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레인즈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는 “빠른 기술 발전보다 고용에 더 큰 위협은 보수정권이 중산층·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프레드 레인즈 교수>
프레드 레인즈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는 “빠른 기술 발전보다 고용에 더 큰 위협은 보수정권이 중산층·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프레드 레인즈 교수>

매년 세계 각국 정상과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여 세계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올해 다보스포럼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고용이었다. 특히 CEO들은 올해 기업경영의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실업을 꼽았다. 저성장과 기술발전으로 실업이 늘어나며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오랫동안 고용 분야를 연구한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프레드 레인즈 명예교수는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노동자 교육·훈련 수준이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실업이 늘어나고 있다”면서도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선진국 보수정권이 주도하는 착취적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재정 지출을 삭감함으로써 일자리가 줄어들고 수요도 감소했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에 기반을 둔 강력한 과학국가로 성장하는 것이 고용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레인즈 교수는 또 미국에서 훌륭한 노동 정책을 사용하고 있는 기업으로 ‘코스트코’를 사례로 들었다. 그는 “코스트코는 ‘이해당사자(stakeholder) 모델’을 채택함으로써 주주는 물론 생산과 판매활동에 참여하는 근로자, 소비자의 이익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며 “기업을 성장시키는 동시에 고용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충분한 일자리가 제공되지 않는 원인은?
“문제의 원인은 노동자 교육이나 훈련 수준이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공정과 인공지능이 높은 수준의 교육과 훈련을 받은 노동자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많은 선진국의 보수정권이 추진하는 착취적인 정책들이다. 최근 많은 정부의 재정은 매우 심각한 상태다.
경직적인 재정 지출 비중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많은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 지출이 삭감됐다. 삭감된 지출 대부분은 중산층이나 저소득 가구에 대한 지원이다. 내핍 정책인 셈이다. 이는 수요를 축소하고 일자리 확장을 억제한다. 반면 소득 불평등은 확대시키고 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 구호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미국 고용 시장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성장률과 노동생산성은 2016년 후반부터 가속 페달을 밟으며 회복되고 있다. 소비자 신뢰지수와 소비지표 역시 개선됐다. 올해도 경기와 고용 회복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도널드 트럼프 신임 대통령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 계획 효과는?
“트럼프는 매우 불확실한 리더다. 의회의 반대로 인프라 투자 계획이 지체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인프라 투자로 다른 정부 예산이 축소되면 인프라 투자를 통한 경기 부양 효과는 없을 것으로 본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보수당이 헬스케어와 사회보장 등 사회 프로그램 예산을 깎는 것이다. 트럼프가 여기에 찬성한다면 소비가 줄어들고 경제는 하방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가 미국으로 되찾아오겠다고 한 일자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 발전과 제조업이 서비스 산업으로 전환되면서 사라진 일자리들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일자리는 어디서 창출될까.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원(原)이 태양광, 풍력 등 재생 가능 중심으로 변화하면 수백만개의 좋은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 또 고령화로 헬스케어 수요가 늘어나며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미국이 다시 기술에 기반을 둔 강력한 과학국가로 성장한다면 기업을 억압하거나 매수해 공장을 되돌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고용을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거나 고용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과 영국 사례를 보면 법인세를 인하하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고용 확대에 효과적이지 않은 방법 같다. 지난 8년 미국 경제가 회복된 시기를 보자. 기업 이익이 늘어났지만 이들은 고용이나 투자를 늘리기보다 지분을 늘리고 배당을 확대했다. 많은 연구가 고용보조금이나 신규 고용에 훈련 비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고용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고용 보조금은 언젠가는 중단되기 마련이다. 정부의 역할은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생활 임금을 보장하는 것,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것, 은퇴 이후 연금을 제공하는 것, 실직한 근로자를 재교육하는 것이다.”

위기 시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해고를 최소화하는 기업이 있다.
“경기 부진에 대응해 노동자를 해고하는 대신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임금을 삭감하는 방법은 독일과 미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는 감소하는 노동 수요의 부담을 나누는 공평한 방법이다. 하지만 업무를 나누는 경우 일부 노동자는 본인에게 맞지 않는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노동자들이 감소하는 근로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한시적이다. 임금 삭감의 경우 노사 간 극심한 긴장을 유발할 수도 있다. 특히 미국에서 큰 문제는 이미 많은 근로자가 파트타임 근로나 정규직 외 근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고용 정책을 통해 고용을 늘린 기업 사례가 있다면?
“미국에서 훌륭한 노동관계를 통해 오랫동안 좋은 모범 사례로 꼽히는 기업은 바로 코스트코다. ‘월마트’ 다음으로 큰 미국 2위 유통업체 코스트코의 노동자 시간당 평균 임금은 21달러다. 초과 근무 수당을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다. 근로자들은 건강보험 등 회사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침체 당시 코스트코는 고용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임금을 소폭 인상했다. 또 코스트코 CEO의 임금은 직원 평균 임금의 48배인데, 월마트 CEO 임금이 임금의 796배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합리적인 수준이다.
최근 문제가 된 ‘웰스파고’와 같은 월스트리트 금융사는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주주(shareholder) 모델’을 채택하고 있지만 코스트코는 ‘이해관계자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주주 모델은 주주에 의해 선임된 경영자가 주주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을 운영하지만 코스트코와 같이 이해당사자 모델을 채택한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생산과 판매 활동을 담당하는 근로자, 이에 영향을 받는 소비자 등 모든 이해 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한다. 존슨앤드존슨, 홀푸드, 화물운송업체 CSX와 같은 기업도 좋은 노동 정책을 가지고 있다.”


▒ 프레드 레인즈(Fred Raines)
맥도널더글러스 근무,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