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구스코(Ralph Gusko) 바이어스도르프 한국 지사장, 바이어스도르프 니베아 마케팅 매니저, 바이어스도르프 동유럽 지사장
랄프 구스코(Ralph Gusko)
바이어스도르프 한국 지사장, 바이어스도르프 니베아 마케팅 매니저, 바이어스도르프 동유럽 지사장

지난 몇 년간 한국 스타트업은 놀라운 역동성을 보여줬다. 특히 K뷰티의 성장이 인상적이다. 작년 여름, 스타일난다의 자체 화장품 브랜드 쓰리컨셉아이즈(3CE)를 눈여겨본 프랑스 코스메틱 브랜드 로레알(L’Oréal)은 스타일난다를 6000억원에 인수했다. 재작년에는 영국의 코스메틱 브랜드 유니레버(Unilever)가 국내 화장품 업체 AHC를 3조원에 인수했다. 그리고 2019년 봄, 파란 통의 니베아 크림을 생산하는 독일 스킨케어 기업 바이어스도르프(Beiersdorf)가 한국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창업 기획자)로 나섰다. 전도유망한 뷰티 스타트업을 발굴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며 ‘니베아 액셀러레이터(NIVEA Accelerator·이하 NX)’ 프로그램을 알린 것이다. 4월 2일, NX 1기가 한국에서 최종 선발됐다. NX 프로그램이 본격 시작하자 랄프 구스코(Ralph Gusko) 바이어스도르프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는 4월 중순 아예 거주지를 한국으로 옮겼다. “왜 유럽 국가가 아닌 한국을 무대로 삼았느냐”고 묻자 구스코 대표는 “한국 뷰티 스타트업 생태계가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라 답했다.

구스코 대표는 한국과 연이 깊다. 한국인과 결혼했으며 이미 1995~2001년 한국에서 거주한 바 있다. 1997년에는 바이어스도르프 한국 지사장을 지냈다. 또 5월에는 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ADeKo) 포럼에서 강연이 예정돼 있다.

구스코 대표는 한국의 빠른 발전과 역동성에 주목하면서, 급속한 기술 발전 속에 사라져가는 ‘휴먼 터치’를 이야기했다. “내 피부를 스스로 느끼는 것, 더 나아가 타인의 피부와 접촉하는 것, 이런 ‘휴먼 터치’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감성과 기억은 인간의 손길을 통해 생성되고 보존된다.”


NX 1기로 선출된 스타트업 대표들. 사진 바이어스도르프
NX 1기로 선출된 스타트업 대표들. 사진 바이어스도르프

한국에서 NX 프로그램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바이어스도르프는 파트너십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137년 전, 약사였던 폴 카를 바이어스도르프(Paul Carl Beiersdorf)와 피부과 전문의인 폴 거슨 운나(Paul Gerson Unna) 박사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회사가 설립됐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LG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우리 제품을 한국에 소개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협력관계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 개발과 신시장 진출의 기회를 얻었다. 이제 그 기회를 한국 스타트업에 환원하겠다는 것이다. NX 프로그램의 운영 파트너는 글로벌 공유 오피스 업체 위워크(WeWork)다. NX 1기 스타트업들이 다양한 멘토와 일할 수 있는 위워크 사무소가 6월 홍익대 인근에 생긴다. 나도 그곳에서 일하며 협업할 예정이다. 독일 등의 유럽 국가가 아닌 한국을 NX 프로그램의 첫 무대로 택한 이유는 그만큼 K뷰티가 독보적 위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K뷰티는 전 세계적으로 ‘혁신적 화장품’의 대명사다. 한국 스타트업의 압도적인 숫자뿐 아니라 소비자의 개방적인 성향 또한 매력적인 사업 환경을 조성한다. 다양한 규모의 생산자와 활발한 외부 협력이 가능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요소다. 그래서 ‘한국에서라면 요즘 스타트업들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한국을 NX 프로그램의 출발지로 삼은 배경에는 이런 윈윈 전략이 있다.”

NX 1기로 선출된 스타트업은 ‘언파코스메틱(Unpa)’ ‘레지에나(Reziena)’ ‘리메세(Limese)’ ‘글로우힐(Glowhill)’ ‘판다(Panda)’ 등 총 5곳이다.

NX 1기와 어떤 협력 방안을 생각 중인가.
“협력 방법은 각 스타트업의 특성이나 장단점에 따라 다르다. 각각의 기업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가 판매일 수도, 기술일 수도, 홍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타트업을 뽑는 기준이 다양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NX 1기 중에는 이미 여러 번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상당한 규모를 가진 스타트업이 있지만,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 자체가 무척 흥미로운 소규모 스타트업도 있었다. 물론 그 아이디어가 현실화하려면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다양한 스타트업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며 우리가 어떤 부분을 지원할 수 있는지 면밀하게 살폈다. 이를테면 인도 시장에 진출한 전자상거래 스타트업 ‘리메세(Limese)’와 바이어스도르프 인도 지부의 협력 방안을 모색 중이다. 뷰티 디바이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레지에나의 경우 함부르크에 있는 바이어스도르프 R&D센터가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유럽 최대 규모의 스킨케어 R&D센터다. 또 NX 1기는 각각 15만 유로(한화 약 2억 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지원금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NX 프로그램에서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멘토링이다.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 능력과 변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지속적인 신뢰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NX 1기로 선발된 스타트업과 바이어스도르프는 말 그대로 서로 다른 세상에서 왔다. 오랜 기간 소비자에게 지속적인 신뢰를 받아온 바이어스도르프와 혁신적이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 스타트업이 만난 것이다. NX 스타트업들이 혁신과 품질로 경쟁에서 이기고, 오랜 기간 소비자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지원하고 싶다. 중국 뷰티 업계가 점점 커지면서 C뷰티와 K뷰티의 경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앞으로 이런 전략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현재 바이어스도르프가 직면한 과제는 무엇인가.
“바이어스도르프는 전통적인 스킨케어 기업으로, 페이스케어보다는 바디케어용 제품이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 다양한 페이스케어 제품을 선보이는 것이 당장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킨케어 업계로 범위를 확대한다면,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과제가 있다. 스킨케어 제품은 휴먼 터치, 즉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다양한 전자 기기를 통한 의사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많은 사람에게 타인의 피부를 만지는 것보다 유리 화면을 두드리는 게 더 중요해졌다. 그러나 니베아의 역사에는 자녀의 몸에 주저없이 니베아 제품을 발라주던 수많은 어머니가 있다. 그래서 많은 이에게 니베아 크림 냄새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향’이다. 우리는 이런 신체 접촉의 기억과 감성을 중요시한다. 어머니의 보살핌은 니베아의 중요한 브랜드 이미지다. 이런 요소를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인간의 손길이 갖는 의미를 스킨케어 제품을 통해 강화하는 게 두 번째 과제다. 기술 발전이나 디지털화를 비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재미있게도 기술 발전의 어두운 면 또한 기술로 극복 가능하기 때문이다. 올해 초 바이어스도르프 사내 스타트업이 유치원 앱 ‘CARE’를 출시했다. 원래 사내 유치원에서만 사용할 예정이었지만, 반응이 좋아 독일 전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유치원 교사와 부모는 CARE를 통해 누가 아이를 보살피는지, 아이의 피부나 건강 상태 등은 어떠한지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이렇듯 사람 간 접촉, 돌봄의 기억은 스킨케어 제품의 브랜드 파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