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홍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는 베트남 팬들. 사진 연합뉴스
금성홍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는 베트남 팬들. 사진 연합뉴스

‘보딕(무적) 베트남!’

8월 29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는 한국과 베트남의 아시안게임 준결승전을 보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천명의 현지 축구팬들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세찬 비가 쏟아졌지만, 비옷을 입은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금성홍기(베트남 국기)를 흔들며 거리 행진을 이어갔다. 오토바이로 줄지어 달리며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호찌민 중심가 응우옌후에 광장을 비롯해 쇼핑몰, 식당, 카페 등 경기를 볼 수 있는 곳 역시 응원에 나선 팬들로 북적였다. 베트남 패배가 확정되기는 했지만 축제 분위기는 이어졌다. 한 축구팬은 베트남 현지언론과 인터뷰에서 “베트남이 아시안게임에서 4강에 진출한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라고 말했다.

축구팬들은 거리 응원뿐만 아니라 경기 결과를 예측해 베팅하는 불법 스포츠 도박판으로도 몰렸다. 예를 들어 베트남 최대 불법 도박 사이트인 ‘M88’은 국내 리그뿐 아니라 아시안게임, 월드컵 등 세계적인 대회 결과에도 쉽게 베팅할 수 있도록 운영되면서 팬들의 돈을 빨아들였다. 주로 범죄 조직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런 불법 도박 사이트가 판이 큰 해외 스포츠 경기 베팅을 조장하면서 매년 베트남에서 해외로 유출되는 돈은 최소 8억달러(약 9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덕에 현지 전당포는 ‘아시안게임’ 특수를 누렸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2545달러(약 286만원) 규모의 베트남은 여전히 은행 문턱이 높아 연 30% 수준에 달하는 고금리의 전당포를 찾는 사람이 많다. 특히 전당포는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등 주요 축구 시즌이 되면 주 7일, 24시간 영업체제로 전환해야 할 만큼 바빠진다. 판돈을 마련하기 위해 전당포에 스마트폰, 노트북, 오토바이 등 고가 담보물을 맡기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기간 전당포의 대출 이자는 시즌 전과 비교해 두 배 정도 오르지만 담보물을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로 북적인다. 전당포 호황은 도박으로 큰돈을 잃은 사람들의 폭력, 자살 사건 등 사회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베트남 정부는 연간 수십억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을 합법화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 베트남 국민은 정부가 허용한 월드컵, 아시안게임, 동남아시아 게임, 남미월드컵 등에 합법적으로 베팅할 수 있게 된다. 도박 열기를 막을 수 없다면, 돈이 해외로 새는 것을 막고 세수라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베트남에서는 경기를 볼 수 있는 모든 곳이 거리응원장이 된다. 사진 연합뉴스
베트남에서는 경기를 볼 수 있는 모든 곳이 거리응원장이 된다. 사진 연합뉴스

현지기업 박항서 모시기 경쟁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내기’ ‘도박’은 유일한 해방구로 통한다.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내기가 생활화돼 있다. 이를테면 설 연휴 카지노게임의 일종인 룰렛(회전판)으로 새해 운을 점쳐본다든가, 체스게임, 골프경기를 하면서 습관처럼 내기하는 식이다. 한 베트남 현지인은 일본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베트남 사람들은 심지어 내일 날씨가 어떨지에 베팅하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이제 베트남 축구팬들은 올해 11월 열릴 ‘스즈키컵’을 기다리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월드컵’ 격인 이 대회에서 베트남은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우승을 노리고 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올해 1월 AFC(아시아축구연맹) 주최 U-23(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한 데 이어 8월 아시안게임에서도 4강에 오르며 선전한 만큼 동남아 국가들만 겨루는 스즈키컵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부임 초기만 해도 유명한 감독이 아니라는 이유로 조롱받았던 박 감독은 이제 그 어느 한류스타보다도 베트남 국민이 사랑하는 한국인이 됐다. 현지 기업들도 ‘박 감독 모시기’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베트남 최대 소비재기업인 비나밀크는 박 감독을 제품 홍보모델로 기용했고, 베트남항공은 박 감독의 성과를 기념하기 위해 항공권 할인행사를 펼쳤다.


plus point

‘생큐, 박항서!’ 베트남서 특수 누리는 韓 기업들”

박항서 감독을 광고모델로 내세운 덕비엣푸드의 ‘서울 핫도그’. 사진 덕비엣푸드
박항서 감독을 광고모델로 내세운 덕비엣푸드의 ‘서울 핫도그’. 사진 덕비엣푸드

최근 베트남에서 돌아다니는 택시에는 일약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박항서 감독이 핫도그를 먹는 광고판이 붙어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대상그룹이 지난 2016년 인수한 현지 육가공 사업 법인 덕비엣푸드(Duc Viet Food)가 내놓은 ‘서울 핫도그’란 제품이다. 덕비엣푸드는 지난 3월 박 감독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박항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덕비엣푸드는 어린이 소시지 등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박 감독이 출연하는 TV 광고를 제작, 지난 6월부터 베트남 국영 채널 등에서 송출하고 있다. 베트남 택시와 주요 빌딩 등에서 옥외광고도 시작했다. 이에 따라 매출도 두 자릿수로 뛰었다. 대상에 따르면 7월 기준 덕비엣푸드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늘었다. 8월에 아시안게임이 있었던 만큼 매출 증가세가 더 폭발적일 것으로 회사 측은 예상한다.

박 감독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동아제약의 ‘박카스’도 베트남에서 인기몰이하고 있다. 동아제약은 지난 6월 박 감독을 홍보 모델로 기용하고 캔 외관에 사진과 친필 사인을 새겼다.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뒤 10여년 동안 현지 음료에 밀려 고전하던 동아제약은 축구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베트남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현지 일부 매장에서는 박 감독 사진이 들어간 박카스가 동이 나기도 했다. 동아제약 내부에서는 “박항서 매직(마법)이 실감난다”는 반응이 나왔다.

박 감독이 브랜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삼성전자 베트남법인도 ‘박항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아시안게임 기간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인도네시아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현지 공장의 풋살장을 연습 공간으로 제공했다. 앞서 올 초 대표팀이 U-23 챔피언십 결승에 진출했을 때 대표팀 전원에게 개인 백넘버와 이름을 새긴 ‘갤럭시노트8’과 ‘기어S3’를 기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코트라 호찌민무역관의 이주현 담당은 “베트남 기업들은 축구를 기업 이미지와 제품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한국 기업들도 베트남의 높은 축구 인기를 회사 비즈니스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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