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 에이나브 회장은 “창업을 안하는 사람이 낙오자가 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 : 블룸버그>
로니 에이나브 회장은 “창업을 안하는 사람이 낙오자가 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 : 블룸버그>

이스라엘은 한국과 유사점이 많은 국가다. 좁은 영토, 전쟁 위험 지역, 천연 자원 부족, 작은 내수 시장, 높은 교육 열기 등이 그것이다. 반면에 두 나라가 경제를 성장시켜온 방식은 크게 다르다. 한국이 대기업 주도의 경제 성장을 추구했다면 이스라엘은 스타트업 중심의 경제발전을 이뤄왔다. 인구 800만명의 작은 나라지만 인구당 창업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자 미국 실리콘밸리 다음으로 스타트업이 많은 창업 국가(Startup Nation)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창업계에서도 대부로 꼽히는 인물이 있다. 벤처캐피털리스트인 로니 A. 에이나브(Roni A. Einav) 에이나브 하이테크에셋 회장이다. 그는 1983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창업한 IT기업 ‘뉴디멘션 소프트웨어’를 16년 만에 미국 대기업 BMC에 6억7500만달러(7343억원)에 매각했다. 당시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인수·합병(M&A)이었다. 이후 에이나브는 본인이 투자한 회사 7개를 미국 나스닥 시장에 잇달아 상장시키며 벤처 육성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에이나브를 만나 인터뷰했다.


이스라엘의 창업 생태계가 특별한 점은.
“첫번째는 창업에 대한 열정이다. 나의 어릴 적 이스라엘 친구 대다수는 나스닥 상장에 성공하고 신문 1면에 이름을 올린 이스라엘 기업인에게 열광하며 창업에 대한 꿈을 꾸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우등생이 의사 혹은 변호사가 되는 것보다 과학자 혹은 엔지니어가 되기를 꿈꾼다. 이스라엘의 과학자 비율은 세계 1위다. 만약 이공계에 재능이 없더라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충분히 팀을 꾸려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창업에 대한 두려움이 큰 편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대기업에 취업하고, 공무원이 되는 것을 최고의 성공으로 여긴다고 들었다. 오히려 창업을 하는 이들을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낙오자’로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낙오자가 창업하는 것이 아니라 창업을 안 하는 사람이 낙오자가 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스타트업 생태계가 지속 가능해질 것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조언한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벤처 정신이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창업 실패를 부끄러움이나 수치가 아닌 훈장으로 여긴다. 한국 젊은이들이 이스라엘의 ‘후츠파(뻔뻔스러움, 주제넘은 오만)’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 나 역시 경쟁업체의 방해와 음모로 성공의 문턱에서 주저앉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후츠파 정신 덕분이다.”

이스라엘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이스라엘 정부는 1960년대 후반부터 기술창업 활성화 노력의 일환으로 민간 R&D 보조금법을 제정하고, 미국 나스닥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후 1993년 벤처캐피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요즈마 펀드를 조성했다.

요즈마 펀드 등 정부 주도 창업 지원 정책은 어떻게 도움이 됐나.
“요즈마 펀드의 성공 이후 이스라엘의 벤처캐피털 시장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1990년대 초 1개에 불과했던 벤처캐피털이 요즈마 펀드의 성공 이후 88개로 증가했고, 벤처캐피털 투자금액이 2000년 GDP 대비 2.7%로 세계 최고 수준에 달했다. 첨단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로 우수한 스타트업들이 탄생했으며 이러한 기업이 성공하면서 높은 투자 수익률이 실현됐고, 미국 및 유럽 펀드들이 대거 이스라엘 기업에 투자함에 따라 정부의 개입이 거의 필요없는 자생적 스타트업 생태계가 마련된 것이다.”

‘뉴디멘션 소프트웨어’를 6억7500만달러에 매각한 노하우는 무엇인가.
“미국 나스닥 진출이 성공의 터닝 포인트였다. 1992년 당시 이스라엘 기업으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나스닥 진출 이후 단숨에 350만달러(39억원)를 모았다. 상장 첫해 회사 매출은 전년의 두 배로 뛰었고, 보잉·도요타·AT&T·삼성 등 새로운 고객을 얻었다. 나스닥 덕분에 세계 시장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은 기업공개(IPO)를 꺼리는 추세다.
“과거와 다르게 사모펀드 등 다양한 형태로 투자금을 얻는다고 들었다. 하지만 미국 주식 시장 상장은 기업의 자금줄 이상의 역할을 한다.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기업이 세계적인 수준의 체계를 갖췄다는 의미로, 다른 대기업과 동등한 입장에서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다. 이는 어떤 광고로도 얻을 수 없는 마케팅 효과다.”

나스닥 상장 등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소통 능력이다. 나스닥 상장을 위해서는 기업이 가진 혁신 가치도 중요하지만, 이를 제대로 알리는 소통이 필수다. 비즈니스에서 소통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영어를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대부분 통역자를 동반해 투자금 모금 등의 협상에 나서기 때문에 영어로 직접 설명하는 세계적인 기업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CEO라면 반드시 영어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에이나브는 3년 전 달걀을 깨트리지 않고 흰자와 노른자를 섞는 기계인 ‘에그서(Eggxer)’를 개발해 전 세계 8개국에 수출을 시작했다. 에이나브는 “손녀딸이 달걀 노른자를 잘 먹지 않아 고민하다가 달걀 속 공간을 이용해 흰자와 노른자가 섞이게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며 “창업은 젊은이들만 하는 것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고도 여전히 사업가로 활동하는 이유는.
“돈이 나의 목표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부를 일궜지만, 예전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자동차를 운전하고, 여전히 또 다른 창업을 꿈꾼다. ‘뉴디멘션 소프트웨어’를 창업한 그때와 지금의 나는 달라진 게 없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수년 동안 기업을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젋은 기업가와 공유하고 싶다. 맨손으로 시작해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몸소 증명했다. 명석한 두뇌, 적절한 교육, 결단력 그리고 약간의 행운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 로니 A. 에이나브(Roni A. Einav)
뉴디멘션 소프트웨어 설립자, 이스라엘 공과대학 산업공학 석사, ‘나스닥을 가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