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기 회장은 “공기 압축 기술이 핵심인 터보차저는 자동차뿐 아니라 앞으로 발전설비, 항공, 우주산업의 기반 기술로 자리 잡아 다양한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임영근>

경상북도 김천에 본사를 둔 자동차부품 업체인 계양정밀은 지난 3월 말 자체 개발한 터보차저 모델을 중국에 첫 수출했다. 터보차저는 엔진 배기량은 줄이면서도 출력은 높이는 ‘엔진 다운사이징’의 핵심 부품. 계양정밀은 선진국 4개국만이 보유하고 있던 터보차저 기술을 20년의 연구개발 끝에 독자개발에 성공한 중견기업이다. 이번에 계양정밀이 터보차저를 수출한 곳은 중국 4대 자동차업체 중 하나인 동풍자동차다. 동풍은 최근 계양정밀의 타보차저를 장착한 최신 SUV 차량 시판에 들어갔다.

계양정밀은 이번 첫 해외 수출을 발판 삼아, 미국·중동·동남아 등 세계 각국의 완성차 업체와 터보차저 공급계약을 진행 중에 있으며 레이싱카 등에 장착되는 퍼포먼스 튜닝 전문 브랜드 터보차저인 XCARGOT를 론칭, 해외시장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1994년 계양정밀을 설립한 정병기 대표이사 회장을 강남의 서울사무소에서 만나 국내 유일의 터보차저 전문기업으로 성장해간 스토리를 자세히 들었다.

계양정밀은 회사 창립 초기 일본 기업으로부터 부품을 넘겨 받아 단순조립하던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독자개발한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인 정 회장은 1970년 현대그룹에 입사해 서른다섯에 현대중공업 이사, 마흔다섯에 현대상선 대표이사까지 올랐다.


현대그룹에서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 비결은 무엇입니까.
“저는 1970년 1월 현대자동차 신입사원으로 정식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입사 성적이 좋았던 덕인지 현대자동차 발령 하루 만에 현대건설 기획실로 다시 인사발령이 나더군요.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등을 옮겨가며 전산업무를 맡다가 1973년 현대중공업의 원가계산담당 과장으로 가게 됐습니다. 당시 현대중공업이 설립된 지 얼마 안 돼 선박 건조는 물론 조선소 건설 원가시스템도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이라 거의 일년간 잠을 못 자면서 원가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런 점을 고 정주영 회장께서 잘 보시고 저를 신임하셨던 것 같습니다.”

계양정밀의 주력 아이템으로 터보차저를 정한 배경이 있나요.
“현대그룹에 근무할 때 한·중 수교 전 중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베이징호텔에서 아침에 창밖을 보니 자전거 출근족들이 한강물처럼 흘러가는 게 보이더군요. 중국이 개방되면 이들 모두가 자동차를 사겠구나 싶더군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엄청난 자동차 매연은 어떻게 해결할까. 그 해답을 독일 벤츠의 연구소장에게서 들었어요. 꼭 집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터보차저 기술이 친환경 시대 유망사업이 될 것이라 하더군요. 그분의 말씀에 힘을 얻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문제점을 내일의 기술로 해결해온 게 인류 발전의 역사입니다. 당장 기술력이 없다고 주저앉지 말고 연구하면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터보차저가 자동차 기술 개발에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터보차저는 버려지는 고온, 고압의 엔진 배기가스를 이용해 휠을 회전시켜 압축공기를 실린더에 공급하는 정밀부품입니다. 출력은 높이면서 동시에 엔진 무게를 줄일 수 있어 연비 개선과 엔진 다운사이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기계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자동차 시장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44%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벤츠, 아우디, BMW 등 세계 유수의 완성차 업체들이 연비 향상과 공해 문제 해소를 위해 그동안은 디젤 엔진에 주로 장착하던 터보차저를 휘발유 엔진에도 장착하면서 터보차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자체 기술 없이 회사를 설립해 터보차저 연구개발에 매진한 지 근 20년 만에 독자기술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그동안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터보차저 기술은 지금도 몇개국 기업만 보유하고 있는 핵심 기술입니다. 손쉽게 기술이전을 기대할 수 없는 기초 기반 기술입니다. 터보차저를 완성하려면 주물, 소재, 가공, 조립기술이 필요한데 어느 것 하나 기술이전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오랜 연구개발 끝에 주물 기술 하나 빼놓고는 국산화에 성공했고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경제사절단에 참가해 독일 업체와 업무협약을 맺어 주물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회사 설립 당시만 해도 국내에 터보차저 기술자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유명 외국 대학을 방문, 한국인 졸업생 명단을 뒤지면서 관련 기술자를 찾아 다녔습니다. 직원들을 외국에 유학도 보내고 터보차저 기술 습득을 위해서라면 지구 어디라도 찾아가겠다는 심정으로 전문인력 확보에 애를 많이 썼습니다.”

