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22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중국의 경제 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대통령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22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중국의 경제 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대통령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으로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짙게 깔리고 있다. 미·중 통상갈등이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심화되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직간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큰 틀에서 타결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서로 칼을 빼들면서 세계 경제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 22일(현지시각) 500억달러에 이르는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 폭탄을 부과했고, 중국 상무부는 30억달러 규모 미국산 철강, 돈육(돼지고기)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맞섰다. 미·중 관세폭탄에 글로벌 주식시장이 요동쳤다. 3월 23일 미국 뉴욕 주식시장에서 다우존스는 2.9% 하락한 2만3957.8에 거래를 마쳤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도 각각 2.5%, 2.4% 떨어졌다.

문제는 앞으로 미·중 간 갈등이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심화되면 한국 경제가 받는 타격이 더 커질 것이란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전 세계 평균 관세율이 현재 4.8%에서 10%로 높아지면 한국 경제 성장률은 0.6%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액은 173억달러(약 18조원) 줄어들고 고용은 15만8000명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관세 인상으로 인한 글로벌 교역량은 국내 수출 감소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대외 부문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 특성상 실물경제 충격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선전포고는 미국이 먼저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외국산 태양광 패널에 최고 3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중국산 태양광 패널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중국산 수입품 가운데 500억달러에 이르는 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대미 투자도 제한하는 초강경 조치를 단행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을 상대로 꾸준히 이어온 보호무역주의 엄포를 현실화한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강공에 약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진 조선일보 DB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강공에 약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진 조선일보 DB


중국, 미국산 돼지고기 등에 보복 관세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기업이 미국 정보기술(IT) 기업과 합작회사 형식으로 기술을 빼 가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경제침략을 타깃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중국으로부터 지식재산권을 엄청나게 도용당하고 있다. 그 액수는 수천억달러에 이른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즉각 반발했다. 중국은 미국의 발표 직후 3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돼지고기에 25%, 철강파이프·과일·와인에 각각 1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산 필름 인화지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도 연장했다. 중국 상무부의 보복관세 리스트에 농축산물이 포함된 것은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다. 규모는 작지만 양돈 업계가 몰려 있는 미시간과 위스콘신 지역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지지기반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비관세 장벽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안전검사나 위생검역을 확대하거나 필요한 문서작업을 지연시키는 방법이 있다. 미국 기업의 중국 내 사업에 차질을 주는 방법도 동원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세무조사, 금융감독, 품질관리, 반독점, 환경보호, 소비자보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제를 동원할 수 있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제품에 ‘수출세’를 부과하는 것도 중국의 반격 카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블룸버그는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 제조해 미국으로 수출, 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특수 부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되면 애플 등 미국의 대형 전자제품, 소비제품 제조업체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세계 경제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절대권력 체제를 확립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강공에 약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윤여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트럼프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보호무역주의 관련 움직임을 보이며 미국의 주요 교역국을 압박했다”며 “앞으로도 반덤핑, 관세 부과 정책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반면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중 양국이 모두 일정 부분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무역수지 개선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금리와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중국도 큰 수출 시장인 미국을 잃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의 대미 수출은 지난해 기준으로 총수출의 19%를 차지한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은 극단적인 무역전쟁으로 가기보다는 탐색국면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서도 “단기적으로 큰 영향은 없겠지만 중국이 한국산 반도체를 줄이는 대신 미국산 반도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한시라도 주의를 늦추면 안 된다”고 말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과 보복조치를 어디까지 확산할지, 혹은 양국이 협상을 통한 타협을 시도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하지만 미국의 지속적인 관세 부과는 다른 국가의 경쟁적인 수입 관세 인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선진국의 관세 부과에 신흥국도 수입 규제뿐 아니라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비관세 장벽을 높일 우려도 있다.

이렇게 미국과 중국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산될 경우 자유무역 기조가 위축되며 세계 경제 전반에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 블룸버그는 경제학자 제이미 머레이와 톰 오를릭의 분석을 인용, “미국이 관세를 10% 부과할 경우, 그러지 않을 경우보다 2020년에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0.5%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손실액은 약 4700억달러에 육박한다”고 보도했다.

미·중 간 갈등이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확대되면 우리나라 경제도 위기에 빠지는 것은 물론이다. 중국과 미국이 우리나라 총수출의 37%를 차지하는 1, 2위 수출 국가라는 점에서 수출, 경제 성장, 고용 부문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우선 중국에 중간재 수출이 많은 한국 기업의 피해가 예상된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감소되면 원재료 가공을 위탁받아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가공 무역이 동반 감소하기 때문이다. 미·중 통상 분쟁으로 중국 소득과 내수가 감소하는 것도 우려된다. 대외경제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미·중 통상마찰 영향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중간재 수출 총액(3172억달러) 중에서 대중 수출 비율은 29%(920억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로서는 미국과 중국 양강 틈바구니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통상 정책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수출 시장을 다각화하고 미·중 무역전쟁 여파가 우리 경제로 확대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G2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수출 시장 다변화, 제품력 강화 필수

전문가들은 우리 통상 당국과 산업계가 이전과는 다른 협업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김천구 연구위원은 “미·중 무역갈등이 글로벌 통상환경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며 “정부와 업계가 미·중 무역전쟁 양상 등 각종 현안을 실시간 소통하고 업계 중심 통상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남대엽 포스코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수출 시장 다변화와 제품력 강화, 내수 시장 확대를 통해 외부 충격에 강한 경제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보호무역 확산시킨 1930년대 무역전쟁

