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2019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1월 2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2019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1월 29일 정부가 결정한 전국 14개 지역의 23개, 24조1000억원 규모의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에 대한 논란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이전 예타에서 낙제점을 받았던 사업이 포함돼 혈세 낭비라는 비판도 거센데다 선심성 정책 성격이 짙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예타 조사란 사회간접자본(SOC) 등 재정 투입이 예상되는 신규 사업의 경제성 등을 미리 검토해 사업성을 판단하는 절차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재정지원금 300억원 이상인 건설, 정보화, 국가 연구·개발사업 등이 대상이다. 1999년부터 정부 의뢰로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조사를 시행해오고 있다.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한 제도지만 특정 사안의 경우 관련 법률(국가재정법 제38조 제2항 등)에 따라 예타를 면제받을 수 있다. 지역균형발전이나 경제·사회적 상황, 재난 대비용 사업이 이에 해당한다. 국가안보나 남북교류협력 관련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예타를 면제해달라며 각 지자체가 신청한 사업은 총 33건, 61조2518억원 규모에 이른다. 이 중 23개 사업이 예타를 면제받았다. 예타 면제를 받은 사업 대부분은 SOC 건설 사업이다. 전체 사업비의 69%인 16조6000억원이 철도, 도로 등의 건설에 쓰인다. 연구개발(R&D) 투자 등을 통한 지역 전략사업 육성을 위해 선정된 면제 사업은 3조6000억원 규모다. 지역 전략사업 육성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 번에 20조원을 면제한 것으로, 그동안 정부와 여당이 적폐로 규정하며 비판했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비슷한 규모다. 문재인 정부가 토건 정부라고 비판한 이명박 정부보다 더 토건사업에 의존한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은 기존 29조원과 이번 24조원을 합치면 총 53조원에 달한다. 여기에다 예타 없이 추진되고 있는 50조원 규모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포함할 경우 전체 규모는 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최대였던 이명박 정부의 60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지역 균형 발전은 그 지역에 장기적인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기업을 유치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그동안 문 대통령이 외쳤던 소득주도 성장은 결국 말뿐인 구호에 그쳤고, 결국 토건사업으로 경기 부양에 나선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논란 1│과거 예타 통과 못 한 사업 포함

이번 예타 면제를 받은 23개 사업 가운데는 이전 예타에서 통과하지 못한 사업이 7개나 있다. 남부 내륙철도, 울산 외곽순환도로, 부산신항~김해고속도로, 서남해안 관광도로, 동해선 단선전철화, 울산 산재 전문 공공병원, 국도 단절구간 연결(8개 구간) 사업이 그것이다. 이들의 총사업비 규모는 9조1000억원으로 전체 사업비(24조1000억원)의 38% 정도다.

예타는 경제성(35~50%), 정책성(25~40%), 지역 균형발전(25~35%) 등을 평가지표로 삼아 종합점수를 낸다. 이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은 경제적 타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웠던 사업이라는 의미다. 전략적 투자라지만 혈세가 줄줄 샐 것은 불 보듯 빤하다.

KDI 공공투자관리센터에 따르면, 1999년 예타 제도 도입 이후 2014년까지 도로와 철도에서 예타 시행으로 인한 재정 절감액은 90조원에 달한다. 타당성이 확보된 사업에서 6조8513억원, 타당성이 미확보된 사업에서 82조6675억원을 절감했다. 만약 예타 제도가 없었다면 90조원은 물론이고 유지보수 등을 합쳐 100조원 이상의 혈세가 낭비될 뻔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예타는 국가 예산의 효율적 운영과 무분별한 토건사업에 따른 낭비를 막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제도다. 오히려 국가 예산을 자신의 호주머니 돈처럼 낭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예산낭비에 대한 책임과 처벌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연합 부동산·국책사업팀 팀장은 “기존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던 일부 사업들은 단순 경제성만이 아니라 지역균형발전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도 타당성이 부족한 불량사업들”이라며 “철저한 타당성 검증 없이 정치적으로 추진한 사업들로 인한 피해는 수십 년간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타를 면제받고 4300억원을 들여 경기장을 건설했지만 흥행 부진으로 지금까지 누적손실이 6000억원에 달하는 전남 영암의 F1 경기장. 사진 조선일보 DB
예타를 면제받고 4300억원을 들여 경기장을 건설했지만 흥행 부진으로 지금까지 누적손실이 6000억원에 달하는 전남 영암의 F1 경기장. 사진 조선일보 DB

논란 2│내년 총선 겨냥 선심성 정책?

지역별 형평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정치인이 연관된 지역의 사업이 다수 선정됐기 때문이다. 김천~거제 남북내륙철도는 문 대통령의 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역점으로 추진해 온 사업이다.

충북선 철도 고속화 사업과 세종~청주 고속도로 건설 사업, 울산외곽순환도로와 산재전문병원 건립 사업 역시 문 대통령의 측근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반면 예타 면제 대상에서 제외된 경기도 수원(신분당선 수원 광교~호매실 연장), 인천 등은 반발하고 있다.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구간 건설이 예타 면제에서 제외된 수원시의 경우 염태영 시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관계자를 면담하기도 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노선 사업이 예타 면제에서 제외되자 수도권 주민이 집단 반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인천시 등 수도권 9개 자치단체 주민 54만여명은 예타 면제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번 예타 면제가 ‘재정 여건은 고려하지 않고 내년 총선 표심을 겨냥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경실련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돈을 뿌리는 지역 선심성 정책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이번 결정으로 인해 앞으로 선거 때마다 ‘예타 면제’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크다”고 밝혔다.


논란 3│일자리 창출 효과 크지 않아

과거 예타를 통과한 사업조차 완공 후 사업성이 없어 수익이 발생하지 않아 지자체 재정으로 이를 메우거나, 아예 파산한 경우도 있다. 의정부 경전철은 개통 5년 만인 지난해 적자 누적으로 파산했으며, 서울의 첫 경전철인 우이신설선도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다. 전남 영암군의 포뮬러원(F1) 경기장도 대표적 사례다. 예타를 면제받고 4300억원을 들여 경기장을 건설했지만 흥행 부진으로 2014년부터는 경기 자체가 열리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 손실은 6000억원에 달한다. 양양국제공항, 무안공항 등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예타를 시행하지 않게 되면 사업비 규모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며 “민자사업으로 추진되면 완공 후 운영을 위해 막대한 혈세투입이 불가피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대규모 토건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역시 효과가 크지 않다. 토건사업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대부분 단기 일용직 일자리로 일순간 경기부양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적인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다.

다만 예타 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할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 성태윤 교수는 “일괄적인 면제로 접근하기보다 비수도권의 소외된 지역에 대해 일부 기준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며 “이 경우에도 사전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예타를 진행하는 형태가 돼야지 면제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