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드리고의 스마트 수거함, 트립스토어의 캐피지여행 플랫폼, 킥고잉의 전동킥보드, 고스트키친이 준비 중인 공유주방, 더자람이 협업한 행사 전경(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진 각사
런드리고의 스마트 수거함, 트립스토어의 캐피지여행 플랫폼, 킥고잉의 전동킥보드, 고스트키친이 준비 중인 공유주방, 더자람이 협업한 행사 전경(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진 각사

5월 16일 스타트업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서비스 출시 겨우 1개월 만에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알토스벤처스·하나벤처스 등 유명 벤처캐피털(VC)로부터 65억원을 투자받은 스타트업이 나타난 것이다. 바로 세탁 서비스 업체 ‘의식주컴퍼니’다.

O2O(온·오프라인 결합) 세탁 서비스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가 내놓은 구독 서비스 ‘런드리고’는 차별점이 있다. 비대면으로 스마트 수거함에 세탁물을 넣어놓으면, 물빨래, 드라이클리닝, 이불 등 종류에 관계없이 세탁해 24시간 안에 배달까지 해준다는 점이다. 굳이 수거자를 만나 세탁물을 전해주지 않아도, 세탁물을 문밖에 내놓고 수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이용자들이 관심을 보였고, VC 거물들도 사로잡았다. 서비스를 만든 주인공은 신선 제품 새벽 배송 서비스 ‘배민프레시’ 대표를 역임했던 조성우 대표다.

최근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음식 배달 앱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출신 창업가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른바 ‘배민 마피아’다. 피터 틸, 일론 머스크 등으로 대표되는 실리콘밸리 ‘페이팔(Paypal) 마피아’, 네이버·네오위즈 출신으로 한국 IT 업계를 좌지우지하는 ‘1세대 벤처 마피아’에 이은 ‘신세대 마피아’다. 이들은 앞선 성공 경험을 토대로 새로 창업에 나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요즘 트렌드로 자리잡은 국내 최초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킥고잉’을 공동으로 창업한 이도 배민 연구소장 출신인 이진복 최고기술책임자(CTO)다. 그는 배민 앱에서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바로결제 시스템’을 만들었다. 공유주방 서비스 ‘고스트키친’도 우아한형제들 이사 출신 최정이 대표가 이끌고 있다. 배달 전용 식당이 주방을 공유해 사용하도록 하는 서비스다. 최 대표는 우아한형제들에서 배달(배민수산), 공유주방(배민키친) 서비스 론칭을 주도했다.

VC 업계에서는 우아한형제들 출신 창업가들의 경쟁력이 “이용자 편의성에 집착해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빠른 실행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2011년 김봉진 대표가 다른 공동창업가 5인과 함께 ‘팔만대장경 프로젝트’ 결과물을 내놓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냉담했다. 3.3㎡(1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길에 버려진 광고지를 주워 일일이 수작업으로 외식 정보를 전산화한 프로젝트였는데, 일각에서는 “기존 광고지에 있던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우아한형제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앱 내 결제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초창기에는 앱 내 결제를 직원이 직접 처리하기도 했다. 주문자가 앱에서 결제를 완료하면 대기하고 있던 배민 직원이 음식점에 전화로 다시 주문하는 식이었다.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았던 탓에 벌어진 촌극이지만, 전화번호부를 앱상에 옮겨놓은 데 불과했던 배민 서비스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사람들은 점차 배민 서비스에 열광했다. 이용자들이 광고지를 찾아 헤매는 수고, 전화해 음식을 시키는 수고를 덜어주는 ‘지금 필요한 서비스’가 탄생한 것이다. 우아한형제들은 서비스 출시 7년 만인 2018년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배민 앱은 현재 20조원 규모 한국 음식 배달 시장 점유율 1위다.

공동창업가 6인 중 한 명인 김수권 현 엑스트라이버 대표는 “세간에서는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이란 곳이 별다른 혁신 없이 수작업한다며 비웃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중요했던 건 전화·문자·앱 등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사용자가 편하게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시키고 결제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17년 우아한형제들에서 나와 엑스트라이버를 창업할 때도 똑같은 실행 정신으로 임했다고 했다. 우아한형제들의 또 다른 공동창업가였던 고대현 기획이사와 이은호 개발이사가 합류해 만든 ‘트립스토어’는 하나투어·모두투어 같은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한곳에서 비교·확인할 수 있는 해외 패키지여행 플랫폼 서비스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배민에서의 경험을 되살려 서비스 초창기 고객의 여행 예약 주문을 직접 수기로 처리하기도 했다. 엑스트라이버는 지난 4월 71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아 현재까지 누적 투자금이 97억원에 달한다. 조성우 대표의 런드리고도 기존 세탁 서비스에 ‘비대면’이란 특성을 접목해 고객의 접근성·편의성을 개선한 사례다. 조 대표는 이를 두고 ‘배민식(式) 고객 집착주의’라고 했다. 스타트업 특유의 속도감 있는 사업 진행과 그 과정에서 겪은 부침(浮沈)도 이들의 자산이다. 최정이 대표는 “배민은 초고속으로 성장한 전례 없는 경우였던 만큼 급성장을 직접 경험하면서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크고 작은 실전 경험이 지금 스타트업을 꾸리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콘 만들고→또 새로운 도전 ‘선순환’

일각에서는 배민 출신 창업가들의 경험이 ‘유니콘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각자 회사 차리는 데 쓴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래서 우아한형제들 입장에서는 손해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상식은 스타트업 창업가들 사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창업가가 한솥밥을 먹었던 다른 창업가·직원의 새로운 창업을 응원하고 지원해주는 ‘창업 장려’ 문화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요즘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배민이라는 성공적인 서비스를 만든 경험과 노하우로 다시 창업에 나서 스타트업 업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배민 마피아’들은 회사를 떠나고서도 김봉진 대표와 연락하며 돈독히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진복 올룰로 CTO는 “필요할 때마다 서로 연락해 도움을 주고받기 때문에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 이사로 운영총괄을 맡았던 천세희 대표는 아예 ‘더자람’이라는 스타트업 컨설팅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가게 운영 노하우 전수 프로그램인 ‘배민아카데미’, 한 해 동안 장사 잘한 음식점을 포상하는 ‘배달대상’ 등이 그의 작품이다. 천 대표는 “2005~2011년 네이버, 2013~2018년 우아한형제들 등 ‘로켓식 성장기’를 지내며 얻은 회사 운영 노하우를 또 다른 스타트업에 전수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창업 장려 문화는 꼭 우아한형제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유니콘으로 인정받은 핀테크 ‘토스’ 앱 운영 업체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는 최근 직원들에게 스톡옵션 1억원을 제공하고, 연봉을 50% 전격 인상한 이유에 대해 “창업 자금을 마련해주고 싶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