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한 재래시장이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유럽·신흥국의 경기가 회복되면서 스페인의 관광 산업이 활력을 띠고 있다. / 블룸버그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 4위 경제 대국 스페인이 3위인 이탈리아보다도 더 부자가 됐다는 소식에 국제 사회가 깜짝 놀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스페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구매력 기준)이 3만8286달러로 이탈리아(3만8140달러)를 앞질렀다고 최근 보도했다. GDP가 국가별 경제 규모를 비교한다면, 1인당 GDP는 국민의 평균적 생활수준을 비교하는 지표다. 여기에 물가 수준까지 반영해 실질 구매력을 보여주는 것이 ‘구매력 기준 1인당 GDP’다. IMF는 향후 5년간 이 같은 역전 현상이 지속돼 스페인 1인당 GDP가 이탈리아보다 7%가량 웃돌 것으로 예측했다.

유럽 재정위기의 진원지이자 만성 재정적자로 ‘유럽의 병자(病者)’ 취급을 받았던 ‘피그스(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의 스페인이 부활하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던 스페인은 2014년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고,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실질 GDP가 3.2%씩 성장했다. 2013년 26.1%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지난해 17.5%로 9%포인트가량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스페인의 부활 요인으로 유럽과 신흥국의 경기 회복에 따른 수출·관광업 호황과 노동생산성 제고를 꼽는다. 유럽 재정위기가 고조됐던 2011년 말부터 집권한 중도 우파 성향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쉬운 해고, 해고수당 삭감, 물가 비연동 임금 인상’ 등을 골자로 한 고강도 노동개혁을 추진해 왔다. 정규직의 퇴직금을 줄이고 해고 절차를 간소화했다. 경영이 어려운 기업은 노사 협약을 따르지 않고 자체적으로 임금을 조정할 수 있게 해줬다. 대신 청년을 고용하는 기업에는 세금을 깎아줬다. 라호이 총리가 노동 유연성에 방점을 찍은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일자리 지표가 개선됐다.

로만 에스콜라노 스페인 재무장관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스페인의 최근 경제 지표가 크게 개선되고 있다”면서 “일자리를 더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실업률이 여전히 17%대에 달하는 만큼 노동개혁을 지속하겠다는 뜻이었다.

이탈리아 역시 재정위기 이후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서고 있다. 다만 2%대를 웃돌았던 실질 GDP 성장률(재정위기 이전)을 회복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5년부터 3년간 이탈리아의 실질 GDP는 0.8~0.9% 성장하는 데 그쳤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데다 거대 관료제, 여전히 높은 국가 부채 등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정(政情) 불안은 경제 개혁이 절실한 이탈리아의 앞길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스페인에 있는 글로벌 경제 연구소 ‘포커스이코노믹스’의 마시모 바세티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에서 “(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五星)운동이 최대 정당으로 부상한 지난 3월 총선 결과를 보면, 이탈리아의 강도 높은 구조개혁은 실현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이탈리아의 잠재 성장률은 다른 유로존 국가들을 밑도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럽 병자들, 차례로 퇴원 준비 중

3월 4일(현지시각)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에서 오성운동은 단일 정당 득표율 32.2%를 기록하며 이탈리아 최대 정당으로 도약했다. 2위를 차지한 민주당의 득표율 18.9%의 거의 두 배였다. 2009년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와 인터넷 기업가였던 잔로베르토 카살레조가 반부패·반유럽연합(EU) 기치를 걸고 함께 만든 오성운동은 창당 9년 만에 정치 무대의 주류에 서게 됐다.

다른 피그스의 상황도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는데, 특히 아일랜드의 성장세가 놀랍다. IMF 기준 2015년 아일랜드의 실질 GDP 성장률은 무려 25.5%에 달했다. 이는 직전 해(8.3%)의 세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아일랜드가 법인세율이 높은 국가 기업의 조세 회피처로 각광받은 것이 작용했다고 해외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선진국 가운데 최저 수준인 12.5%다. 해외 기업이 본사를 아일랜드로 이전할 경우 해당 기업 소유의 설비 등 자산이 통계상으로 아일랜드 자산으로 간주돼 GDP에 포함된다. 이런 착시효과를 빼고 고용, 실업률, 세수, 민간 소비 등을 고려했을 때 아일랜드의 실질 성장률은 25.5%에서 4~4.5% 수준으로 확 줄어든다. 지난해 아일랜드의 실질 GDP 성장률은 7.8%였다.

포르투갈도 2014년 이후로 1~2%대 실질 GDP 성장률을 나타내고 있다. 피그스 중에서도 중환자로 꼽혔던 그리스는 지난해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또 피그스의 리스크 요인이었던 국가의 재정 건전성도 회복하는 모습이다. 그리스(180%)를 제외한 스페인(99%), 포르투갈(126%), 이탈리아(133%) 등의 GDP 대비 부채 규모는 줄어들고 있다. 김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로존 경기 회복세가 독일·프랑스 등 중심국에서 이제 재정위기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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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력 기준(PPP·Purchasing Power Parity) 1인당 GDP 한 나라 안에서 가계·기업·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가 생산활동에 참여해 벌어들인 부가가치를 합산한 것이 GDP다. 나라별 비교를 위해 GDP를 달러화로 환산해서 표시한다. 그러나 이 지표는 각국의 물가 수준이 반영되지 않아 1인당 GDP가 실제 그 나라에서 어느 정도 구매력을 갖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1인당 GDP가 똑같이 2만달러라 하더라도 물가가 다르면 살 수 있는 상품·서비스가 다르다. 국가별로 다른 물가 수준을 감안해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구매력 기준 1인당 GDP다.

Plus Point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최대 리스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을 외치는 시위대가 진압하려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블룸버그

현재 스페인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중앙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카탈루냐는 스페인 GDP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부유한 지역이다. 주민 95%가 스페인어가 아닌 카탈루냐어를 쓰고, 인터넷 도메인 주소도 스페인을 뜻하는 ‘.es’가 아닌 ‘.cat’을 쓸 정도로 독립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스페인 중앙정부와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갈등은 스페인이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지원금은 삭감하고 세금은 대폭 인상하면서 본격화했다. 카탈루냐는 거세게 반발했다. 2017년 10월 1일 당시 카를레스 푸이그데몬트 자치정부 수반은 분리 독립 찬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강행했다. 전체 90%가 찬성표를 던졌다.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이어 10월 27일 독립선언을 통해 카탈루냐 공화국을 선포했다. 스페인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치정부를 해산해 충돌이 잇따르고 있다.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정치 지도자들을 체포·구금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카탈루냐가 실제로 독립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급진좌파를 제외한 주요 정당 대부분이 카탈루냐 분리 독립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카탈루냐 주민 여론이 중앙정부로부터 정치·경제적 자유와 특혜를 받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일부 돌아서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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