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중국 허베이성 우한의 한 병원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구급차 운전사가 의료 기기 상자를 옮기고 있다. 사진 EPA연합
1월 26일 중국 허베이성 우한의 한 병원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구급차 운전사가 의료 기기 상자를 옮기고 있다. 사진 EPA연합

“우리는 ‘블랙스완(검은 백조)’ 사건을 고도로 경계하고 ‘회색 코뿔소’ 사건을 철저히 예방해야 한다.” 2019년 1월 21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리커창 총리 이하 당·정·군 핵심 간부 수백 명을 긴급 소집해 한 말이다. 블랙스완은 발생할 확률이 극히 낮지만 일단 나타나면 큰 충격을 주는 위험을, 회색 코뿔소는 뻔히 보이지만 실제 위협 단계가 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위험을 말한다. 경제 성장률이 6%대로 둔화하고 미국과 마찰이 극대화하는 상황에서 경각심을 갖고 대비하자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로부터 일 년 뒤, 중국 경제에 시 국가주석이 언급한 블랙스완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 중부 도시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우한 폐렴)가 빠른 속도로 확산하며 중국을 넘어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매일 발표하는 공식 통계에 따르면 1월 30일 중국 내 확진 환자는 7711명이다. 이 중 170명이 사망했다. 특히 1월 27일을 기점으로 신규 확진자가 전날보다 두 배 넘게 증가하며 속도가 붙었다. 과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확진자가 4000명을 돌파하기까지는 8개월이 걸렸다.

우한의 수산시장에서 시작된 신종 바이러스가 세계 경제를 집어삼킬 태풍으로 예견되는 것은 사스 학습 효과 때문이다. 2002년 중국에서 처음 발견돼 주변국으로 확산한 사스는 약 770명의 사망자를 낸 후 2004년 1월 종식됐다. 이 시기 중국 경제는 크게 둔화했다. 전염병 확산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한 데다, 노동 공급도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스가 창궐한 2003년 2분기 중국 경제 성장률은 9.1%, 전 분기보다 2%포인트 하락했다. 이마저도 중국 정부가 통계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커, 실제 경제는 더 위축했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영국 경제연구소인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이 시기 경제 성장률이 3%대까지 떨어졌다고 본다.

2020년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블랙스완에까지 비견되는 것은 중국의 경제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져 2003년 4%에서 올해 17%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규모도 그사이 6위에서 2위까지 뛰었다. 하지만 당시 두 자릿수에서 움직이던 경제 성장률은 둔화해 2019년 6.1%까지 내려왔다. 수출도 둔화했다. 2003년 사스 여파에도 경제가 10%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35%에 달하는 수출 증가율 덕분이었는데, 최근 2년간 계속된 미국과의 무역 분쟁으로 이 수치는 2019년 0.5%에 그쳤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경제는 지난 17년간 덩치가 커진 만큼 존재감도 올라갔지만, 과거만큼의 활기는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을 지내 정부 측 인사로 분류되는 황이핑(黃益平) 베이징대 교수도 “소비 감소를 비롯해 일부 경제 활동이 중단되고, 실업자가 증가하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둔화로 거시 경제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 파급력도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국 국무원은 사태가 악화하자 1월 30일까지인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를 2월 2일까지로 사흘 연장했다. 연휴 기간이 길어졌지만 춘제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소비 증가율이 평균 두 자릿수대를 기록하는 춘제는 노동절, 국경절과 함께 최대 성수기로 꼽히는 대목이다. 외식·여행 플랫폼 메이퇀(美團)은 앞서 낸 ‘2020년 춘제 연휴 여행 소비 예측 보고서’에서 올해 국내 호텔 예약이 16% 증가했다고 기대했으나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실제로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중국의 교통량은 전년보다 50% 급감했다. 교통운수부에 따르면 올해 춘제 첫날 철도와 여객기 이용객은 지난해 같은 날보다 각각 42%씩, 교통량 전체는 29% 감소했다. 시장 조사 업체인 IHS마킷은 “관광, 소매, 외식, 각종 콘퍼런스, 스포츠 이벤트 등이 마비된 상태”라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소비뿐 아니라 기업의 투자, 생산 등 경제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기업은 물론 상하이, 쑤저우, 저장성, 광둥성 등 각 시·성도 관내 모든 기업에 2월 8~9일까지 휴무하도록 지시했다. 특히 전염병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우한은 1월 23일부터 시작된 정부의 봉쇄 탓에 인구 1100만 명의 도시가 ‘유령 도시’가 됐다. 우한은 중국 최대 산업 도시 중 하나이자 철강 산업의 중심지로 둥펑 자동차그룹, 제너럴모터스(GM), 닛산, 혼다 등 주요 자동차 제조사 공장이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에) 철광석을 수출하는 호주와 인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패널을 수출하는 한국과 말레이시아, 기계 설비를 수출하는 독일,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폴란드와 헝가리 등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 시장도 공포심을 반영했다. 확산 초기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주가지수가 일제히 하락하고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국채, 금값이 상승했다. 다만 1월 29일(현지시각) 기준 뉴욕 증시가 회복하는 등 안정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스 발병 초기 중국 정부가 보인 폐쇄적인 접근법 탓에 세계는 사태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진핑 국가 주석은 1월 28일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전염병 확산이라는 악마가 숨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내가 지휘하고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사스 사태 당시 중국 정부가 부양책을 촉진한 것을 들어 이번에도 비슷한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채 문제가 심각한 현시점에서 과거와 같은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해 중국의 국가 부채를 40조달러(약 4경7000조원)로 예상했다. GDP의 세 배가 넘는다.


우한 폐렴,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

한국 경제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관광, 무역 등 중국을 오가는 산업뿐만 아니라 내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지난해 경제 성장률이 2%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사스 여파로 2003년 2분기 한국 경제 성장률은 1%포인트 내외 타격을 입었다. 한국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세계 2위 발병국에 오른 전력도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메르스 영향으로 한국의 관광 관련 산업이 26억달러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