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할 땐 내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리고 시장이 원하는 일이 겹치는 일에 도전해야 해요. 특히 시장의 트렌드에 맞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을 2017년 창업한 이창수 올거나이즈(allganize) 대표는 ‘왜 또 창업 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면서 이처럼 말했다. 올거나이즈는 그의 두 번째 창업이다. 올거나이즈에서 그는 자연어 이해(NLU)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기업의 임직원이 더 편리하게 일할 수 있도록 영화에 등장하는 AI 비서처럼 업무를 지원해주는 것이 목표다.
그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의 말을 인용하며 “AI가 모든 산업의 트렌드를 바꿀 것”이라고 했다. 손 사장의 비전처럼 그도 AI 기술을 업무 환경에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면 모든 산업을 혁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창업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첫 창업은 모바일 게임 사용자 분석 서비스 ‘파이브락스(5Rocks)’다. 이 회사는 2014년 실리콘밸리의 게임 회사 탭조이에 매각되면서 당시 화제를 모았다. 한국 스타트업이 미국 회사에 인수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 대표는 미국으로 건너가 탭조이 부대표를 역임했다. 이런 이력 덕에 그는 이미 한국 스타트업권에서는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다.
이 대표는 4월 2일 경기 성남시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최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행사에 발표자로 참여했다. 이 자리에는 이 대표처럼 미국에서 창업한 차영준 ODK미디어 대표, 이진하 스페이셜(Spatial) CPO(Chief Product Officer)도 나섰다.
차 대표는 넷플릭스 등이 활성화하기 시작한 2011년 ODK미디어를 창업했다. ODK미디어는 북·남미 국가에 한국·중국의 동영상 콘텐츠를 스트리밍하는 서비스인 온디맨드코리아, 온디맨드차이나를 운영하고 있다. 80곳 이상의 방송국·제작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북미의 한국 콘텐츠 플랫폼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이 CPO의 스페이셜은 증강현실(AR) 회의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다. AR 기기를 쓰면 그 속에 회의실이 구현되고, 참여자들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난다. 참여자들이 가상 공간에서 만나 마치 한공간에 있는 것처럼 회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 CPO는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9’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AR 기기인 ‘홀로렌즈2’의 활용 사례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홀로그램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커리어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창업가 3명의 발표를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창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차영준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디어든 전 세계에서 내 것이 첫 번째일 확률은 0.0001%도 안 된다. 아이디어를 공유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또 주변에서 같은 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창수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대형 벤처캐피털(VC)인 글로벌브레인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싶다. 글로벌브레인은 올거나이즈에 11억원을 투자했다. 이전에 파이브락스에도 2013년에 25억원을 투자했다. 처음 글로벌브레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파이브락스 시절이었다. 당시 유리모토 야스히코(百合本安彦) 대표를 스타트업 관련 행사 대기실에서 만났다. 나이 든 일본 사람이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왠지 VC 관계자일 것 같았다. 먼저 명함을 내밀었지만 바쁘다며 대화하지 않으려 하기에, 5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5분간 열심히 파이브락스의 서비스를 소개했다. 그의 표정이 달라지며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었다. 그것이 인연이 돼 한 달 후 글로벌브레인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이진하 창업자가 자신의 성향과 색깔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고 난 후에 창업해야 한다. 나는 10대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20대엔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고, 30대엔 ‘내가 잘하는 것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문제를 풀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창업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이 흥미롭지 않겠나.
3명 모두 B2B(기업 대 기업) 사업으로 창업했는데, 그 이유는.
이진하 혁신은 업무 환경에서 먼저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기술이 새로 나왔을 때, 대부분의 경우 일반 소비자들보다는 기업이 먼저 받아들였다. PC가 처음 나왔을 때를 생각해 보라. 사무실에서 업무용으로 먼저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집에서도 PC를 쓰고 싶다는 수요가 생겨나면서 대중화했다.
이창수 B2B 사업을 해야 글로벌 회사로 도약할 수 있다. B2B 사업은 한국에서 만들든, 미국에서 만들든 ‘메가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라면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B2C(기업 대 소비자)는 문화적인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미국에서 성공한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까. 미국 시장을 지배했던 채팅 앱인 ‘스냅챗’이 출시됐을 때, ‘대체 이게 왜 인기일까?’라고 고민하는 사람은 북미를 B2C 서비스로 공략해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실리콘밸리에 탄탄한 혁신 기업들이 있다. 이런 기업들과 경쟁할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차영준 우리 회사 사람들이 창업 당시 내린 결론은 ‘실리콘밸리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리콘밸리 노동자들을 보며 자기 관리에 투철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 세계 인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좋은 것을 먹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들과 비교해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서, ‘열심히 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래서 초기 창업자들과 합숙을 시작했다. 우리는 당시 취미 생활, 외출도 없이 일만 했다. 삶을 일로 단순화해야만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창수 대표에게 묻겠다. 왜 파이브락스와 같은 글로벌 M&A 사례가 드물까.
이창수 M&A는 그 자체로 몹시 어려운데, ‘크로스보더 딜(cross-border deal·국경을 넘는 계약)’은 더 어렵고 복잡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파이브락스는 한국 회사인데 일본 VC에서 투자를 받았고, M&A를 하겠다는 곳은 미국 회사였다. 매우 복잡했다. ‘5년 안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도 계약에 포함됐고, 언어·세금·법률 등 다양한 이슈를 해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