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 홍종학(오른쪽)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답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중기부는 이날 ‘협력이익공유제 도입 계획’을 밝혔다. 사진 조선일보 DB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 홍종학(오른쪽)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답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중기부는 이날 ‘협력이익공유제 도입 계획’을 밝혔다. 사진 조선일보 DB

정부가 대·중소기업 ‘협력이익공유제’ 법제화를 강행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협력이익공유제는 대·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정한 목표 매출이나 이익을 달성하면 대기업이 거둔 이익 일부를 중소기업에 나눠주는 성과배분제도를 말한다. 예를 들면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가 신제품을 함께 개발해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미리 맺은 배분 계약에 따라 이익을 나누는 것이다. 야당에선 협력이익공유제 법제화가 반시장적·사회주의적 발상이란 말까지 나온다. 재계는 협력업체의 기여도를 산술적으로 계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제도 자체의 실효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더불어민주당은 11월 6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를 하고 ‘협력이익공유제 도입 계획’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당정은 협력이익공유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 근거 마련을 위해 관련 상생협력법 개정안 통과에 협력하기로 했다. 법안 통과에 앞서 중소벤처기업부는 시범사업에 들어가고 제도 도입을 희망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먼저 시행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협력이익공유제를 도입한 기업에 대해 법인세 세액 공제(10%)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

하지만 재계는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협력이익공유제 법제화 추진 움직임이 시장 질서에 반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기업 경영의 독립성을 위반하는 것이며, 대기업의 이윤 추구를 유인할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보장된 이윤 동기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이윤 동기가 없으면 시장경제의 근간이 무너지고, 투자 유인의 감소로 혁신과 성장이 저해된다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간 이익 배분을 법제화로 규제하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주주 재산권 침해도 우려된다. 기업이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남은 잔여 재산에 대한 권한은 주주에게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주식회사의 이익을 주주에게 환원하지 않고 다른 곳에 강제로 배분하는 것은 시장경제 기본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협력이익공유제의 발상에는 ‘대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의 상당 부분은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중소기업의 희생에 따른 것’이라는 관념에서 출발한다”며 “대기업을 중소기업 착취의 주체로 본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제화 이전에 제도 자체의 실효성도 없다. 대기업의 협력업체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데, 이를 국내외로 나누긴 어렵다. 해외 협력업체를 두고 있는 대기업이 국내 협력사와 이익을 공유하면 국내외 차별 논란 등 또 다른 분쟁을 불러올 수 있다. 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제시해 이익 공유를 피할 수도 있고, 수많은 협력업체의 기여도를 일일이 측정하기도 쉽지 않다. 협력업체의 부품 공급이 최종 제품 판매를 통해 얻은 이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평가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진화에 나섰다. 정부는 “대·중소기업 간 자율적 합의에 따른 이익 공유에 인센티브를 주기 위한 법제화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협력이익공유제 법제화를 대기업 이익을 강제로 중소기업에 나눠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대·중소기업의 상생을 촉진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가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협력이익공유제를 자발적으로 도입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지원하기 위한 입법이라고 하지만 참여하지 않는 기업은 결국 정부 정책에 반하는 곳으로 찍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시행이 강제가 아닌 권장 사항이라면서 정부는 이 제도를 시행하는 대기업에 법인세 등 세액 공제, 동반성장 평가 우대, 공정거래협약 평가 우대 등을 지원한다. 이는 결국 시행하지 않는 기업은 조세 감면도 없고, 각종 평가에서 우대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하자는데 어떤 기업이 무시할 수 있겠냐”며 “말만 ‘자율’이지 결국은 또 다른 규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중소기업과 나누라는 것이 과연 공정경제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대기업 자율의 성과공유제로도 충분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에 부담을 느낀 대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올 상반기 국내 제조업체가 해외에 공장을 세우거나 증설하기 위해 투자한 금액은 역대 최대인 74억달러(약 8조3000억원)에 달했다. 이병태 교수는 “일부 대기업은 협력사를 해외 기업으로 바꾸거나 국내 중소기업과 협업을 줄일 가능성도 있다”며 “이익 공유의 혜택을 받는 기업은 결국 1차 협력업체에 국한되기 때문에 중소기업 간 갈등도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계에선 협력이익공유제의 무리한 도입보다는 기존의 ‘성과공유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도 대·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성과공유제는 대기업과 협력사가 원가 절감 등을 위한 공정 개선과 신기술 개발을 통해 성과를 내면 사전에 정해진 배분 규칙에 따라 현금 보상 등을 실시하는 대·중소기업 상생제도를 말한다. 협력이익공유제가 대기업의 영업이익 등 재무적 성과를 기준으로 삼는 것과 달리 성과공유제는 모든 형태의 협력 성과를 대상으로 한다. 또 대기업의 성과가 아닌 협력업체의 성과를 공유한다는 점도 다르다.

2004년 포스코가 처음 도입한 이후 2012년 정부 차원에서 ‘성과공유제 확인제’를 본격 시행하면서 참여 기업이 5배 이상 늘었다. 2012년 77개사였던 참여 기업이 올해 대기업 91곳, 중소기업 329곳으로 증가했다. 포스코의 경우, 지난 15년간 성과공유제를 통해 중소 협력업체와 4656건의 과제를 수행했으며, 과제 수행 성과로 보상한 금액은 3531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협력이익공유제가 대·중소기업 간 격차 완화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은 오로지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때만 스스로 움직인다. 결국 대기업의 참여가 협력이익공유제 성패의 관건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Plus Point

2011년에도 추진했다 중단

협력이익공유제는 글로벌 기업과 국내 일부 기업에서 시행 중이다. 영국의 롤스로이스와 미국 아마존, 구글 등은 협력이익배분제의 일종인 판매수익공유제를 시행하고 있다. 판매수익의 일정 몫을 협력사에 배분하는 제도다. 롤스로이스의 경우, 협력사가 항공기 엔진 개발에 들인 연구개발비만큼의 비용을 이후 벌어들인 판매 수입으로 나눴다. 미국 크라이슬러와 캐리어는 목표이익을 초과하는 이익을 배분하는 ‘목표초과이익공유제’를 운용하고 있다. 일본 도요타와 닛산자동차는 혁신 성과를 공유하는 성과공유제를 도입, 운용하고 있다. 부품의 국산화와 협력사의 제안 등을 통해 이익이 날 경우 이를 협력사와 나누는 식이다. 이러한 이익배분제도는 모두 법과 제도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고, 기업 간 자발적 합의와 계약에 의해 운용되고 있다.

국내에선 인천공항공사가 협력사와 서비스 향상 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평가해 목표를 달성하면 현금으로 보상한 사례가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2014년 43개 협력사와 협약을 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자 60억원을 배분했고, 이는 모든 협력사 직원에게 지급됐다.

협력이익공유제와 비슷한 제도가 국내에서 추진됐다가 사라진 적도 있다. 대기업이 설정한 목표이익을 넘어서 초과이익이 발생할 경우, 이를 중소기업 기여도 등에 따라 중소기업에 나눠주는 ‘초과이익공유제’가 그것이다. 이는 2011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주도로 추진됐지만, ‘목표이익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대한 논란으로 도입이 중단됐다.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라는 것이 사회주의 용어인지, 들어본 적도 없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협력이익공유제에 대한 해외 사례를 연구했던 조혜신 한동대 법학부 교수는 “기업 간 자발적으로 시도되는 이익공유제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사례가 많았다”며 “이를 강제할 경우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