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마이클 맨리 피아트크라이슬러(FCA)그룹 회장,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 장 도미니크 세나르 르노 회장. FCA와 르노가 합병을 논의하면서 사이카와 사장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왼쪽부터 마이클 맨리 피아트크라이슬러(FCA)그룹 회장,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 장 도미니크 세나르 르노 회장. FCA와 르노가 합병을 논의하면서 사이카와 사장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긍정적인 점이 많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닛산의 관점에서 이익 이외에 어떤 부분이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겠다.”(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

“꽤 판단이 어려운 지점이 있다.”(마스코 오사무 미쓰비시자동차 사장)

5월 29일 르노그룹-닛산-미쓰비시자동차 3사 연합(얼라이언스)의 월례 이사회 이후 일본의 두 자동차 회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이사회에서 장 도미니크 세나르 르노 회장은 피아트크라이슬러(FCA)그룹과 르노의 합병 계획을 전했다. 세나르 르노 회장은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은 전체 연합뿐 아니라 닛산과 미쓰비시에도 큰 이익이 될 것”이라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26일 블룸버그통신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르노와 FCA의 합병 추진 소식을 전했다. FCA는 다음 날 50 대 50 비율의 합병안을 르노에 제안했다는 공식 입장을 급히 발표했다. 6월 중 르노가 합병안 수용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성사되면 세계 3위 규모의 새로운 자동차 기업이 탄생한다. 여기에 닛산과 미쓰비시 차까지 합류하면 독일 폴크스바겐과 일본 도요타를 뛰어넘어 세계 1위로 우뚝 서게 된다.

그간 르노의 합병 제안을 받았던 닛산은 특히 이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닛산은 합병 추진 소식을 불과 며칠 전에 전해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FCA와 르노의 협상 과정에서 닛산이 배제된 것이다. 사토루 다카다 TIW 애널리스트는 “불신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르노가 닛산에 정보를 주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현재로서 닛산은 상황 판단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이카와 사장은 취재진에게 “연합이 확장된다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지만, 각종 외신에 따르면 닛산 내부 관계자들은 “잘못된 판단에 기반한 좋지 않은 계획”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엔도 고지 SBI 증권 애널리스트는 “사이카와 사장이 (FCA와 르노의 합병에 대해) ‘예스(yes)’라고 말하지만, 사실 지옥과 다름없다”고 했다. 닛산의 교섭력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곤 축출 무용…오히려 역풍?

지난해 닛산은 경영 통합을 강력히 추진하던 카를로스 곤 당시 닛산 회장을 축출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은밀하게 그의 뒷조사를 시작했고, 지난해 11월 곤 전 회장은 보수를 축소 신고해 금융상품거래법을 위반한 혐의 등으로 일본 검찰에 체포됐다. 사건의 배후로 사이카와 사장이 지목됐다.

경영 통합에 제동을 건 것도 잠시, 4월 26일 르노가 닛산에 경영 통합을 위해 지주회사 설립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닛산은 즉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르노는 두 회사의 경영 통합에 불응하면 사이카와 사장 연임을 거부하겠다는 강경한 의사를 닛산에 통보했다. 닛산 이사회가 5월 16일 사이카와 사장을 연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르노 관계자는 “별도로 투표를 진행해 결정한 사안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6월의 주주총회에서 르노와 닛산의 표 대결이 이뤄지면 최악의 경우 해임될 가능성도 있다.

르노는 닛산의 쿠데타 이후 FCA와 합병 논의를 가속화했다. FCA와 르노가 합병하면 닛산은 주총의 표 대결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닛산의 ‘독립’ 주장이 주주들에게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FCA 가세하면 닛산 논리 무너져

그간 닛산은 르노 주도의 경영 통합을 ‘닛산의 덩치가 더 크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르노의 지난해 차량 판매량은 388만 대인 반면, 닛산은 568만 대에 이른다. 하지만 FCA(465만 대)와 르노의 생산량을 합치면 853만 대가 된다. FCA를 등에 업으면 르노가 합병을 주도할 명분이 생긴다.

