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암만(왼쪽에서 두 번째) GM 총괄사장이 4월 26일 오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한국GM 대책특위 홍영표(오른쪽에서 두 번째)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 조선일보 DB

법정관리를 눈앞에 뒀던 한국GM이 가까스로 회생 기회를 얻었다. 지난 2월 군산공장 폐쇄 결정으로 촉발된 한국GM 사태는 4월 26일 조합원 찬반 투표를 통해 2018 임금·단체 협약이 최종 타결된 데 이어, 같은 날 GM 본사와 KDB산업은행이 한국GM에 7조원이 넘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일단락됐다. 산은은 GM이 지원만 실컷 받아놓고 한국에서 철수해버리는, 이른바 ‘먹튀’를 하지 못하도록 한국GM이 10년 이상 체류해야 하는 장치까지 마련했다. 한국GM 경영 실사가 종료되는 5월 초 전후로 산은과 GM의 투자 본계약이 이뤄지고 GM이 추진하는 한국 내 세금 감면 절차까지 완료되면 한국GM의 경영정상화 준비 작업은 완료된다.

GM이 한국에서 철수하면 1만6000명의 한국GM 임직원은 물론 수백 곳의 협력업체 등 약 15만6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각 GM 공장이 위치해 있는 지역의 경제 역시 큰 타격을 입는다. 가까스로 막아낸 위기인 만큼 ‘한숨 돌렸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안 그래도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던 한국GM은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누더기가 됐다.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내수 판매가 계속 줄어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지난 3월에는 2002년 대우에서 한국GM으로 사명이 바뀐 이래 처음으로 국내 완성차 업체 중 내수 판매 꼴찌를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GM이 한국을 떠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한국GM, 나아가 한국 자동차 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통해 ‘GM이 남고 싶은 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은과 GM의 합의로 한국GM의 생명선이 연장됐다. 4월 26일 산은과 GM은 향후 10년간 총 70억5000만달러(약 7조7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GM은 기존에 한국GM에 빌려줬던 27억달러(약 2조9000억원)를 자본금으로 출자전환하고, 36억달러(약 3조8000억원)를 신규 투자하기로 했다. 산은은 지분율에 따라 7억5000만달러(약 8100억원)를 신규 투자에 보탠다. 당초 GM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제시했던 신규 투자 금액은 GM과 산은을 합쳐 28억달러였다. 그러나 GM이 협상 막판 희망퇴직금 지급 등을 위한 긴급 단기자금 지원액이 필요하다고 해 15억5000만달러가 늘어난 43억5000만달러(약 4조8000억원)가 됐다. 박상원 흥국증권 이사는 “미국 등 해외 사례를 보면, 기업을 도산 위기에 방치할 경우 실업자 양산은 물론 지역경제가 붕괴돼 이후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도 살릴 수 없다”며 “산은이 지원금을 투입하지 않았을 경우에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예상한다면 합리적 결정”이라고 말했다.

산은과 GM의 자금 투입은 조건부 합의에 따른 결과물이다. 먼저 한국 부평·창원공장에 차세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2종을 배정하기로 했다. 미래 먹을거리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앞서 한국 정부는 GM이 미래 자동차 분야에 신기술 투자를 확대 중이라는 점을 고려해 전기차 배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GM 측은 현재 세계적으로 생산 중인 전기차가 연간 2만5000대, 한국 내에서 팔리는 전기차는 5000대 규모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즉 전기차 생산·조립 라인을 한국에 만들어 봐도 현재 시장 규모에 비춰볼 때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GM은 한국GM의 생산시설을 10년 이상 유지하기로 약속했고, 산업은행이 GM의 한국 시장 철수를 막을 수 있는 비토권(거부권)을 계약서에 명시하기로 했다.

정부와 GM이 이처럼 자금 수혈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날 오전에 임단협 합의안이 노조에서 가결됐기 때문이다. 정부와 GM은 노사 간 합의가 있어야 자금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해왔다. 한국GM 노사가 진통 끝에 마련한 올해 임단협 합의안에는 군산공장 잔류 근로자 680명에 대해 추가 희망퇴직과 전환배치를 실시하고, 무급휴직은 실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대신 노조는 단협 개정을 통해 본인 학자금, 자가운전 보조금 등 1000억원에 가까운 복리후생 항목을 축소하기로 했다. 기본급을 동결하고 올해 성과급은 받지 않기로 했다.

이제 한국GM 경영정상화를 위해 남은 것은 5월 초 최종 실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와 GM이 투자 확약서를 체결하는 일과 한국GM이 정부에 신청한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을 마무리하는 작업이다. 외투지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기업은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외국인투자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 최초 5년간 법인세가 100% 감면되고 이후 2년간 50% 감면된다.



군산공장 폐쇄 철회를 촉구하고 있는 금속노조 GM지부 노조원들. / 조선일보 DB

10년 시간 벌었다…문제는 지금부터

협상대로라면 GM은 10년간 한국에서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외투지역 신청서에도 2018~2027년, 향후 10년간 국내에서 475만 대를 생산하고 누적 매출 100조원을 거두겠다는 한국GM의 계획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10년이라는 시간을 벌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앞으로의 과제는 한국을 10년 뒤 GM이 여전히 남아 있고 싶은, 매력적인 자동차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GM의 체질 개선을 위해선 노사문제 해결이 선결 과제로 꼽힌다. 이번 사태 해결 과정에서 보여준 노사의 태도는 서로 불신만 키웠다. 사측은 노조와의 협의 없이 여러 현안을 결정했고, 이를 접한 노조는 사장실 집기를 파손하는 등 폭력으로 맞섰다. GM 본사는 한국GM을 ‘위험지역’으로 분류하고 본사 임원들의 출장을 금지하기도 했다. 김수욱 교수는 “이번 합의는 법정관리 시한에 맞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뤄낸 것이기 때문에, 노조의 진정성에 대해 GM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이 의구심을 풀어줄 수 있는 노사 상생 협력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GM이 글로벌 전략에서 한국GM을 비중 있게 다루게 하려면 한국GM은 물론 한국 자동차 시장의 경쟁력 향상도 필요하다. 주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GM은 이미 소형 SUV ‘트랙스’와 소형 승용차 ‘스파크’를 개발해 뛰어난 연구·개발(R&D) 역량을 증명했다”며 “생산 경쟁력은 다소 상실했지만, R&D 경쟁력을 더욱 키운다면 10년 뒤 한국GM의 모습은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GM이 한국GM에 전기차를 배정하지 않은 것은 관련 산업 경쟁력이 약한 것이 한 요인”이라며 “한국은 자동차·전자·정보통신(IT) 기술이 모두 발전해 있는데, 미래 자동차를 위한 ‘전장 산업’은 발전하지 못했다. 정부는 자동차 부품 산업 혁신을 이끌어 10년 뒤 GM이 미래 자동차 생산을 위해 한국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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