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보름 송학농장 대표가 돼지사육장에서 새끼돼지를 안고 있다. 사진 송학농장
이한보름 송학농장 대표가 돼지사육장에서 새끼돼지를 안고 있다. 사진 송학농장

1970~80년대에는 시골에서 애경사가 있을 때 돼지 잡는 일이 많았다. 잔칫집이나 상갓집에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살림살이가 넉넉한 집은 소와 돼지를 여러 마리 잡았지만 살림살이가 변변치 못한 집에서는 주로 돼지를 잡았다.

아이들은 돼지 잡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어느 집에서 돼지를 잡는지 알 수 있었다. ‘꽤액 꽥’, 온 동네에 울려 퍼지는 돼지 멱따는 소리 때문이었다. 호기심에 돼지 잡는 집을 어림짐작해 찾아가면 어김없이 돼지를 잡고 있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볼 게 못 된다며 접근을 막았지만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의 운명이라고 했다. 사실 돼지는 정을 들이는 가축이 아니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어른들은 돼지를 해체할 때 간혹 굽고 삶은 돼지고기를 아이들 입안에 가득 넣어주곤 했다. 평소 자주 먹지 못하던 고기를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주로 백돼지를 잡았지만 드물게 재래 돼지인 흑돼지를 잡기도 했다. 덩치는 작았다. 살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백돼지에 비하면 강파르게 생겼다. 얼굴과 몸통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어른들은 “흑돼지가 덩치는 작지만 덩치 큰 백돼지보다 훨씬 맛있다”고 얘기하곤 했다.

최근 미식가를 자칭하는 지인의 소개로 토종돼지 요리 전문점을 찾았다. 그동안 먹은 돼지고기와 맛이 확연히 달랐다. 육질은 쫄깃하고 고소했다. 부드러운 것보다 적당한 질감을 즐기는 한국인의 입맛과 잘 어울렸다.

요새 구경하기가 힘들어진 재래 돼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국내 최고로 평가받는 재래 돼지 농장을 소개받아 경북 포항에 있는 송학농장을 찾았다. 송학농장은 높지는 않았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조용했다. 농장 주변의 나무 덕분인지 돼지 분뇨 냄새도 심하지 않았다.

이한보름(41) 송학농장 대표는 “돼지 사육농장이라 분뇨 냄새 민원이 많아 민가와 좀 떨어진 산속으로 축사를 옮겼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규모가 큰 돼지 농장의 경우 분뇨를 수거해 먼바다에 버렸지만,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돼지 분뇨를 내륙에서 처리해야만 한다. 돼지 분뇨가 발효되는 과정에서 불쾌한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

완벽하게 복원된 재래 돼지를 키우는 이한보름 대표를 만나 한국 재래 돼지의 경쟁력에 대해 들어봤다.


드라이에이징 과정에 있는 재래 돼지고기. 사진 송학농장
드라이에이징 과정에 있는 재래 돼지고기. 사진 송학농장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양돈 사업을 한다고 들었다. 양돈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내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소와 돼지를 함께 키웠다. 소 400여 두, 돼지 수천 두를 키웠다. 그런데 아버지의 몸에서 나는 소·돼지 똥 냄새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축산업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대입 수능을 망쳤다. 재수하고 싶었다. 엄격한 아버지는 재수하고 싶다는 얘기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신 당신이 졸업하신 영남대 축산학과에 반강제(?)로 입학시켰다. 축산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과정이다. 당시 아버지 친구분이 대학교수로 계셨는데 그분에게 엄격하게 가르치라는 당부도 하신 듯싶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국내에서 박사까지 마쳤고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다.”

현재 키우는 돼지는 얼마나 되나.
“사육하는 돼지는 일반적인 삼원교잡종 돼지(백돼지) 4000두, 한국 재래 돼지 원종 200두다.”

재래 돼지와 일반 돼지의 차이점은.
“재래 돼지는 요즘 주로 식용으로 키우는 삼원교잡종 돼지와 생긴 것부터 다르다. 털은 검은색으로 광이 난다. 얼굴은 함몰됐으며 큰 눈, 곧추선 귀가 특징이다. 또 어깨는 둥글고, 가슴은 넓지만 배는 좁다. 젖꼭지는 10~12개이고, 긴 엉덩이에 다리는 짧지만 균형이 잡혔다.”

송학농장이 키우는 재래 돼지는 다른 농장에서 키우는 재래 돼지와 다른가.
“우리 농장에서 키우는 재래 돼지는 오랜 기간 유전자 형질을 복원하고 고착화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우리나라 재래 돼지 특유의 생김새와 육질 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진짜배기’라고 보면 된다.”

재래종 복원이 쉽지 않았을 텐데. 복원 과정을 설명해달라.
“우리 농장은 아버지가 농장을 운영할 때부터 영남대와 공동으로 두 단계에 걸쳐 재래 돼지 과정 복원작업을 진행했다. 전국에서 재래종에 가까운 외모를 지닌 300여 두의 흑돼지를 모아 5세대에 걸쳐 교배를 거듭했고, 이후 DNA(유전자) 감정을 거쳐 유전적으로 순수한 재래 돼지 종돈을 확보했다. 현재 우리 농장은 외형적으로나 유전적으로 완벽한 재래 돼지를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재래 돼지는 일반 돼지보다 사육 기간도 길고 출산율도 낮다. 일반 돼지와 가격 차이는.
“우리가 키우는 재래 돼지는 일반 개량 돼지보다 3~4배쯤 비싸다. 하지만 필수아미노산과 불포화지방산 등 사람에게 좋은 성분 함량이 개량 돼지보다 높다. 맛 또한 뛰어나 재래 돼지를 한 번 맛본 사람이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

재래 돼지는 공급량이 적고 가격도 비싸 일반인이 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
“한국인이 즐겨 찾는 삼겹살이나 목살 위주의 판매로는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 일반 소비자는 농가가 원하는 가격을 지불하고 사 먹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 요리사들과 협업해 재래 돼지에 적합한 요리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단순히 구워 먹지 않고 재래 돼지를 원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파는 것이다.”

양돈 사업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여러 가지 이슈가 있지만, 양돈업은 부정적 인식(공장식 축산, 환경 문제) 때문에 신규 진입이 어렵다. 기존 양돈업을 하는 농부들 역시 생산성 경쟁을 위해 끊임없이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야 한다. 결국 선진국 사례처럼 자본력을 가진 농가만 살아남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양돈 사업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축산업은 가축 사육 기술뿐만 아니라 대규모 자본이 요구되는 장치 산업으로 발전했다. 특히 이제는 환경과 동물복지까지 생각해야 하는 복합적인 산업이 됐다. 양돈업을 단순히 가축만 사육한다는 생각으로 뛰어들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 만큼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충분히 고민하고 재래 돼지처럼 기존과 다른 형태로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향후 계획은.
“재래 돼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셰프들과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재래 돼지 요리를 위한 테스트 키친이 딸린 건조 숙성 공장도 구축해 햄과 소시지를 만들고 드라이에이징(건조숙성) 등 다양한 실험도 진행할 예정이다. 재래 돼지 생산을 넘어, 가공도 하고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박지환 조선비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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