자동차 업계가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 신기술 R&D 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FCA도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전 회장 때부터 누적 적자 심화로 타사와 합병 계획을 추진해왔다. 카셰어링 트렌드 가속화 등 악재가 겹쳐 여러 완성차 업체가 인력 감축 등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닛산도 최근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닛산의 순이익은 전년에 비해 57% 줄어든 3191억엔(약 3조4652억원)에 그쳤다. 닛산은 올해 순이익이 46% 낮아진 1700억엔(약 1조8461억원)에 머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닛산으로서도 연합 구조를 최대한 활용해 비용을 절감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르노는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수월해졌다. 르노는 현재 닛산의 지분을 43.4%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6.6%를 초과하는 우호지분만 확보하면 닛산과 표 대결에서 이길 수 있다.

닛산에는 마지막 보루인 경영 방어권이 있다. 2015년 닛산은 ‘경영 간섭을 받고 있다’고 판단하면 르노 지분을 추가 매입할 수 있도록 르노와 협약을 한 상태다. 일본 회사법에서는 회사 상호 간에 주식을 25% 이상 보유하면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닛산이 르노의 주식을 25% 매입하면, 르노가 보유한 닛산 지분의 의결권이 박탈된다.

하지만 FCA와 르노가 50 대 50 비율로 합병하면 르노의 시가총액이 두 배로 늘어나 닛산의 지분이 반 토막 난다. 닛산은 현재 르노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는데, 7.5%로 줄어드는 것이다. 경영 방어권인 25% 선을 확보하기 위해서 기존에는 10% 지분만 더 매입하면 됐는데, 17.5%를 추가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숨 쉬어가더라도 입지 축소는 상수

한편 르노가 FCA와 합병을 추진하면서 닛산과 경영권 통합 논의는 잠정 중단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르노가 FCA와 합병안 협상을 마무리 짓는 동안 닛산과 경영 통합에 대해 거론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닛산에 투자하는 런던의 한 투자가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사이카와 사장은 5년간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기시모토 아키라 JP모건 애널리스트는 “사이카와 사장은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미국 사업을 재정비해 계속된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 FCA의 크라이슬러(지프 포함)와 SUV·크로스오버카 등에서 직접 경쟁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닛산이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FCA도 닛산에 경영 통합 압박을 넣을 수 있다. FCA는 르노, 닛산이 함께 참여하는 3자 합병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닛산은 전기차 기술이 뛰어날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시장 접근을 도와줄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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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Merger)과 연합(Alliance) 경영권이 이전되는지에 따라 합병과 연합의 차이가 갈린다. 합병에서는 경영권이 이전되지만, 연합에서는 이전되지 않는다.
합병은 2개 이상의 회사가 상법상 한 회사가 되는 것이다. 한 회사가 다른 회사 지배지분을 인수한다든지 해서 흡수 합병할 수도 있고, 두 회사가 동등 조건으로 지분을 교환해 하나의 새 회사를 설립할 수도 있다. 르노와 피아트크라이슬러(FCA)그룹이 택하려는 방법이 이것이다.
합병은 이익을 독점할 수 있고 기술이나 노하우 유출 우려가 적다. 반면 합병 시 다른 기업 문화와 마찰이 일어난다든지, 개발·판매 리스크는 분산되지 않는 등의 단점이 있다.
연합은 2개 이상의 회사가 독립된 기업 구조하에서 신규 수익 발굴, 공동 연구 진행, 생산 기지 공유 등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이다. 연합 구조 강화를 위해 각 법인이 서로의 지분을 교환하는 경우도 있다. 르노-닛산-미쓰비시자동차의 연합 구조가 대표적. 르노는 닛산의 지분을 43.4%, 닛산은 르노 지분 15%와 미쓰비시자동차 지분 34%를 보유하고 있다.
연합은 각사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협력할 수 있고 개발·판매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제휴가 끝날 때 기술이나 노하우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 이익은 1개 회사가 아니라 양사가 공유하게 된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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