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춘 동아시아차연구소 소장이 찻잎을 다듬고 있다. 사진 박지환 기자
박동춘 동아시아차연구소 소장이 찻잎을 다듬고 있다. 사진 박지환 기자

30여 년 전, 처음 접한 녹차는 ‘풀 냄새 나는 밍밍한 맛’이었다. 달콤한 설탕 덕분에 처음부터 마실 만했던 커피와 전혀 달랐다. 녹차를 왜 돈 주고 마시나 싶었다. 녹차는 그동안 커피를 즐기지 않는, 나이 지긋한 이들의 고상한 취미라는 인식이 강했던 이유다. 주변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녹차를 중심으로 차에 대한 이미지가 변하고 있다. 차를 전문으로 파는 공간이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성수동 맛차차, 연남동 오렌지리프, 삼성동 티컬렉티브, 서촌 이이엄, 한남동 산수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주로 트렌디한 라이프 스타일을 이끄는 지역에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찻집은 홍차 중심의 기존 찻집과 달리 쉽게 접하기 어려운 질 좋은 녹차, 일본식 맛차, 중국의 보이차 등을 전문 다기와 함께 내놓는다. 나이 지긋한 마니아들이나 찾을 것 같지만 주 고객은 커피와 카페에 탐닉하던 20~30대다.

차 명인으로 알려진 박동춘(68·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소장) 선생으로부터 고려시대 부터 존재했다는 대광사지 인근의 야생 차밭을 소개받았다. 그는 “대광사 인근 차밭은 임진왜란 당시 절이 불타면서 400년 이상 사람의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야생차 자생지”라고 했다.

5월 5일 대광사지 야생 차밭을 찾아 전남 순천시 주암댐 상수원보호구역을 방문했다. 차밭은 청정지역이었다.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묶여 사람의 접근이 많지 않은 산과 산 사이의 넓은 계곡 바로 옆 비탈에 차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차나무는 많았지만 현대화된 차밭처럼 줄을 지어 자라지 않았다. 차밭 주변은 연두색 잎으로 옷을 입은 나무들이 밀림처럼 무성했다. 맑은 시냇물에는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다슬기가 지천이었다.

박 선생은 순천시와 전남도의 허락을 받고 대광사 터에 자리한 농가주택에서 어린 찻잎을 따고 덖었다. 그는 차를 만들 때만 농가주택에 잠시 머문다고 했다. 상수원 보호구역이어서 평소에는 머무를 수 없다고 했다.

고희(70·古稀)를 불과 몇 년 앞둔 나이지만 직접 찻잎을 따고 덖는 그의 모습에서 20~30대 청년 못지않은 열정이 느껴졌다. 주름 없고 탄력 있어 보이는 맑은 피부도 인상적이었다.

박 선생은 “제다(차를 만드는 일) 과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차 싹을 잘 익히는(덖는) 일”이라며 “그 과정에서 차의 품질이 결정된다”고 했다. 박 선생의 말에 따르면 차 싹을 덜 익히면 비린내나 풋내가 나며 아린 맛이 남아 맛이 거칠어진다. 반대로 너무 익히면 색·향·미는 물론 기운이 줄어 맛의 탄력과 생기 있는 기운이 사라져 차를 마셔도 몸의 나쁜 기운을 제거할 수 없다.


야생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있는 모습. 우리가 흔히 보는 질서정연한 차밭 모습과 다르다. 사진 박지환 기자
야생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있는 모습. 우리가 흔히 보는 질서정연한 차밭 모습과 다르다. 사진 박지환 기자

40여 년간 차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1979년쯤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의 추천으로 백화사 응송(속명 박영희) 스님을 만나면서 차와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응송 스님은 전남 해남 대흥사 주지에서 물러나 차와 초의선사를 연구하며, 글을 쓰고 계셨다. 응송 스님은 자신이 저술한 차에 대한 글을 윤문할 사람을 찾았는데 정 관장님 소개로 그 일을 맡게 됐다. 이를 계기로 차와 인연이 만들어졌고, 평생 차 문화를 연구하게 됐다.”

