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립 청토청꿀 농장 대표가 토종벌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청토청꿀 농장
김대립 청토청꿀 농장 대표가 토종벌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청토청꿀 농장

8월 27일 전라남도 완도항.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전날 밤부터 내리기 시작해 아침에도 그치지 않았다. 다행히 바람은 심하지 않아 뱃길이 끊기지 않았고, 보길도로 향하는 배를 탈 수 있었다. 배를 탄 지 50분쯤 지나자 노화도에 닿았다. 배에서 내려 차로 30분쯤 달리니 섬과 섬을 잇는 다리가 나왔다. 다리를 건너면 보길도다. 보길도는 소문처럼 아름다웠다. 조선 중기 당파 싸움에 신물을 느껴 제주도로 내려가던 고산(孤山) 윤선도 선생이 잠깐 들렀다가 훌륭한 풍광(風光)에 반해 눌러앉은 곳이다. 윤 선생이 계곡물을 끌어 들여 연못을 만들고 그 옆에 지은 세연정이 유명하다.

세연정에서 멀지 않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는 황칠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김대립(46) 청토청꿀 농장 대표는 황칠나무 아래에서 벌통을 살폈다. 벌들은 비가 내리는 탓에 야외활동을 멈추고 통 안에 머물렀다. 벌통 윗부분을 열고 사각 틀을 들자 빽빽하게 매달린 벌들이 보였다. 녀석들은 습기를 없애려는 듯 ‘윙윙’ 소리를 내며 바쁘게 날개를 움직였다. 김 대표가 키우는 토종벌(한봉)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간혹 보는 노란색 벌(양봉)과 달리 약간 검은 빛이 돌았다. 크기도 약간 작았다. 김 대표는 “원래 충북 청원에서 벌을 키우는데 낭충봉아부패병에 강한 토종벌을 증식하기 위해 보길도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낭충봉아부패병은 주로 동남아와 중국 등지에서 발생한다. 2010년 한국에서 확산하면서 당시 농가에서 사육하던 토종벌의 98%가 죽었다.

토종벌은 양봉보다 순하다. 호기심에 벌통에 손을 넣었지만 한 마리도 침을 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벌집을 살짝 누르자 투명한 꿀이 찐득하게 흘러내렸다. 김 대표는 귀한 황칠나무꽃에서 모은 꿀이라고 했다. 신선하고, 달콤했다. 또 향기로웠다. 내륙 한복판에서 토종벌을 키우던 김 대표가 남해의 섬에 머무는 이유가 궁금했다.


청토청꿀 농장에서 수확한 토종꿀. 사진 청토청꿀 농장
청토청꿀 농장에서 수확한 토종꿀. 사진 청토청꿀 농장

꿀이 신선하다.
“황칠나무 덕이다. 황칠나무는 따뜻한 남해안에서 자라는데 약효가 우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삼나무·산삼나무라고 불릴 정도다. 수액은 칠 재료로 사용되는데 조선시대 중국이 조공으로 요구한 물품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수액이 금보다 비쌌다.”

농장이 충북 청원에 있다. 전남 보길도에서 벌을 키우는 이유는.
“2010년 한국에 낭충봉아부패병이 확산하면서 토종벌이 거의 전멸했다. 토종벌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됐다. 이후 농촌진흥청(농진청)에서 낭충봉아부패병에 내성을 지닌 토종벌을 개발했다. 농가에 보급하기 위해서는 벌을 증식해야 하는데 다른 벌들과 격리된 곳을 찾다가 보길도에 들어오게 됐다. 이곳에서 이 병에 강한 토종벌을 증식하고 있다.”

낭충봉아부패병은 얼마나 심각한가.
“치명적이다. 애벌레와 다 큰 벌에 발생하는데 바이러스에 감염된 애벌레는 100% 폐사한다고 보면 된다. 한국한봉협회에 따르면, 2010년 전국 토종벌의 98%가 이 병으로 폐사했다. 다행히 농진청에서 낭충봉아부패병에 대한 면역력이 강한 토종벌을 개발해 토종벌이 사라지지 않게 됐다.”

