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이 미노루 회장은 “설계부터 부품 개발, 완제품 생산까지 가능한 수직계열화를 통해 높은 품질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김종연>

1942년 일본 나가노현 히로오카의 한 창고에서 직원 22명으로 출범한 세이코 엡손(이하 엡손)은 글로벌 매출 1조엔(약 11조원)을 달성한 일본의 대표적 IT기업이다.

‘다이와 코교’라는 이름의 시계부품 회사로 출발해 ‘세이코’ 시계를 만들던 엡손은 1964년 세이코 시계가 도쿄올림픽 공식 시간 측정기로 채택된 것을 계기로 프린터 개발에 나섰다. 측정된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1968년 세계 최초의 미니 프린터(EP-101)를 출시했다. 이후 EP-101과 같은 후속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EP의 후예(SON)’라는 의미에서 ‘엡손(Epson)’이란 브랜드가 생겨났다.

이후 엡손은 1982년 세계 최초의 휴대용 컴퓨터, 1983년 세계 최초의 포터블 컬러 LCD TV, 1984년 잉크젯 프린터를 출시하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만들어냈다.

엡손의 지난해 매출은 1조924억엔. 이 중 70% 이상이 프린터와 프로젝터 등에서 나왔다. 엡손은 프로젝터 부문에선 15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 프린터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스카라 로봇(인간의 팔 구조를 본뜬 다관절 로봇) 시장에서도 선두다.

엡손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10년간 엡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전략 ‘엡손 25’를 선포하고 새로운 도약에 나선다. 엡손 25는 프린팅,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웨어러블, 로봇 등 4가지 사업군을 핵심으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매출 1조7000억엔(약 18조원)과 영업이익 2000억엔(약 2조2000억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한국엡손 2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우스이 미노루(61) 엡손 회장을 8월 25일 만났다.


프린터 회사인 엡손이 로봇 시장 강자라는 것이 의외입니다.
“엡손이 주목하는 신성장 동력원은 정밀 로봇입니다. 엡손은 1980년대부터 시계·프린터·프로젝터 조립 등 모든 생산 공정에 자체 제작한 로봇을 활용했어요. 사람이 손으로 할 수 있는 작업 대부분을 로봇이 할 수 있죠. 지난해 로봇 관련 매출은 150억엔으로 아직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이 많은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로봇에 집중 투자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프린터 분야에선 레이저 프린터 대신 잉크젯 프린터에 주력하고 있는데, 로봇에 주목한 것은 프린터 시장이 축소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인가요.
“글로벌 트렌드는 ‘페이퍼리스’이지만 종이인쇄 산업은 여전히 성장 중입니다. 사무환경이 모바일 기반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업무는 문서 형태로 처리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잉크젯 프린터는 레이저 프린터보다 더 경제적이면서, 성능은 더 좋습니다. 비용은 레이저 프린터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인쇄 속도는 2배 정도 빠르죠.”

엡손이 프린터, 프로젝터, 로봇 등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기술개발에 매일 130만달러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매년 5000개 이상의 특허를 획득하고 현재 5만개 이상의 특허를 확보했습니다. 엡손의 모든 엔지니어는 전 세계 모든 현장에 직접 찾아가 각 나라별 고객의 요구를 파악합니다. 이렇게 취합된 고객의 요구는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 기획에 반영되고요. 프로젝터의 경우 저가형부터 고급형까지 1000기종 이상의 라인업을 갖추고 있습니다.”

2010년 출시 후 전 세계적으로 1500만대 이상 팔린 ‘정품 무한잉크 시리즈’도 고객의 요구에 맞춰 개발된 제품이다. 무한잉크 시리즈는 프린터나 복합기의 외부에 잉크 공급장치를 탑재했다. 리필 잉크를 사용하는 고객이 늘어나자 아예 정품 리필 잉크를 공급한 것이다.

경쟁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또 다른 요소를 꼽는다면.
“잉크젯 헤드와 같이 핵심 부품을 모두 우리 손으로 개발해 양산하고 있어요. 설계부터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이 내부에서 이뤄집니다. 완벽하게 수직계열화돼 있어요. 외부에서 부품을 조달받는 일반적인 제조기업과는 정반대죠. 부품을 납품받다 보면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어렵고 사업을 주도할 수 없어요.”

엡손은 끊임없는 혁신으로 프로젝터, 프린터 시장을 주도했지만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2008년 1조1000억엔이었던 매출은 2012년 8000억엔대로 5년 연속 줄었다. 우스이 회장은 어쩌면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던 2008년 사장에 취임했다.

2008년 사장에 취임한 후 무엇을 변화시켰습니까.
“취임 이전 엡손은 캐논이나 HP 등과의 경쟁에만 신경을 쓰는 회사였어요. 많은 대기업에서 흔한 일이지만 경쟁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피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거죠. 경쟁사와 비교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사람들이 실제 원하는 것에 맞춰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시켰어요. 우리의 강점을 활용해 다른 회사에서 복제할 수 없는 특별한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했어요.”

우스이 회장은 취임 이후 영업이익의 절반을 차지하던 LCD 부품 사업과 반도체 사업을 축소하는 등 사업구조를 재정비했다. 그리고 잉크젯, 시각적 커뮤니케이션, 웨어러블, 로봇 등 4개의 주요 시장 부문으로 비즈니스 전략을 집중시켰다. 또 성장세를 회복하기 위해 엡손의 핵심기술을 적용할 새로운 제품을 발굴했다. 일반 소비자용 잉크젯 프린터뿐만 아니라 사무용, 산업용 프린터를 개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전략이 결실을 맺으면서 2013년 매출은 전년 대비 18% 늘어난 1조36억엔을 달성하며 1조엔대 매출을 회복했다.

앞으로 혁신을 어떻게 지속할 계획인가요.
“엡손의 강점인 고효율, 초정밀 기술과 내부에서 시작된 혁신을 외부의 혁신과 연결해 지속적인 개선을 이뤄나갈 생각입니다. 단순히 혁신을 위한 혁신을 해선 안 됩니다. 혁신의 목적은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고객의 요구를 경청하고 진정으로 이해할 때 혁신이 가능합니다.”


▒ 우스이 미노루
1979년 신슈 세이키 입사(현 세이코 엡손), 2002년 이미징 & 정보제품 사업부 본부장, 2007년 세이코 엡손 상무, 2008년 세이코 엡손 대표

장시형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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