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동에 위치한 음식점 ‘마이타이’. 홍씨는 이태원동에서 이 음식점을 포함, 다수의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이정은 인턴기자
이태원동에 위치한 음식점 ‘마이타이’. 홍씨는 이태원동에서 이 음식점을 포함, 다수의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이정은 인턴기자

“매출의 50%가 임대료로 빠져나갑니다. 사람은 줄었는데 임대료는 그대로라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이태원 경리단길 ‘장진우 거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장모(45)씨는 걱정이 크다. 직원 월급과 재료비 등 비용을 지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임대료는 경리단길 전성기 시절 수준으로 높게 유지되고 있어서다. 장씨는 “장진우 거리는 고즈넉한 분위기와 특유의 고급 레스토랑으로 사람이 붐볐다”면서 “이제는 유동인구 자체가 줄어 평일 저녁은 고사하고 주말 저녁 장사도 시원치 않다”고 말했다.

이런 고충은 장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이태원 요식업계 터줏대감인 방송연예인 홍석천씨는 “이태원역 인근에서 운영하던 식당 두 곳을 폐업한다”면서 “‘경리단길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경리단길은 이태원역 상권에 비해 인근 지하철역(녹사평역)과 거리도 있어 상권 침체 현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홍씨는 지난해 10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현재 경리단길은) 건물주의 과도한 월세 인상과 턱없이 부족한 주차공간, 그로 인한 단속의 연속이다. 젊은 청년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가득했던 가게들은 이미 떠나버렸거나 망해버렸다. (그렇지 않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버티는 가게가 매우 많아졌다”고 했다.

경리단길은 5년 전부터 이국적인 분위기로 외국인을 포함한 국내 방문객을 모으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이에 맞춰 임대료도 폭등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경리단길의 임대료는 2015년 대비 2017년까지 10.2% 올랐다. 서울시 평균(1.8%)보다 6배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미군 기지가 지난해 이전되고, 인기 상권이 망원동, 익선동 등으로 차례로 넘어가면서 위기를 맞았다. 인근에는 대형 회사나 지하철역이 없어 고정적인 유동인구도 부족하다.

지난 22일 용산구 경리단길 대형 상가에 임차인을 구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이정은 인턴기자
지난 22일 용산구 경리단길 대형 상가에 임차인을 구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이정은 인턴기자

경리단길 유명 가게들은 임대료 부담으로 거리를 떠나고 있다. ‘프랭크’와 ‘에끌레르 바이 가루하루’ 등 이태원 대표 빵집들도 자리를 떴다. 경리단길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A(51)씨는 “작년부터 매물이 30% 정도 더 나오고 있다”고 했다. 역세권이어서 끄떡없다던 이태원역 인근 상권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2018년 3분기 중대형상가 공실률이 21.6%에 달하면서 서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공실 기간이 길어지자 건물주들도 뒤늦게 경리단길 임대료를 낮추고 있다. 유한윤 행복한부동산 공인중개사도 “350만원에 임대를 내놓았던 공간이 3개월간 팔리지 않자 70만원을 내려 280만원에 계약을 맺었다”면서 “현재 경리단길 임대료 신규 계약 가격은 전성기 때보다 30% 떨어진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신규 계약이 아닌 기존 계약 관계에서는 임대료 시세를 낮추기 어렵다. 임차인이 폐업을 선언하지 않는 이상 건물주도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인하하는 데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임대료가 낮아지면 상가 가치가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고, 건물 매입 시 마련한 담보 대출을 갚기도 어려워진다. 이호성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사무국장은 “기존의 건물주들은 부채가 (상대적으로) 적으니까 긍정적으로 인하를 고려하지만, 용산 지가가 높을 때 건물을 구입한 건물주들은 부채가 있기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지난 22일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거리 1층에 ‘임대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김소희 기자
지난 22일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거리 1층에 ‘임대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김소희 기자

임대인과 임차인 간 상생 모델 필요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상권 침체로 건물주들이 더 큰 손해를 보는 상황을 막기 위해 하방 경직성이 높은 임대 방식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월세와 보증금을 이원화하고 관리비를 받는 고정적인 임대 계약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차인의 매출에 비례해 임대료를 책정하는 방식이나 관리비를 소유자와 임차인이 공유하는 방식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백화점들은 입점 업체들의 매출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임대료를 조정해주기도 한다”면서 “지역 상권에서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만하다”라고 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직접적인 협력도 필요하다. 홍석천씨는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일부 건물주는 이미 임대료의 과도한 폭등에 대한 우려를 잘 알고 있고 이제 현실화해야 한다는 데 동감하고 있다”라며 “임대료 폭등 문제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사람이 모이는 거리를 만들면서 상생의 모델을 만들 때 풀릴 수 있다”고 했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상생을 도모하는 사례도 있다. 성수동은 지난 2015년 10월부터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시범구역을 선정하고 임대인과 임차인 간 상생협약을 추진했다. 임대료를 현실적 수준으로 조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 2017년 하반기 상가임대료(보증금 제외) 평균 인상률은 4.5%로 2016년 하반기 18.6% 대비 14.1%포인트 하락했다.

국토교통부도 지난 2일 ‘상생협약 표준안’을 마련해 고시한다고 밝혔다. 도시재생구역 내 상가를 상가임대차보호법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빌려준 건물주는 리모델링 비용 등을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받을 수 있고,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상가를 마련해 최대 10년까지 저렴하게 빌려주는 상생협력 상가로 올해부터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임대인-임차인-관’을 잇는 삼각 협의체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임대료를 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거리 활성화 방안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석천씨도 경리단길의 문제 중 하나로 ‘주차 공간 부족’을 꼽으면서 “주차장을 마련하는 문제는 건물주와 서울시, 구청이 함께 나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대중 교수는 “기존 상가 연합회에는 임차인만 들어가 있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임대인도 함께 참여해서 거주자 연합 단체를 꾸릴 필요가 있다”면서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이 ‘거리 살리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바라볼 수 있도록 관이 도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