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산업의 구조조정, 불황으로 인한 자영업 부진으로 4050세대가 위기에 빠졌다. 사진 조선일보 DB
주력산업의 구조조정, 불황으로 인한 자영업 부진으로 4050세대가 위기에 빠졌다. 사진 조선일보 DB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던 김모(45)씨는 최근 회사에서 추진하는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20년 넘게 생산현장에서 일했지만 이제 더 이상 버티기도 어렵고, 특별위로금(4000만원)을 받을 수 있을 때 나가는 게 더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회사를 관두면 할 일이 없다. 회사에서 협력업체 재취업을 알선하지만 쉽지 않고,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구하려고 하지만 번번이 허탕을 치고 있다. 비슷한 처지의 중년층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김씨는 “삼성중공업뿐만 아니라 관련 중소업체에서도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일용직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며 “희망퇴직으로 받는 웃돈(특별위로금)이 턱없이 부족하고, 회사 밖이 지옥이라는 말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울산에서 1년 전 명예퇴직하고, 회사에서 알선한 협력업체에 재취업한 박모(48)씨도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월급이 이전 직장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의 교육비 마련을 위해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자녀 교육비에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때문에 허리 펼 날이 없는 그는 당장 생계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후까지 걱정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4050세대가 위기다. 청년층과 노년층에 끼어 ‘샌드위치 세대’로 불리는 40~50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창 자녀의 교육과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세대다. 기업에선 경험과 노하우로 주요 업무를 이끄는 중추 역할을 한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어렵게 취업하거나 구조조정을 당하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은 이 세대가 다시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4050세대의 실업자 증가를 가정과 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숫자로 드러난다. 지난 10월 실업자 수는 97만3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7만9000명(8.9%) 증가했다. 이는 10월 기준으로 외환위기 여파가 계속되던 1999년 이후 최대다. 전년 동월 대비 연령별 실업자 수는 10대와 20대가 각각 17.6%(2000명), 0.8%(3000명) 감소했다. 그러나 30대와 40대, 50대는 7.2%(1만3000명), 27.5%(3만5000명), 23.1%(3만 명) 늘었다. 특히 40대 실업자는 지난 5월 이후 4개월 연속 상승곡선을 그렸고, 50대 실업자는 9월보다 세 배 이상 늘어 중장년 실업의 심각성을 보여줬다.

경제활동인구 고용률은 전년 동월 대비 0.2%포인트 떨어진 66.8%를 기록해 5개월 연속 낮아졌다. 특히 40대와 50대 고용률이 각각 0.7%포인트, 0.6%포인트 하락하는 등 중장년층 고용난이 확대되고 있다.

40~50대의 실업자 증가는 산업구조조정 등 제조업 침체와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게 요인으로 분석된다. 특히 외환위기 시절 어렵게 취업한 40대가 이번엔 조선·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중공업에 이어 현대중공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갔으며, 대우조선해양도 구조조정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구조조정은 조선업뿐 아니라 다른 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올해 실적 부진에 빠진 현대·기아차도 희망퇴직을 시행할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중소기업에선 경기 침체와 함께 인건비 부담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40~50대는 인건비가 가장 높은 연령대인 데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으로 중소기업에서도 구조조정 1순위”라고 말했다.

40~50대 실업자 증가는 숙박·음식업 등 자영업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탓도 크다. 지난 1년 동안 증가세를 보이던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지난 10월부터 감소세(4000명)로 돌아섰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지난 10월 10만1000명 감소하며 12개월 연속 줄어들었다. 전체 자영업자 중 40~5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55.4%에 이른다.

문제는 중장년 남성의 일자리 축소가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옥죄는 최저임금은 내년에 다시 오른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내년에 인상되는 최저임금에 대응하기 위해 직원을 줄이는 방안을 자영업자들이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향후 인공지능(AI) 등 기술 혁신의 급격한 진행도 중장년 남성의 일자리 감소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최근 BOK이슈노트 보고서를 통해 “중숙련(장치·조립직, 기능직 등) 일자리 감소로 인해 가장 왕성하게 일할 핵심 노동연령층 남성의 경제활동도 줄어들 것”이라며 “이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가정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중장년 고용 부진 심화될 듯

한은이 전제한 핵심 노동연령층은 30~54세다. 통상 주요국의 경우 25~54세로 꼽는데, 우리나라는 군 복무와 높은 대학 진학률을 고려해 30세 이상으로 본다. 핵심 노동연령층 가운데 중숙련 노동층의 경우 2004년 59.1%에서 지난해 55.5%로 3.5%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고숙련(관리자·전문가)과 저숙련(서비스직·판매직·단순노무직)의 경우 각각 3.4%포인트(22.2%→25.6%), 0.2%포인트(18.7%→18.9%) 상승했다. 특히 보고서는 중숙련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전산화와 자동화 같은 산업 내 기술 진보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핵심 노동연령층 남성의 중숙련 일자리가 줄면 30~54세 남성을 넘어 우리나라 전체의 경제활동 참가율 상승세를 둔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박용민 한국은행 조사국 과장은 “핵심 노동연령층 남성이 신산업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을 강화하는 등 이들을 위한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서 4050세대는 소외돼 있다. 과거 일자리 정책은 30세 미만을 청년으로 분류했지만, 최근 취업 연령이 높아지는 점 등을 고려해 정부의 일자리 정책 청년 기준이 만 34세로 올라갔다. 반면 중장년층을 위한 재취업 지원 관련 프로그램은 빈약한 게 현실이다. 34세 미만은 청년 지원, 60세 이상은 고령화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35~59세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받을 수 있는 지원이 많지 않다.

자영업에서도 15~29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3%대에 불과하지만 정부 지원은 이 연령층에 집중되고 있다. 5년 소득세 면제나 창업지원센터 지원 정책의 수혜 대상 대부분이 이 연령대다. 정부의 창업 대책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지적이 잇따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고용 유지를 위한 정부의 기업 지원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4050세대가 산업 현장에서 밀려날 경우 가계 경제 파탄은 물론, 향후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4050세대 실업 증가에 대해 정부가 손을 놓으면 향후 성장 동력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기업이 구조조정 대신 이들을 끌고 갈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