초의선사로부터 시작된 다맥을 이었다고 했는데, 정약용 선생과 다도를 즐긴 그분인가.
“맞다. 대흥사 차를 정립하고 제다를 완성해 초의차를 만든 그분이다. 나는 초의선사로부터 시작된 다풍을 범해 스님→원응 스님→응송 스님을 거쳐 물려받았다. 응송 스님에게 ‘다도전게(茶道傳偈)’를 받고 초의차의 이론과 제다법을 이어받았다. 지금은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초의차’를 계승한 ‘동춘차’를 만들고 한국 다도의 맥을 보존·전수하고 있다.”

차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40년간이나 차와의 사랑에 빠졌나.
“차의 이로움은 이미 오랜 역사 속에서 검증됐다. 갈증을 해소하는 것은 차의 기본 기능이다. 차는 소화를 도와주고, 머리를 맑게 하며 몸의 탁기를 몰아낸다. 또 숙취 해소에도 좋다. 차가 가진 미덕은 무엇보다도 차가 가진 맑은 기운과 따뜻한 온기가 차를 즐기는 이의 마음을 위로하고 타인과의 소통 과정에서 매개물로 훌륭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다.”

티백부터 고가의 차까지 종류와 가격이 다양하다. 어떤 차가 좋은 차인가.
“좋은 차는 마실 때 향기·맛·기운이 모두 좋아야 한다. 또 차를 마신 후에는 청량하고 뒷맛이 달고 그윽해야 한다. 탁하거나 마신 후 속이 쓰린 차는 나쁜 차다. 마시면 안 된다.”

좋은 차도 제대로 마셔야 하지 않겠는가. 차를 마시는 바람직한 방법은.
“대략 88~90도 정도로 뜨겁게 마시는 것이 좋다. 차를 마시는 바람직한 횟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에 대략 6~7회 정도가 좋다. 단 너무 진하게 마시는 것은 좋지 않다.”

현재 운영하는 차밭이 고려시대 야생 차밭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찾게 됐나.
“1985년 송광사 총무였던 현고 스님의 소개로 대광사 차밭을 알게 됐다. 사실은 임진왜란으로 절이 불에 타면서 방치된 야생 차밭이었다. 대나무가 무성하고 차나무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 덕분에 이곳을 찾았을 때 노다지를 발견한 것처럼 기뻤다.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다법도 중요하지만 원재료인 찻잎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차밭을 발견한 이후에도 나무를 최대한 야생에 가까운 상태로 관리했다. 양달과 응달을 반반씩 좋아하는 차나무의 특성을 고려해 차밭에 자라는 대나무만 적당히 솎아줬다. 이를 통해 차나무밭을 차나무 식생에 가장 적합한 상태로 복원했다. 거름을 주거나 약을 치는 등의 인위적인 관리는 전혀 하지 않는다.”

차나무에 병은 안 생기나.
“최적의 생육 조건에서 자라는 차나무여서 병충해가 전무하다. 사람들이 마시는 상수원 보호구역에 있는 차밭이라서 약이나 비료를 줘서도 안 된다.”

초의선사의 다맥을 이었고, 희귀한 야생차라면 스토리텔링도 충분한데 상업적으로 팔지 않는 이유는.
“돈을 위해 제다법을 배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매년 만드는 700~1000봉(1봉지 30g)의 차를 무료로 나눠준다. 우리 전통문화의 원형을 보존하고 연구해 차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에 40년을 차에만 매달렸다. 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직접 나서 차를 파는 것보다 차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면 차 산업이 자연히 성장하게 된다는 믿음도 있다. 물론 귀한 야생차를 덖어 전통 제다법으로 만든 좋은 차를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하면 차문화 확산이 빠르지 않겠느냐는 조언도 많다. 마냥 틀린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아 최근 많은 사람이 동춘차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박지환 조선비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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