터보차저 기술 독자 개발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해외 매출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점이 가장 큰 의미입니다. 터보차저는 전 세계적으로 미국·독일·일본 등 4개국만이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5개 기업만이 양산할 수 있는 초정밀, 최첨단 자동차 엔진부품입니다. 계양정밀은 독자 개발한 모델을 작년 4월 중국 상하이 모터쇼에 처음 선보였고 올해 중국으로 처음 수출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설립 초기에는 조립 생산을 하다가 중간에 독자개발로 방향을 선회하셨죠.
“자체 기술이 없던 설립 초기에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으로부터 부품을 납품받아 단순 조립하던 수준으로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엔고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제품 대부분을 일본에 의존하던 저희로서는 환차손 문제가 불거진 겁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부품을 국산화하지 않으면 앞으로 판매가 늘어날수록 환리스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2006년 기술연구소를 만들어 자체기술 개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매출액 대비 7% 수준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왔습니다. 연구개발 누적 투자 금액이 520억원에 달합니다.”

계양정밀의 터보차저는 현재 어느 완성차 업체에 공급합니까.
“현대·기아차의 터보차저 장착 차량에는 저희 제품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외에 한국GM, 쌍용차에도 저희 터보차저가 들어갑니다. 독자개발 역사가 짧아 글로벌 자동차 업체는 아직 뚫지 못했습니다. 해외진출 모델은 독자개발한 제품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번 중국 수출을 발판 삼아 수출을 크게 확대할 방침입니다.”

본사가 수도권이 아닌 경북 김천입니다.
“부지 물색을 위해 전국의 산업공단을 다 돌아다녔습니다. 창원에서부터 직접 차를 몰고 울산, 포항, 경산, 대구, 부산 등 웬만한 곳은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그중에 김천은 우리나라에서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입니다. 대한민국의 딱 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다만 본사를 지방에 두는 것은 장단점이 있습니다. 단점은 전문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거죠. 이 문제는 지금도 해결 못한 과제이고 서울사무소에 연구소 분소를 설립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장점은 지역사회와 동반 성장할 기회가 있다는 겁니다.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한 협조가 회사성장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작년에는 저희 회사가 김천 톱 기업으로 첫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기술연구소의 전문 인력을 제하고는 종업원 70%가 김천시민입니다.”


경북 김천의 계양정밀 본사에서 정병기 회장이 직원들과 터보차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 : 계양정밀 제공>

2014년에 중국 상하이 인근의 우시에 생산공장을 설립, 해외 생산거점망을 시작하셨지요.
“1970년대의 국제화와 지금의 국제화는 개념이 다릅니다. 과거에는 모국의 본사가 생산 코스트가 낮은 국가로 생산설비를 이전해 만든 제품을 제3국에 수출하는 것을 국제화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후진국의 소비시장이 성장했기 때문에 소비시장이 큰 지역에 직접 생산라인을 구축해 제품을 공급한다는 의미를 국제화로 봅니다. 중국은 어떻습니까. 중국은 절대 생산 코스트가 낮지 않습니다. 단 시장이 크기 때문에 생산라인을 진출시킨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도 핵심부품은 국내서 만들어, 중국 현지 공장에서 완제품을 조립해 현지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중국 다음으로는 인도, 미국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미국 완성차 업체들과 수차례 미팅한 결과, 앞으로 미국도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미국 경기부양을 위해 미국산 제품 사용을 의무화하자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공장 건설비가 싼 멕시코가 아니라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세울 방침입니다.”

