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의 양대 축인 반도체와 중국이 흔들리면서 수출액이 5개월 연속 감소했다. 사진은 수출 최전선인 부산항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한국 수출의 양대 축인 반도체와 중국이 흔들리면서 수출액이 5개월 연속 감소했다. 사진은 수출 최전선인 부산항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주요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했던 수출마저 부진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 수출액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전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했다. 정부는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을 전망하며 하반기에는 수출액이 증가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국내외 전문가들은 당분간 반전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하반기 세계 경제가 둔화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13대 주력수출품목 중 긍정적인 전망이 기대되는 분야가 거의 없는 탓이다. 수출은 국가 경쟁력의 총합체다. 전문가들은 인건비 상승 등 산업경쟁력 약화를 근본적인 수출부진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 정책 궤도를 수정하지 않으면 수출이 살아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4월 25일 발표한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3%를 기록했다. 이는 2008년 4분기의 -3.3% 이후 10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GDP는 소비+투자+정부지출+순수출로 구성된다. GDP 성장률 하락은 올해 들어 경제지표가 매우 부진했던 탓이다. 우선 그동안 내수를 뒷받침했던 정부지출 감소가 타격을 줬다. 이른바 ‘세금효과’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1분기 설비투자는 전분기 대비 10.8% 감소하며 1998년 1분기(-24.8%) 이후 2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비지표는 지난 3월 반등했지만, 이는 직전까지 최악이었던 상황이 반영된 기저효과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문제는 그간 상대적으로 선방하던 수출 역시 침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설비투자와 수출 감소세를 보면 경제위기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라고 말했다.

수출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각별하다. 한은에 의하면 GDP에서 수출입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기준 한국이 84.8%로 미국 28%, 일본 30.1% 등 주요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한국 GDP성장률(3.1%)에서 수출기여율은 64.5%를 차지했다.

수출은 역사적으로도 한국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었다.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석유파동)로 세계 경제가 휘청이고 한국 경제도 위기에 빠졌을 때 오일쇼크로 돈을 벌었던 중동 산유국들에 국내 건설사들이 대거 진출해 돈을 벌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도 마찬가지다. 경제위기로 국내 수요가 떨어진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가치 급락)에 따라 수출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수출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1998년 마이너스로 반전했던 한국 수출액 증가율은 2년 만인 2000년에는 19.9%로 급등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발 세계 금융위기 때도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 경제 위기로 이들 국가 기업들이 주춤한 사이에 삼성, 현대차, LG 등이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했다. 이 역시 수출 덕이다.

올해 1분기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6% 감소하며 지난해 4분기(-1.5%)에 이어 2분기 연속 감소했다. 지난해 말부터 부진했던 반도체에 더해 디스플레이 등 다른 주력 수출품목들도 부진을 떨쳐내지 못한 탓이다. 이어 산업통상자원부는 5월 1일 4월 수출액도 488억5700만달러로 전년 동월(498억5000만달러)보다 2%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 수출액은 지난해 12월(-1.7%), 올해 1월(-6.2%), 2월(-11.4%), 3월(-8.2%)에 이어 5개월 연속 감소했다. 박태성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반도체·석유화학 수출단가 하락, 중국 경기 둔화,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수출이 부진했다”고 설명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수출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수출액이 감소하면 주요 경제주체 중 하나인 기업의 외화벌이가 줄어 투자심리가 크게 저하된다”라며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 국민 소비심리도 위축될 수밖에 없어 경제가 악순환 구조에 빠질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13대 주력품목 중 10개 ‘역성장’

특히 13대 주력수출품목 중 10개 품목이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13대 품목의 평균 수출 감소율은 4월 -3.4%였다. 특히 국제 유가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석유화학(-5.7%)과 석유제품(-2.6%) 수출도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수출물량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이 공급량을 늘리면서 수출단가가 떨어진 탓이다. 철강(-7.7%), 디스플레이(-9.2%), 무선통신기기(-4.0%), 섬유(-5.6%), 컴퓨터(-36.6%), 가전(-1.3%) 등도 줄줄이 추락했다. 수출액이 늘어난 품목은 선박(53.6%), 일반기계(0.3%), 자동차(5.8%) 등 3개 품목에 불과했다. 선박은 주력선종인 액화천연가스(LNG)선, 초대형 원유운반선 수출 호조에 따른 것이며 자동차는 일시적인 신차 출시 효과 덕을 봤다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정부는 올해 수출의 상저하고 흐름을 강조해왔다. 반도체 수요 회복, 자동차·선박 등 수출품목의 호조세, 수출대책 효과 등이 나타날 하반기에는 수출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에는 개선될 전망인 것은 맞지만, 개선 속도는 당초 예상보다는 늦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민간의 전망은 정부와 온도차가 매우 크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하반기 세계 경기가 둔화할 전망으로, 이는 글로벌 투자 수요를 위축시킬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는 반도체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며, 전체 수출의 하향 흐름 역시 하반기 내내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투자은행(IB)들도 한국 수출이 하반기 중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바클레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IB들은 하반기까지 한국의 수출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반도체와 석유정제 부문의 수출 약세와 중국 경기 둔화 및 미·중 무역전쟁 영향을 계속 받을 것으로 이들은 예상하고 있다.

수출 악화 돌파구는 수출 대상국가 및 수출 품목 다변화 등이 꼽힌다. 그러나 이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성 교수는 “수출 등 경제지표 악화는 근본적으로 국내 산업경쟁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라며 “급격한 노동비용의 상승이 기업 투자 활력을 위축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 궤도를 수정하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수출이 개선되면 투자와 소비는 물론 경기 전망에도 긍정적인 신호를 주고 경제 심리를 높여줄 수 있다”라며 “정부가 수출 활력을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