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은행 전경, 한국은행 별관 재건축 후 조감도. 사진 한국은행, 계룡건설
왼쪽부터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은행 전경, 한국은행 별관 재건축 후 조감도. 사진 한국은행, 계룡건설

고층 오피스 빌딩숲을 이루는 서울 종로와 광화문. 화려한 네온사인과 영화관, 백화점 등 대형 상업시설이 빼곡히 들어선 명동. 이들 한가운데에 근대 서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한국은행(이하 한은) 사거리 앞 분수광장 일대엔 일제강점기 건축 양식의 흔적이 묻어나는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SC제일은행 제일지점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유럽 성채를 연상시키는 외양에 지붕엔 철재 돔이 얹혀 있고 견고한 화강석을 몸체에 두르고 있다. 웅장함을 자아내는 한은의 옛 본관인 한은 화폐박물관 건물이다. 이 건물은 1912년 완공돼 100년이 넘었다. 화폐박물관 바로 뒤에는 16층 빌딩이 있다. 사실상 한은 본관 역할을 해온 한은 별관 건물이다.

당초 한은은 2018년부터 별관 건물을 대대적으로 재건축할 예정이었다. 별관을 재건축해 인근 제1·2별관과 소공별관에 분산된 부서를 이전하고 안전성과 보안성을 강화한다는 계획이었다. 2020년까지 3100억원을 투입해 공사를 완료하는 것이 한은 목표였다.

그러나 2년이 다 되도록 공사는 첫 삽조차 뜨지 못했고, 한은 별관은 ‘유령 건물’이 됐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요새는 길고양이들이 들어와 산다는 소문이 들린다”라고 했다. 이는 정부가 시공사 입찰, 선정 과정에서 행정 처리 미숙으로 불필요한 소송전에 휘말린 탓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서울 태평로 옛 삼성본관 건물(오른쪽). 사진 위키피디아
서울 태평로 옛 삼성본관 건물(오른쪽). 사진 위키피디아

낙찰가 둘러싼 소송 휘말려

공공건물 재건축은 조달청이 입찰을 진행한다. 조달청은 2017년 12월 시공사 1순위 낙찰예정자로 충청도 소재 계룡건설을 선정했다. 하지만 계룡건설의 입찰 가격이 조달청이 정한 입찰예정가를 넘었다는 위법 논란 때문에 공사가 지연됐다.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2조 2호에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입찰예정가격을 계약금액 결정 상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그런데 계룡건설은 입찰예정가(2829억원)보다 3억원 높은 금액(2832억원)을 제시하고도 1순위 낙찰예정자로 선정됐다. 이에 대해 조달청은 이번 입찰은 처음부터 창의적 제안을 위한 ‘실시설계 기술제안 입찰 방식’이 적용돼 별도의 낙찰자 결정기준(가중치 부과방식)에 의거해서 낙찰자를 결정했으므로 입찰예정가격을 계약금액의 상한이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시설계 기술제안 입찰 방식’은 입찰자가 기술제안서를 작성해 입찰서와 함께 제출하는 방식이다. 기술제안서 내용에 따라 가중치가 부과된다. 창의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조달청은 2011년부터 6건의 입찰에서 예정가격을 초과한 입찰금액을 제안한 업체와 계약을 체결해왔다. 그러나 한은 별관 입찰의 차순위였던 삼성물산이 이의를 제기했다. 삼성물산은 당시 입찰예정가보다 589억원 낮은 2243억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조달청은 상급기관인 기획재정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했으나 답이 오락가락 했다. 논란 끝에 올해 4월 감사원 감사까지 진행되면서 조달청의 일처리 방식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다. 조달청은 이에 따라 지난 5월 한은 별관 입찰 취소를 결정하고, 앞으로는 ‘실시설계 기술제안 입찰방식’에서도 입찰예정가격을 입찰금액의 상한선으로 삼도록 제도를 변경했다. 이어 계룡건설은 이런 조달청의 결정에 반발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코노미조선’이 입수한 지난달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은 별관 재건축 낙찰예정자 지위 확인 가처분 결정’ 문서에 따르면, 법원은 조달청의 당초 결정에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입찰절차에 하자가 있더라도, 그 하자가 입찰절차의 공공성과 공정성이 현저히 침해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고 밝혔다. 조달청은 8월 8일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법원 가처분 결정에 따라 당초 예정대로 계룡건설이 공사를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기재부, 감사원과 법원의 판단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국고손실 키운 부실 행정

이는 정부의 부실한 행정이 국고에 손실을 입힌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한은 직원들은 현재 서울 태평로 옛 삼성본관 건물 18개 층을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다. 한은이 매달 내는 월세는 13억원 수준으로 연간 약 156억원이다. 공사가 완전히 끝나서 이사하기 전까지는 매달 돈을 내야 하는 처지다. 당초 목표였던 2020년 완공은 이미 물 건너갔고, 2022년까지 완공될지 여부도 미지수다. 2년이 지연될 경우 312억원의 월세를 더 지급해야 한다. 계룡건설 관계자는 “완공까지는 적어도 30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무자본특수법인(공적기관이지만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가진 법인)으로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한은이 매년 일정 수준(한은법상 순이익의 70%)의 이익을 국고로 보내야 한다는 점이다. 한은이 매달 내는 월세가 커질수록 국고로 환수되는 금액(정부세입 납부액)은 적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은 내부 공시에 따르면 한은의 당기순이익은 2017년 3조9640억원에서 2018년 3조2137억원으로 18.9% 감소했다. 순익 감소는 지난 2014년 이후 4년 만이다. 한은 관계자는 “외화채권 가격 하락, 금리 인상에 따른 비용 증가에 따라 순익이 줄었다”라고 했다. 이에 따라 한은의 정부세입 납부액도 2조7333억원에서 2조2142억원으로 5191억원(18.9%) 줄었다.

이미 정부세입 납부액이 줄어든 상황에서 공사 지연으로 인해 앞으로 국고로 들어가야 할 돈이 더 줄어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의 한 직원은 “예정보다 공사가 지연되면서 2020년 이후 매년 순익에서 156억원이 빠지는 상황이다”라며 “세입자 신세가 길어지는 상황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김문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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