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 해맞이광장 인근 도로의 ‘포항시 드라이브 스루 판매점’에서 강도다리회를 팔고 있다. 사진 포항시
3월 15일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 해맞이광장 인근 도로의 ‘포항시 드라이브 스루 판매점’에서 강도다리회를 팔고 있다. 사진 포항시

“강원도 청정 감자, 강원도 핵꿀감자 핵세일! 10㎏ 한 상자를 초특가 5000원에 판매합니다.”

“오늘도 완판! ‘감자’ 합니다!”

할인마트나 홈쇼핑에서 진행되는 판매 촉진(판촉) 행사가 아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이다. 올해 64세, 국회의원까지 지낸 3선 도지사가 뜬금없이 감자 판촉원이 된 이유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농산물 소비가 위축되면서 1만1000t에 이르는 감자 재고가 대부분 창고에서 썩어버릴 위기에 처해서다. ‘썩어서 버리느니 생산비라도 건지자’는 절박함이다.

권위를 벗어던진 도지사의 홍보와 파격적인 가격에 소비자들은 ‘감자 대란’으로 화답했다. 판매처인 강원도농수특산물진품센터 웹사이트에 개시 1시간 만에 접속자 10만 명이 몰리며 서버가 다운됐고, 준비한 감자 1400상자(14t)는 순식간에 완판됐다. 하루 판매량을 8000상자(80t)로 늘렸지만, 여전히 강원도 감자를 구매하기 위한 ‘클릭 경쟁’이 매일 벌어진다.

코로나19 사태로 생존 기로에 몰린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지자체)들이 발 벗고 나섰다.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핀포인트로 해결해주는 ‘예성비(예산 대비 효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지자체가 돋보이는 반면, ‘긴급 자금 살포’로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려는 지자체도 있다.


SNS 타고 완판 행진

군산시가 3월 13일 출시한 ‘배달의 명수’는 수수료 0%, 광고료 0원을 내세운 ‘공공 배달 앱’이다. 사진 군산시
군산시가 3월 13일 출시한 ‘배달의 명수’는 수수료 0%, 광고료 0원을 내세운 ‘공공 배달 앱’이다. 사진 군산시

3월 14일 오전 11시 포항시 남구 호미곶 해맞이광장 인근 해안도로에는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포항시 공무원들이 운영하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승차 구매)’ 방식의 횟집을 찾은 손님들이었다. 제철을 맞아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강도다리회가 1㎏에 2만원. 일반 횟집보다 2만~3만원가량 싼 가격에,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만 열어 구매하는 방식으로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거의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문이 번지면서 3월 14~15일 이틀 동안 강도다리 1600㎏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포항시는 코로나19 사태로 관광객이 뚝 끊겼고, 시민들마저 외식을 꺼리면서 수산물 수요가 곤두박질쳤다. 직격탄을 맞은 것은 출하 시기가 중요한 양식장 어민들. 특히 고수온에 약한 강도다리 양식장 27곳은 이대로 5월이 넘어가면 생선과 함께 사업 자체가 폐사할 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종영 포항시 수산진흥과장이 “코로나19가 무섭지, 제철 횟감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 않겠냐”며 ‘드라이브 스루 횟집’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포항시는 당분간 주말마다 드라이브 스루 횟집을 운영하기로 했다. 한정된 인력과 공간으로는 소화할 수 있는 물량에 한계가 있어 온라인 판로도 개척하기로 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현재 강도다리 재고가 1800t에 달하는데, 이를 전부 직접 판매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다행히 전국적으로 화제가 돼 상당한 홍보 효과가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쿠팡·신세계 등 이커머스 업체 등과 입점 계약을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지자체들은 ‘학교 셧다운’이 장기화하며 판로가 막힌 급식용 식자재 공급 농가(급식 농가) 구제에도 나섰다. 대다수 초·중·고교의 개학일은 3월 2일이지만,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4월 6일까지 늦춰졌다. 학교 급식에 공급되는 농산물은 대다수가 친환경 농산물로, 단가가 높고 외관상 상품성이 떨어져 일반 도매시장에는 유통이 어렵다.

전라남도는 도청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인 ‘남도장터’를 통해 ‘친환경 농산물 급식농가 판매 돕기 꾸러미 세트’를 판매하고 있다. 딸기·버섯·애호박·당근 등 여러 급식 농가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한데 모아 일반 가정용 간편 세트로 구성했다. 전남도청 관계자는 “학교와 공급 계약이 계속 늦춰지며 급식 농가들은 산지 폐기까지 고려했던 상황이다”라며 “‘도청이 인증한 친환경 농산물을 소비하면서 사회적 공감까지 챙길 수 있다’는 입소문에 준비한 물량이 연일 완판되며 사정이 조금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기도 코로나19 피해 농가의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를 홍보해 2시간 만에 7200개를 예약 판매하기도 했다.


공공 배달 앱으로 외식 업자 부담 줄여

전례 없는 소비 침체로 ‘배달 전쟁’에 돌입한 지역 외식 업계를 돕기 위해 ‘공공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한 지자체도 있다. 배달의민족·요기요 등 기존 배달 앱은 주문 금액의 일부를 중개 수수료로 받는다. 앱 화면 상단에 업체 상호를 노출하려면 따로 광고료도 내야 한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로 매장 방문보다 배달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졌고, 이에 따라 배달 앱 광고 경쟁이 치열해져 외식 업자의 부담이 가중됐다는 것이다.

군산시가 3월 13일 오픈한 지역 배달 앱 ‘배달의 명수’는 수수료 0%, 광고료 0원을 내세운 서비스다. ‘지역사랑상품권의 사용처를 넓히겠다’는 취지에서 지난해부터 개발해 온 앱인데, 코로나19 사태로 지역 외식 업계가 줄도산 위기에 몰리자 출시 일정을 앞당겼다. 군산시 관계자는 “무조건 소비자 위치 기준에서 가까운 업체부터 상단에 노출하는 방식으로, 광고 시스템 자체가 없다”며 “비용 부담이 전무하다는 이점에 지역 업체 630곳이 참여 의사를 타진했고 이 중 300곳 정도는 이미 입점을 완료했다”고 했다.


‘재난기본소득’ 두고 갑론을박

몇몇 지자체는 코로나19로 촉발된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생활안정자금 기능과 더불어 얼어붙은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전주시는 3월 13일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재난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시민에게 직접 돈을 주는 ‘재난기본소득’을 시행하기로 했다. 총 263억원을 투입해 일용직·비정규직 노동자, 실직자 등 5만여 명에게 각각 52만원 상당의 체크카드를 지급하는 예산안이 시의회에서 통과됐다.

이어 서울시도 3월 18일 예산 3271억원을 투입하는 ‘서울시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중위소득 100% 이하 117만7000가구에 최대 50만원을 지원하는 대책이다.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중위소득 이하인 800만 가구에 60만원씩 총 4조8000억원 규모의 ‘재난긴급생활비’를 지급하자”고 정부와 국회에 제안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생계비를 지급하겠다는 취지는 인정하지만, 투입되는 예산 대비 효과가 너무 떨어지지 않겠나”라고 우려하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취약 산업이 붕괴되지 않을지 고민해야 한다”며 “외출도 꺼리는 상황에서 현금을 지급한다고 소비가 늘겠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