최근 ‘이제 자동차는 전기차가 대세’라는 얘기가 많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미국자동차기술학회(SAE)가 앞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의 미래에 관한 논의를 한 결과, 휘발유를 사용하는 것이 배기가스를 가장 적게 배출시킨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전기는 뭘로 만들죠? 가령, 화력발전을 하려면 엄청난 가스가 생깁니다. 또 전기 송전 과정에도 많은 에너지와 공해물질이 발생합니다. 최종 생산품인 전기 자체에 공해 물질이 없다고 해서 전기차는 환경차고 휘발유 차량은 공해 차량이라고 보는 이분법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공해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소 차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전기, 수소 차량은 어디까지나 내연기관 차량의 대체수단이지 전체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친환경 핵심 부품인 터보차저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봅니다.”

연구개발에 남다른 철학이 있으시죠.
“대체로 개발도상국 제품은 기존 기술을 응용해서 만든 제품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고가제품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기초기술과 요소기술(특정분야에 필요한 특정기술)이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우리나라는 기술개발에 더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지 않으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와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많은 기업들이 단기간 실적을 낼 수 없는 연구개발 예산을 감축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앞으로 우리 산업계에 적잖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산학기관과 맺은 전략적 기술제휴 중 의미 있는 사례 하나를 소개해주시죠.
“계양정밀은 국내에는 서울대, 키스트, 포스텍 등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또 해외에서는 저희 회사와 TAMU(Texas A&M University)가 5년 전부터 연구협약을 체결하고 공동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TAMU는 산하에 회전체 기술 및 터보 기술 연구소를 두고서 터보기계 회전체 동역학, 구조물 진동 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발전설비, 항공, 우주산업 전반에 걸친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 권위의 대학으로 저희와는 터보차저 핵심기술인 유동과 공기압축, 회전체 기술을 공동연구하고 있습니다.”

계양정밀의 미래는 어떻게 그리십니까.
“우선 2022년 연간 1조7000억원 매출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현재 터보차저 시장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아 매출은 초과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계양정밀이 자동차 부품회사 범위를 넘어서서 앞으로 산업계 전반에 압축공기 기술을 제공하는 회사로 거듭날 것이란 겁니다. 터보차저 기술의 핵심은 공기압축 기술인데, 이 기술은 자동차뿐 아니라 의료기기, 발전소 터빈, 주조산업, 항공기, 조선, 초내열 소재산업 등 쓰이지 않는 산업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산업 전반에 파급효과가 큽니다. 앞으로 계양정밀은 산업계 요소 요소에 맞는 터보차저 기술을 맞춤형으로 개발해 제품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방침입니다.”


▒ 정병기
연세대 경영학과, 전 현대상선 대표이사, 중견기업연합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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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차저(turbocharger) 버려지는 배기가스 에너지를 이용, 엔진 터빈을 회전시켜 외부 공기를 엔진에 압축 공급함으로써, 완전연소를 도와주는 장치로 엔진의 연비와 출력을 향상시키고 환경오염 물질의 배출을 줄여준다.


계양정밀의 최신 터보차저 제품인 XCARGOT가 장착된 레이싱 카.

plus point

터보차저 신제품 XCARGOT

계양정밀의 첫 번째 출력 향상용 터보차저 브랜드 ‘XCARGOT’는 작년 12월 출시됐다.

외관이 달팽이 모양인 XCARGOT는 불어 달팽이의 어원인 ‘ESCARGOT’와 영어 ‘EX-TREME’을 조합해 ‘수퍼 달팽이’라는 뜻을 담았다.

XCARGOT는 계양정밀의 오랜 기간 축적된 터보차저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됐으며 올 10월에는 북미 시장을 겨냥한 신제품도 내놓을 예정이다. 이미 국내 레이싱 대회에 출전한 레이싱카에 장착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미국 현지 튜닝업체들과 공동으로 전시용 튜닝카를 제작 중에 있다. 계양정밀 측은 “수입에 의존해온 과거 국내 튜닝 시장과 달리, 앞으로는 국내 기술로 개발된 제품이 하나둘 출시되면서 자동차 생산국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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