농진청에서 증식을 맡긴 것을 보면 토종벌을 키우는 노하우가 우수한가 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토종벌을 키우며 꿀을 생산하고 있다. 3대를 모두 합하면 80년쯤 된다. 다른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나는 벌을 가지고 놀았다. 여섯 살 때 나만의 토종벌 통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벌의 습성을 알게 됐고, 키우는 기술도 쌓였다. 이제 벌을 키운 지 40년이 됐다. 국내에 이처럼 오랫동안 벌을 키운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여섯 살 때면 시골에서도 흙장난이나 할 나이인데.
“당시 나는 너무나 벌을 키우고 싶어 했다. 내가 벌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신 아버지가 여왕벌이 없는 벌을 여러 통 주셨다. 여왕벌이 없으면 번식이 불가능할 뿐이지 꿀을 생산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내가 벌을 키워 직접 꿀을 수확한다는 사실이 너무 재미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학생주임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학교 옥상에서 토종벌 다섯 통을 키우며 관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벌을 키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남들처럼 대학에 진학하길 원하셨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충청전문대에 다녔다. 하지만 취직보다 벌에 관심이 더 많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토종벌을 키우기 시작해 지금도 토종벌만 키운다.”

벌이는 괜찮나.
“2010년 낭충봉아부패병이 발생하기 전에는 한 해 소득이 3억원쯤 됐다. 수익을 높이기 위해 백화점·대형마트 납품을 끊고, 고품질의 꿀을 소비자와 직거래했다. 대기업 임원 부럽지 않을 정도로 벌이가 좋았다. 벌을 키우는 나이 많은 농민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많이 다녔다. 낭충봉아부패병으로 벌이 많이 죽고 난 뒤에는 토종꿀을 생산해 돈을 벌기보다 농진청에서 개발한 토종벌을 증식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간 모은 돈을 쓰고 있지만, 투자라고 생각한다. 현재 토종벌을 400통까지 증식했는데 1000통쯤으로 늘려 농가에 분양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토종꿀을 수확할 계획이다.”

강연까지 다닐 정도면 토종벌 키우는 노하우가 대단한가 보다.
“20대 중반부터 강연을 다녔다. 나이는 적었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아버지가 벌을 키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돕다 보니 어지간한 어른들보다 벌 키운 경험이 훨씬 많다. 지방 농업기술센터에서 강의하고, 농장을 찾은 이들에게 1박 2일 일정으로 기술을 전수하기도 한다. 토종벌에 관한 특허 4건, 실용신안 3건도 가지고 있다. 정부로부터 최연소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농민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이유는.
“토종꿀 업계가 커지면 사업이 더 잘되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기술을 전파하고 있다. 그래도 뭔가 한 가지는 숨겨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시루에 찐 무지개떡처럼 층층이 색이 다른 ‘무지개 꿀’ 제조 방법만은 비밀로 지키고 있다.”

본인이 출원한 특허 기술에 대해 설명해 달라.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기술은 인공 봉분 기술이다. 벌 농사의 핵심 중 하나가 무리 나누기(봉분)다. 해마다 5~6월이면 벌통 속에 마릿수가 증가하고, 새로운 여왕벌이 탄생하면 벌 일부가 벌통을 빠져나와 새 무리를 이룬다. 이를 자연 봉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벌이 언제 자연 봉분을 할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벌을 키우는 농부들은 5~6월이 되면 벌통을 지키고 있다가, 벌들이 무리 나누기를 하려고 집단 비행을 시작할 때 쫓아가 새 벌통으로 유인해야 한다. 나는 인공 봉분을 하려고 온갖 시도를 해 봤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3년 만에 방법을 찾아냈다. 2003년 특허받은 이 기술을 동원하면 5분이면 봉분이 끝난다. 일손 줄여 혼자 벌을 치면서도 농장 규모를 1000통까지 늘릴 수 있다. 또 벌통 입구를 꼬불꼬불한 미로형으로 만든 ‘서양 벌 침입 방지 벌통’, 기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벌이 드나드는 벌통 입구가 자동으로 닫히는 ‘자동 여닫이 벌집’ 등의 기술도 개발했다.”

향후 계획은.
“농부도 변신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과거 기르는 농업에서 이제는 소비자가 즐기는 농업으로 변해야 한다. 나는 이를 ‘곱셈 농법’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양봉장 옆에 메밀과 해바라기를 심어 메밀과 해바라기 씨를 수확하고 꿀도 따는 식이다. 소비자가 참여해 이걸로 꿀떡 같은 먹거리를 만들 수 있다. 연결되면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를 한 것처럼 폭발적인 시너지가 나온다. 이미 토종벌을 활용해 이런 방식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토종벌 번식이 계획대로 이뤄지면 ‘곱셈 농법’을 확대할 예정이다.”

박지환 조선비즈 농업전문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