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중부고속도로에서 달리던 BMW 차량에서 불이 나 소방 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원주소방본부
7월 29일 중부고속도로에서 달리던 BMW 차량에서 불이 나 소방 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원주소방본부

주행 중 불이 나는 BMW 차량에 리콜(결함시정) 조치가 내려졌지만 화재 원인을 둘러싼 논란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BMW코리아와 국토교통부는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결함을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단순한 부품 결함 차원을 넘어선다”고 반박하고 있다. 차주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화재 원인은 불분명한 데다 리콜에도 수개월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BMW는 ‘불나는 차’라는 이미지로 인해 브랜드 가치 추락에 직면했다.

올 들어 불이 난 BMW 차량은 8월 2일까지 29대에 달했다. 이 중 16건이 BMW 520d였다. 520d는 ‘강남 쏘나타’로 불릴 정도로 국내에서 인기 있는 차종이다. 올 상반기에만 6706대가 팔렸다.

통상 국내에선 한 해 5000여 건의 차량 화재가 발생하지만 이렇게 특정 모델에 사고가 집중 발생한 것은 이례적이다. 화재 사고가 모델별로 2~3건 정도로 나는데,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치는 아니다. 또 차량 화재 사고가 발생하면 대부분 전소되기 때문에 원인 규명에 어려움이 많다. 원인도 주로 과실이나 관리 부실이다.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화재 원인이 정확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BMW코리아와 국토부가 추정한 원인은 ‘EGR 결함’이다. 디젤 엔진 차량에는 오염물질의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EGR 모듈을 장착한다. EGR 쿨러(냉각기)와 EGR 밸브 등으로 구성된 이 모듈은 디젤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배기가스를 식혔다가 내부에서 재순환시키는 장치다. 400도 정도인 배기가스를 EGR 쿨러를 거쳐 식힌 뒤 엔진에서 재연소한다. 이 과정에서 냉각기의 냉각 효율이 떨어지고 고온의 배기가스가 엔진으로 유입되는 통로인 흡기다기관에 쌓인 기름 찌꺼기에 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했다는 게 BMW 측 주장이다.

박병일 자동차명장은 “디젤 차량의 엔진에는 기름 찌꺼기가 많이 생긴다”며 “고온의 가스가 흡기 라인에 쌓여 있는 기름 찌꺼기를 발화시키고, 이 불이 EGR 모듈 주변의 플라스틱 재질의 흡기다기관이나 서지탱크(엔진에 공기 흡입을 도와주는 부품) 등에 옮겨붙어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 명장은 “EGR은 고장이 가장 많이 나는 부품 중 하나”라며 “6만~7만㎞ 주행한 차량에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문제가 된 520d는 국내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널리 판매된 차종이다. EGR 모듈은 한국 중소기업이 만들었지만 독일로 수출돼 글로벌 BMW 디젤 차량에 들어간다. 또 이 제조사의 EGR쿨러는 현대·기아자동차뿐만 아니라 GM, 포드 등에도 납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외에서 EGR 결함으로 인한 화재 사고나 관련 리콜은 없었다. 같은 차종에 장착되거나, 다른 차종에 같은 부품을 쓰는데도 유독 국내 BMW 차량에만 화재 사고가 빈번한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BMW 측도 “EGR 부품은 전 세계에 공통 적용됐는데, 이 장치의 결함으로 인한 화재가 다른 나라에서는 없었다”고 주장하면서도 한국에서만 차량 화재가 발생하는 데 대해선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배기가스 환경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EGR 모듈을 운행 조건이나 특성에 맞춰 설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추정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사건 이후 한국 정부가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이에 맞춰 EGR 가동률을 높인 게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해 EGR 가동률을 높이면서 이때 필요한 냉각수 용량을 잘못 계산했거나, 한국에서만 소프트웨어를 다르게 작동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 “EGR만의 문제 아니다”

하지만 이런 추정도 전문가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일부 전문가들은 EGR이라는 부품 하나만을 요인으로 봐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 EGR 제조 업체 관계자는 “EGR은 생산 업체에서 엄격한 품질검사가 이뤄지고, 완성차 업체에서도 부품 신뢰성 시험을 한 이후 장착되기 때문에 결함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BMW 차량 시스템의 전반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해외 시장에 판매하는 차량에 각국의 자동차 정책과 법규에 따라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된 전자제어장치(ECU)를 탑재한다. 따라서 국내에서 판매된 BMW 차량의 ECU에 적용된 조건 중 일부가 잘못돼 하드웨어에 과부하가 걸려 화재를 유발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자동차에는 장애가 발생했을 때 각종 경고등이 들어오는데, 이번 화재 사고에서는 온도센서가 작동하면서 경고등이 켜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며 “이는 EGR뿐만 아니라 ECU, 규격에 맞지 않는 부품 등 차량의 전반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BMW 측이 근본적인 결함은 숨기고 EGR에 문제를 덮어씌웠다는 것이다.

BMW 측이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국내에선 이를 감춰온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서 BMW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5년 11월이었다. 그 달에만 5대의 BMW 차량에서 불이 났다. 당시 연료 호스가 문제였지만 BMW는 화재 이유로 소비자 과실을 주장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번 화재의 원인으로 연료 라인의 결함 가능성이 대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화재가 발생한 BMW 차량 10여 대를 조사한 이의평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조사한 차량에서 다양한 문제가 발견됐다”며 “화재가 한 가지 요인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디젤 자동차의 연료인 경유는 연료통에서 고압펌프, 커먼레일(고압 연료 저장장치), 인젝터(연료분사장치)를 거쳐 엔진의 실린더 내부로 분사된다. 

이 과정에서 경유는 엄청난 압력으로 이동한다. 디젤 엔진은 공기와 경유를 압축한 상태에서 이를 엔진에 분사해 폭발시키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의평 교수는 “그동안 불이 난 차량에서 커먼레일, 인젝터, 연료 호스 등에서 누유된 사례를 가장 많이 봤다”며 “그 외에도 엔진오일이 순환되지 않거나, EGR에 문제가 생긴 경우는 각각 한 번 정도였다”고 강조했다.

다른 자동차 전문가도 “EGR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 장치가 화재의 원인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라며 “불이 났다면 발화원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결국 연료나 오일 문제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완전 변경(풀체인지)돼 국내에 판매되고 있는 현 7세대 신형 5시리즈 모델에서는 관련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도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신형 5시리즈에는 EGR 밸브 옆에 있는 서지탱크 등의 재질이 내열성이 강한 플라스틱 소재로 바뀌었다. 이호근 교수는 “부품의 재질을 개선한 차량에서 화재 사고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BMW 내부에서 이 문제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BMW 차량 화재의 또 다른 단서는 미국과 영국에서 화재 위험을 이유로 진행한 리콜에서도 일부 드러난다. BMW는 지난해 11월엔 미국에서 100만 대(2006~2011년산 3·5시리즈), 올 5월엔 영국에서 30만 대(2004~2011년산 3시리즈)를 리콜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5년여간 BMW 차량 40여 대에서 실제 화재가 발생했다. 냉난방 시스템 배선 과열 등이 원인이었다. 이 교수는 “미국과 영국 등에서 리콜한 이유가 국내 BMW 차량의 화재 원인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BMW 측은 차량 화재 원인은 EGR이라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리콜은 BMW 차량의 전반적인 문제는 아니고 EGR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에 따른 리콜 조치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