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부산시청 1층 로비에서 열린 ‘부산 여성 취·창업박람회’에서 구직 여성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2일 부산시청 1층 로비에서 열린 ‘부산 여성 취·창업박람회’에서 구직 여성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금융위원회)는 6월 6일 은행들의 일자리 기여도를 파악해 8월 중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KB국민, 신한, 우리, KEB하나, SC제일, 씨티 등 6개 시중은행과 대구, 부산, 경남, 광주, 전북, 제주 등 6개 지방은행, 농협과 수협 등 2개 특수은행이 일자리 기여도 점검 대상이다.

정부는 이 은행들의 최근 10여 년간 자체 채용 인원과 아웃소싱 인원을 전수 조사할 방침이다. 취약계층인 청년, 여성, 비정규직 채용비율도 함께 조사한다. 또 은행들이 간접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정도를 평가하겠다며 각 산업에 지원한 자금규모를 조사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고용노동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고용우수기업으로 인증을 받은 기업이나 자영업자 등에 지원한 자금규모도 은행별로 조사해 보고하도록 했다.

대출이 어떤 업종의 어떤 기업들에 나갔으며 이게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도움을 줬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정부가 요구한 고용 상황을 이달 안에 보고해야 한다.

정부가 이처럼 민간 기업인 은행들을 대상으로 고용 형태와 규모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은 전례가 없다. 정부는 은행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카드사나 보험사 등 다른 금융업권까지 고용 상황 조사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일자리 기여도 조사대상이 된 은행들은 과도한 경영간섭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은행권 일자리 기여도 전수조사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봤다.


1│은행들 “지금도 인력 남아도는데”

정부가 은행들의 일자리 창출을 조사하는 것은 청년실업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상황(4월 청년실업률 11.5%·2000년 4월 이후 최고치)을 해결하기 위해 은행 등 금융회사의 일자리 창출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고임금을 주는 은행에서 더 많은 인원을 고용하면 고용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문제는 은행들이 지금도 높은 인건비와 은행원 1인당 생산성 악화 때문에 계속 구조조정을 해 고용인원을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 행원 한 명당 인건비는 2011년 1억500만원에서 2015년 1억1100만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한 명당 벌어들이는 연간총이익은 같은 기간 4억3000만원에서 3억3300만원으로 줄었다. 인건비는 늘었지만 이익은 내지 못하고 있는 이 같은 상황은 핀테크 등 IT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고객이 은행 창구를 찾아오지 않아도 대출이나 예금 인출, 송금 등 대부분의 업무를 볼 수 있는데 은행은 불필요한 인력을 창구에 배치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인건비 부담을 견디다 못한 은행들은 구조조정도 계속하고 있다. 2017년 하반기부터 신한·우리·KB국민·KEB하나 등 4대 은행에서는 약 2400명을 희망퇴직 방식으로 구조조정했다. 퇴직금만도 약 8000억원을 썼다. 2018년 말과 2019년 초에도 2000여 명의 희망퇴직자들이 은행을 떠났다. 많게는 3년(36개월)치 월급과 수천만원의 자녀 학자금까지 주며 인원을 내보냈다. 인건비를 줄여 생산성을 개선하기 위해 수천억원의 돈을 쏟아붓는 은행들에 정부가 나서 일자리 창출을 압박하는 셈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은행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도록 돕고, 국내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워도 모자라는데 일자리 창출 기여도 측정이라는 해괴한 정책으로 강제고용을 종용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했다.


2│생산성 악화, 소비자 피해 일어날 수도

더 큰 문제는 은행들이 정부의 압박 때문에 필요하지도 않은 채용을 늘리게 되면 대출금리 인상 등 고객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출금리는 보통 고객의 신용등급과 소득, 담보물 등을 바탕으로 결정된다. 이런 조건들은 ‘고객이 빌린 돈을 얼마나 잘 갚을 수 있나’에 대한 판단기준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런 조건과 함께 목표이익률(은행이 벌어들이고자 하는 이익의 목표치), 업무원가(점포 임대료, 인건비 등 대출을 내주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 비용)도 고려해서 대출금리를 산정한다. 인건비가 올라가면 은행이 경영을 안정적으로 계속하기 위해 신용등급이나 소득, 담보물과 관계없이 추가적인 대출금리를 더 부과할 수 있는 셈이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필요한 일자리를 만들어 인건비가 올라가면 금리 상승 등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도 있다”며 “규제를 없애고 혁신을 통해 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구태의연한 전시행정을 하고 있다”고 했다.


3│고용 많다고 저부가가치 산업에 대출 늘려?

정부는 이번 조사에서 은행이 각 산업에 지원한 자금 규모와 고용유발계수를 활용해 간접적 일자리 기여도까지 조사할 계획이다. 고용유발계수는 특정 재화 10억원 규모를 생산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고용된 인원을 말한다. 고용유발계수가 10이면 10억원 규모의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 10명의 직원이 고용된 상태다. 정부가 이런 조사를 하는 것은 은행이 고용을 많이 창출한 기업에 대출을 내줬는지 여부를 점검하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렇게 일자리 기여도를 기준으로 은행의 돈이 대출되면 고용유발계수가 높은 노동집약적인 기업들에만 은행 자금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고용유발계수가 가장 높은 산업은 인력소개소·여행사·콜센터 등 ‘사업지원서비스’로 고용유발계수가 17.4(2015년 기준)다. 또 음식·숙박업(11.5)과 도소매·상품중개서비스(11.4)도 고용유발계수가 높다. 반면 △1차 금속(4.1) △전자·광학기기(3.8) 등은 고용유발계수가 크게 떨어진다.

이는 대체로 고용유발계수가 높은 산업일수록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이고 고용유발계수가 낮은 산업일수록 높은 부가가치를 내는 첨단산업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농림·어업의 고용유발계수는 25.85(2015년 기준)지만 반도체(3.47), 디스플레이(3.89), 컴퓨터(5.98), 석유화학(3.32) 등 고부가가치 산업은 고용유발계수가 낮았다. 정부가 제시한 고용유발계수가 산업의 혈액 역할을 해야 할 은행 대출의 지표로 사용되면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에 자금이 몰려갈 수 있는 셈이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구체적인 기준 없이 막연하게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기업들에 대출을 내주라 요구한다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은행이 이런 기준에 따라 대출을 내주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라며 “일자리를 늘리는 데 효과가 날 수 없는 정책”이라고 했다.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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