대공황이 한창인 1932년 미국 뉴욕의 시립 숙박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료 식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대공황이 한창인 1932년 미국 뉴욕의 시립 숙박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료 식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과거 무역전쟁의 대표적인 사례는 대공황 시기에 발생했다. 1930년 미국에서 제정된 ‘스무트-홀리(Smoot-Hawley) 관세법’을 시발점으로 전 세계적인 무역전쟁이 발생했다. 미국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정한 스무트-홀리법은 1930년 6월 17일 발효됐으며, 2만1000개의 수입품목에 대해 관세를 새로 부과하거나 관세율을 인상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법의 평균 관세율인 60%는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이는 영국·프랑스 등 주요국들이 경쟁적으로 수입 관세를 높이며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보호무역주의의 강화로 1930년 6월 세계 교역량(물량 기준)은 경기가 정점이었던 1929년 6월 대비 약 8% 줄었으며, 1932년 8월에는 약 31%가 감소했다. 금액 기준 세계 교역량은 1929년 1분기 84억4000만달러에서 1933년 1분기 약 30억4000만달러로 60% 이상 줄어들었다. 미국 교역량은 금액 기준으로 1929년 145억달러에서 1932년 약 39억달러까지 감소했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도 큰 타격을 받았다. 세계 산업생산은 1929년 대비 1년 후 약 15%가 감소했으며, 1932년 7월에는 40% 가까이 줄었다. 주식시장도 폭락했다. 1932년 6월 세계 주식시장은 1929년 6월 대비 약 70%까지 쪼그라들었다. 자연히 실업자 수도 급증했다. 미국의 경우 대공황 이전 약 7.7%였던 제조업 실업률은 대공황 기간 26.1%까지 치솟았다. 미국의 스무트-홀리법안에서 시작된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은 다른 국가로 빠르게 퍼지며 세계 경제가 깊은 침체에 빠지게 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주요국들은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파국을 맞았던 경험으로 WTO를 통해 세계 무역 질서의 기초를 세우고 자유무역 기조를 확대하는 기반이 됐다.

이번 미국발 통상전쟁은 대공황 당시와 유사하게 다른 국가들의 경쟁적인 수입 관세 인상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 미국의 관세 부과가 주요국의 반발을 낳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면 최근 상승 흐름을 타고 있는 세계 경제가 타격을 받게 된다.

Plus Point

한·미FTA 개정 협상 타결
철강 지키고, 자동차 내줘…통상갈등 불씨는 여전
美 일방적 보호무역 조치 막을 구체적 방안 찾아야

장시형 부장 대우

미국 워싱턴DC 무역대표부(USTR) 회의실에서 한·미 양국 정부 대표단이 제1차 한·미FTA 개정 협상을 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미국 워싱턴DC 무역대표부(USTR) 회의실에서 한·미 양국 정부 대표단이 제1차 한·미FTA 개정 협상을 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이 큰 틀에서 타결됐다. 한·미FTA 협상은 2007년 처음 타결된 이후 한국에 유리한 협정이라는 미국의 공세가 이어져 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취임하자 한국에만 유리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고 2010년 우리가 자동차 분야를 일부 양보해 3차 협상이 타결됐다. 당시에도 일방적 양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양국 간 교역은 순항하는 듯 했지만 보호무역을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다시 전환점을 맞은 것이다.

이번 한·미FTA 개정 협상에서 철강 분야는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고, 자동차 분야는 내줬다.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모두 ‘윈윈’ 합의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철강·자동차 업계는 모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흑자 중 대부분이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자동차 업계의 반발이 크다. 우리 정부는 기존 자동차 무관세 수출을 건드리지 않고 미국 부품 의무사용도 피했다는 점에서 선방했다고 평가하지만 2021년 폐지 예정이었던 화물 자동차(픽업트럭) 관세철폐 기간이 20년 더 연장됐다는 점에서 국내 업체들이 우려하고 있다. 미국 픽업트럭 시장은 경기회복과 저유가 등으로 최근 5년간(2012~2016년) 연평균 6%씩 성장했다. 주요 미래 시장인 셈이다. 하지만 관세철폐가 미뤄지면서 픽업트럭 개발에 나선 현대·기아자동차는 미국 시장 진출에 엄두도 내기 어려워졌다. 포드·GM·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82%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픽업트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위협을 미리 제거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미래를 포기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철강 관세를 피하기 위해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면서 “특히 픽업트럭 관세 20년 연장은 자동차 업계에 앞으로 미국에 수출하지 말라는 뜻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산업 타격 불가피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의 공세는 거세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미국 자동차는 자동차 업체별로 연간 2만5000대까지 미국 내 안전 기준을 준수한 경우 한국 안전기준을 따른 것으로 간주됐다. 이 제한 물량이 5만대로 늘어난다. 미국 기준만 맞추면 우리나라에서 별도의 인증절차 없이 팔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수입차 가운데 미국 브랜드 비율이 10%도 안 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부분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국내 환경·안전기준을 맞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미국 차 외에도 벤츠·BMW·도요타 등 미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독일·일본 차도 사실상 국내에 들여오는 시간이 단축된다”며 “장기적으로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는 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한·미FTA 개정 협상 타결로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철강 수출 물량을 줄이기로 했는데 그 시한이 명시되지 않았고, 철강 관세처럼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가 다른 품목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 타결에 대해 최악의 상황을 피했지만 ‘협박성 거래’를 받아들인 선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최병일 교수는 “이번 협상 타결이 나쁜 선례가 돼 앞으로 트럼프 정부 내내 통상공세에 시달리게 됐다”고 강조했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일방적 보호무역조치를 억제할 구체적인 제도적 방안을 이번 협상에서 전혀 마련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