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운영자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왼쪽), ‘펜앤드마이크 정규재TV’ 운영자 정규재 전 한국경제 논설고문.
‘신의 한 수’ 운영자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왼쪽), ‘펜앤드마이크 정규재TV’ 운영자 정규재 전 한국경제 논설고문.

정치·사회 분야에서 한마디씩 하던 ‘왕년의 논객’들이 유튜브로 모여들고 있다. 특히 50대 이상 우파 성향 지식인이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대표 선수는 정규재 전 한국경제 논설고문. 정 고문은 7년 전인 2012년, ‘펜앤드마이크’라는 우파 성향 미디어 채널을 유튜브에 열었다. 비슷한 시기에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은 ‘황장수의 뉴스브리핑’,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조갑제TV’를 만들었다. 각종 종편 시사 프로그램 패널로 활동했던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신의 한 수’로 유튜브에 터를 닦았다. 뱅모(bangmo)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박성현 전 뉴데일리 주필도 5년 전부터 꾸준히 유튜브 영상을 올리며 미·중 무역전쟁 등을 파헤친다.

우파 논객이 만든 유튜브 채널은 문재인 정부 들어 또 한 번 늘었다. 정치평론가로 활동 중인 고성국 박사,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국제 정치 전문가인 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와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가 2018년을 전후로 유튜브에 채널을 열었다. 최근에는 정치·사회 평론을 넘어 국제 정세(이춘근 대표,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전옥현 전 국가정보원 1차장), 경제 지식(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공병호 전 자유기업원 원장)을 논하는 지식인이 등장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유튜브 관련 통계 업체 빅풋(Bigfoot)에 따르면, 5월 21일 기준 한국인이 개설한 정치·사회·경제 관련 유튜브 채널은 116개다. 구독자 수 기준 상위 10개 정치·사회·경제 채널 중 50대 이상 논객이 운영하는 채널이 9개다. 1위는 ‘유시민의 알릴레오’로 더 잘 알려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79만 명)’, 그 뒤를 ‘신의 한 수(71만 명)’ ‘펜앤드마이크(45만 명)’ ‘황장수의 뉴스브리핑(39만 명)’ ‘고성국TV(34만 명)’ ‘진성호 방송(진성호 전 새누리당 의원 운영·30만 명) ‘뉴스타운TV(손상윤 메디팜뉴스 회장 운영·29만 명)’ ‘TV홍카콜라(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운영·27만 명)’ ‘가로세로연구소(강용석 변호사 운영·27만 명)’가 따른다. 이들 채널 운영자 중 강용석(50) 변호사가 가장 젊다. 최연장자는 ‘TV홍카콜라’의 주인공 홍준표 대표로 65세다. 10위권에선 ‘배승희 변호사(24만 명)’ 운영자인 배 변호사만 30대다.

유튜브는 더 이상 10~20대 젊은층과 좌파 논객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튜브에서 50대 이상이 중요한 소비자이자 생산자로 부상한 이유를 짚어봤다.


중장년층, 3040보다 유튜브 더 봐

우파 논객과 이를 지지하는 중장년층은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유튜브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동영상 스트리밍을 지원하는 4세대 이동통신(4G) 서비스가 2011년 등장한 이후,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서 방송을 보는 풍경이 사라졌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8년까지 KBS·MBC·SBS 등 지상파 시청률이 62.23%에서 33.4%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50~60대의 지상파 시청률 역시 같은 기간 39.85%에서 19.85%로 감소했다. 대신 이들은 동창 모임이 개설된 ‘밴드’, 카카오톡 단체방 등에서 또래들이 공유하는 유튜브 링크를 클릭한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미디어 소비 형태가 방송국 편성에 따라 TV를 보던 매스미디어 중심에서 본인이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스낵미디어(과자처럼 간편하게 소비하는 언론)로 바뀌었다”며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긴 영상보다 짧은 영상을 추천해주는 유튜브가 강력한 매체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이 스마트폰을 비롯한 IT 기기와 새로운 서비스에 익숙해진 것도 영향을 줬다. 55~64세 한국인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2014년 32.7%에서 2018년 69.1%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여기다 한국 스마트폰 사용자의 80% 이상이 사용하는 구글 안드로이드폰에는 유튜브가 기본으로 깔려 있어 접근하기도 쉽다.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1970~80년대의 50대, 60대와 달리 지금의 중장년층은 고등교육을 받고 경제력을 갖춘 사람이 많다”며 “신형 스마트폰에 대한 두려움이 적을 뿐더러, 20대 젊은이처럼 시대에 맞춰가야 한다는 욕구가 커지면서 중장년층에서 유튜브가 인기”라고 말했다.

한국의 전 세대를 통틀어 50대 이상이 유튜브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50대 이상이 4월 한 달간 유튜브에 머문 시간은 101억 분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늘었다. 10대(89억 분), 20대(81억 분), 30대(61억 분), 40대(57억 분)보다 많다. 50대 이상의 1인당 유튜브 평균 사용 시간(월 17시간 25분)은 30대(월 16시간 46분)와 40대(월 13시간)를 뛰어넘었다.


정치·사회·경제 1위 유튜브 채널은 누적 조회 3억 회

중장년층은 기존 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찾아 유튜브를 찾기도 한다. 경남 창원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강모(61) 원장은 환자가 없는 틈을 타 ‘펜앤드마이크 정규재TV’에서 방송하는 ‘펜앤뉴스’를 챙겨본다. 펜앤뉴스는 정 고문이 진행을 맡고, 소속 기자들이 나와 뉴스를 전한다. 지상파, 종편의 정규 뉴스 프로그램 형식과 비슷하다. 강씨는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지 않는 지상파 뉴스는 안 본 지 오래”라며 “종편을 그나마 챙겨보지만, 내가 원할 때 볼 수 있는 정규재TV에서 주로 정보를 얻는다”고 말했다. 강씨는 매달 1만원씩 펜앤드마이크를 정기 후원한다.

누적 조회 수 기준 상위 10개 정치·사회·경제 유튜브 채널 중 우파 논객이 운영하는 것이 7개다. 1위는 신의 한 수(누적 조회 수 3억203만 회)다. 황장수의 뉴스브리핑(2위), 펜앤드마이크 정규재TV(3위)의 누적 조회 수는 2억 회가 넘는다. 좌파 성향의 채널 중 누적 조회 수가 가장 높은 것은 ‘미디어몽구(1억8063만 회)’로 신의 한 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우파 지식인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며 “보수 성향의 시청자들이 유튜브로 향했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신문, TV 등 전통 미디어의 보도 내용을 신뢰하지 않는 계층이 유튜브에 채널을 열었거나, 시청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방송과 신문 내용에 비판 의식을 가진 논객이 유튜브를 열어 자신의 지식을 직접 전달하기도 한다. 2년 전부터 유튜브 채널 ‘공병호TV’를 운영 중인 공 전 자유기업원 원장은 “조·석간을 보다가 내 목소리를 내야 할 주제를 발견하면 영상 제작에 들어간다”며 “결국 유튜브에서는 콘텐츠를 가진, 준비된 이들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학 박사인 공 전 원장은 4차 산업혁명 핵심, 국가 채무, 반값 등록금 등 경제 사안을 짚는 동영상을 올렸다. 유튜브 방송은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유통된다는 우려도 있다. 정인숙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1인 미디어가 주도하는 개별 매체는 게이트 키핑이 이뤄지지 않아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며 “가짜 뉴스의 확산을 그대로 두고 보기는 어려운 만큼, 사후적 규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