016년에도 전세 가격이 안정됐었다”며 “연말 헬리오시티 입주를 시작으로 내년 하반기 서울 강동구 중심으로 준공 물량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전세 시장 안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강남 4개구(강남·서초·송파·강동)와 경기 성남·하남시 등 서울 동남권 일대 입주 물량은 약 2만5000가구, 내년에는 2만2000가구에 달한다. 내년 1분기 강남구 개포동 1957가구, 2분기 강동구 명일동 1900가구, 3분기 강동구 고덕동 4932가구, 4분기 강동구 상일동 3604가구가 각각 입주할 예정이다.

전세 시장 안정을 예상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임대소득 과세(課稅) 제도 시행이다. 지금까지 집주인들은 월세를 선호했다. 금리가 낮아 전세 보증금을 받아도 굴릴 곳이 없는 탓이다. 그런데 최근 집주인들 사이에 전세 선호도가 다시 높아지는 추세다. 내년부터 연간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에 분리 과세가 시행되면 전세가 세금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 보증금이 과세 대상에 포함되지만 3주택 이상 보유자이면서 보증금 합계액이 3억원을 넘길 때만 적용된다. 1주택자와 2주택자는 내년 이후에도 전세 보증금에 대해 여전히 비과세를 받을 수 있다.

전세 수요도 예전보다 줄었다. 우선 서울에서 전세금이 오르던 시기에 세입자들이 집을 많이 샀다. 한때 집값 대비 전세금 비율이 70%에 육박하면서 세입자들이 주택 구입 능력을 갖춘 경우가 많았다.

서울지역 세입자들이 높은 전세금을 피해 경기도 등 주변 지역으로 이사한 것도 전세 수요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한 인구가 매년 10만 명에 달한다. 올 들어 9월까지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한 인구는 모두 9만9343명으로, 연말까지13만 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경기도에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많고 교통 여건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전세금 떨어져도 집값 당분간 유지될 듯

관건은 전세금 약세가 앞으로 매매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일반적으로 전세금 하락이 시차를 두고 매매가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는 전세금이 떨어지면 이론적으로 매매 수요가 줄어드는 탓이다. 전세금 하락으로 무주택자의 주거 비용이 줄어 굳이 집을 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또한 집주인이 전세 계약 만기에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면서 집을 매물로 내놓을 수 있다.

과거 통계 자료를 보면 전세금은 실제로 매매 가격의 선행지표로 작용해 왔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2001년 서울 전세금 상승률이 둔화하기 시작해 2004년까지 이어졌다. 매매 가격 상승률은 이보다 1년 후인 2002년부터 꺾였다.

2008년 이후에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전세금이 먼저 오른 후 매매 가격이 따라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 매매 가격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꾸준히 하락하는 동안 전세금은 계속 올랐는데, 2013년부터 높은 전세금이 매매 가격을 밀어 올려 매매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집값을 끌어올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갭(gap) 투자’가 앞으로 어려워진다는 점에 주목하는 해석도 있다. 지난 몇 년간 서울에서 전세 낀 아파트를 살 때 매매 가격과 전세금 차액(갭)이 보통 1억~2억원 정도였다. 여기서 전세금이 1억~2억원 떨어지면 갭 투자의 투자 금액이 두 배가 되므로 투자 유인이 많이 떨어진다.

다만 올해의 전세금 하락이 당장 내년 집값을 끌어내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실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내년 주택 시장 전망 자료를 통해 수도권 집값이 0.2%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서울 집값 하락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허윤경 연구위원은 “고가(高價) 주택 수요자인 고소득층과 자산가들이 안정적인 소득과 자산을 기반으로 주택 장기 보유를 선택하고 있어 하락장에서도 서울 집값을 지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