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기 대표는 “우리나라도 현행 주세법이 개정돼 세계시장에 당당히 내놓을 고급 술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임영근>
이종기 대표는 “우리나라도 현행 주세법이 개정돼 세계시장에 당당히 내놓을 고급 술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임영근>

그가 다시 증류주 개발에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 2~3월 대만과 일본의 위스키 업체들을 둘러본 체험을 페이스북에 여러 차례 올렸을 때 짐작은 했지만 그의 입으로 직접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증류주 전문가다. 그중에서도 위스키 개발이 그의 주특기다. 그런 그가 최근 10년 동안 경북 문경에 파묻혀 살면서 만든 술은 증류주가 아닌 오미자 와인이었다.

그가 만든 오미자 스파클링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한국 국빈방문 때 공식 술로 제공될 정도로 국내외에서 품질을 인정 받고 있다. “오미자는 신맛이 강해 와인 양조에 필수적인 발효과정이 어렵다”며 프랑스 샴페인 전문가조차 부정적이었지만, 그는 2년여의 연구 끝에 오미자로 만든 스파클링, 오미로제를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그게 2011년 일이다. 오미나라 이종기(62) 대표 얘기다.

이종기 대표는 우리나라 위스키 개발의 산증인이다. 윈저, 골든블루, 블랙스톤, 썸싱스페셜, 패스포트 등 그가 만든 위스키는 한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특히 윈저와 골든블루는 국내 위스키 시장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윈저·골든블루 등 국내 유명 위스키 개발

그러나 이 술들은 모두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현지산 보리(몰트)로 만든 원액을 기본으로 해서 만들었다. 엄밀히 말해 우리 농산물로 만든 ‘우리 술’이 아니다.

그가 국산 농산물로 만든 술이 오미자 레드와인, 오미자 스파클링이다. 최근에는 사과로 만든 증류주 ‘문경바람’과 오미자 와인을 증류시킨 ‘고운달’도 새로 내놓았다. 그는 “외국산 농산물로 만든 주정에 물을 타서 희석시킨 소주가 ‘국민 술’로 대접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세계 고급 술 시장에 내놓을 ‘우리 농산물로 만든 술’을 꼭 만들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런 그가 드디어 ‘제대로 된 국산 위스키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남아도는 우리 쌀 등 국산 농산물로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경북 문경에 발효, 숙성 공정은 물론 증류시설까지 갖춘 양조장을 갖고 있다. 오미나라 이종기 대표와의 인터뷰는 서울 대학로의 주점 문샤인(월향 운영)에서 진행됐다. 38년째 술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이종기 대표는 2005년 충북 충주에 설립한 세계술박물관 ‘리쿼리움’을 매년 수천만원의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운영할 정도로 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대만과 일본에서 비(非)스카치 위스키 개발 가능성을 봤나.
“일본은 오래전부터 일본 농산물로 만든 위스키를 만들어왔다. 연 매출 25조원에 달하는 일본 산토리가 만드는 위스키는 영국 스카치 위스키보다 오히려 가격이 비쌀 정도로 반응이 좋다. 이번에 내가 놀란 것은 대만 위스키였다. 위스키 개발의 불모지였던 대만산 위스키가 최근 세계 위스키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우리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좋은 위스키를 만들기에 대만은 더운 나라가 아닌가.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와인과 마찬가지로 위스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이 테루아(기후, 땅 등의 자연조건)다.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의 경우 연평균 기온이 10도 안팎으로 계절에 따른 변화가 적고, 습도 역시 60%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런 조건이 위스키 생산의 최적 조건으로 알고 있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도에 훨씬 가까운 대만은 연평균 기온이 스코틀랜드보다 10도 이상 더 높고 습도도 더 높다. 그런데 위스키 같은 술은 일종의 화학 변화인 숙성을 몇년 거치는데 온도가 높을수록 화학반응(숙성)이 더 빨리 진행된다는 것이 대만 위스키 업체들의 견해였다. 다시 말해, 스코틀랜드에서 3년 숙성은 대만에서 1년 숙성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결국은 대만산 위스키의 품질이 관건인데, 최근 국제 술 품평회에서 대만 위스키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한국 농산물로 고급 위스키 개발이 가능한가.
“우선 남아도는 우리 쌀로 그레인 위스키를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 보리와 일부 수입산 보리로 몰트위스키를 만들어 이 두 원액을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로 승부를 걸 작정이다. 80% 이상 우리 농산물로 만들 생각이다. 대만에서 성공한 위스키를 한국에서 못 만들 이유가 없다.”

국산 위스키 개발의 가장 큰 장애물은.
“돈이 아니라 정부 세금이다. 현재 국내 주세법이 종가세이기 때문에 원료가 비쌀수록 세금 비중이 높다. 아무리 좋은 술도 가격이 비싸면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세금 구조는 외국에서 병입까지 해온 위스키에 대한 세금이 국내에서 병입 등의 공정을 거친 위스키보다 낮다. 그래서 숙성을 끝낸 위스키를 대만, 일본에 보내 병입을 현지에서 해서 다시 들여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추가 물류비를 감안하더라도 그게 원가 부담이 더 적다.”


▒ 이종기
1955년생, 서울대 농화학과 졸업(1981년), 두산씨그램 상무, 디아지오코리아 부사장, 영남대 교수(2007~2010년), 오미나라 대표(2008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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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량세(從量稅)와 종가세(從價稅) 공장출고 시 술의 양(1㎘)에 대해 일정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주정(酒精)에 대한 세금 부과방법이다. 종가세란 공장출고 시 원가에 일정한 세율(10~72%)을 곱해 부과하는 세금으로, 주정을 제외한 모든 술에 대해 부과한다. 우리나라는 종가세를 채택하고 있는데, 원가뿐 아니라 패키지와 영업비용까지 포함한 금액에 세금을 부과한다.

Plus Point

“사과 부가가치 높이려면 사과술 제조가 최고”

이종기 대표(왼쪽)와 전통주점 월향 이여영 대표가 최근 사과 증류주 공동개발 협약식을 가졌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임영근>
이종기 대표(왼쪽)와 전통주점 월향 이여영 대표가 최근 사과 증류주 공동개발 협약식을 가졌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임영근>

국내 최고의 증류주 전문가 오미나라 이종기 대표가 전통주점 월향 이여영 대표와 사과 증류주를 공동개발한다. 이여영 대표는 “이종기 대표가 만든 사과 증류주 문경바람을 맛보고 ‘사과로도 이런 좋은 술을 만들 수 있구나’ 라고 여겼다” 며 “최근 사과 판매가 다소 부진하다는 얘기가 있어 사과농가를 도울 겸 사과 증류주 개발을 제안했다” 고 말했다.

월향이 제공하는 자금(사과 구매)으로 이종기 대표가 사과 증류주를 만들면, 이 술을 월향에서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종기 대표는 “사과는 쌀과 달리 오래 보관할 수 없고, 보관한다 하더라도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남아도는 사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 중 최고가 술을 만드는 것” 이라고 말했다. 우선은 문경 사과만으로 사과주를 만들지만, 수요가 늘어나면 전국으로 사과 수매 대상을 늘릴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