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다혜 소소리농장 대표가 어린이 교육용으로 심은 벼 옆에서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소소리농장
서다혜 소소리농장 대표가 어린이 교육용으로 심은 벼 옆에서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소소리농장

10월 8일은 24절기(節氣) 중 차가운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였다. 이날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위치한 소소리농장에 도착하자 ‘이제 가을이구나’ 싶었다. 산과 산 사이로 부는 싸늘한 골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

폭 10m쯤의 작지 않은 개울과 맞닿은 소소리농장에는 뽕나무, 자두나무, 호두나무, 감나무, 느티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덩치를 뽐내고 있었다. 농장 대표인 서다혜(28)씨의 아버지가 1996년 귀농해 원래 논이었던 땅을 돋우고 심기 시작한 나무들이다. 소소리농장은 농촌 교육을 겸한 체험형 농장이다. 하늘을 가린 커다란 나무들 아래로는 야외용 벤치와 식탁, 트램펄린 ‘방방이’ 그리고 지붕이 높지 않은 어린이 학습 시설이 이곳저곳에 설치돼 있었다.

반질반질한 털에 덮인 생소한 이름의 관상용 닭(골드 세브라이트 반탐)들과 덩치가 큰 네눈박이개들은 사람을 전혀 겁내지 않았다. 동물들은 농장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며 모이를 주워먹거나, 바람이 불지 않는 양지바른 곳에서 일광욕을 즐겼다. 기자도 한참 동안 피부를 스치는 적당히 차가운 바람을 몸으로 느끼며 농장을 둘러봤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서 대표가 나타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여리여리한 체구의 젊은 여성이었다. 인사를 나누면서 살핀 서 대표의 모습은 힘을 써야 하는 거친 일이 많고, 사람과 많이 접해야 하는 체험 농장일과 맞을까 싶었다.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고. 목소리도 작았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은 넘쳤다.

“잠깐이지만 도시생활도 해봤는데 맞지 않았다. 시끄럽고, 더러운 곳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저는 시골생활 자체가 너무나 좋다. 또 열심히 하면 농업처럼 비전 있는 분야도 없는 것 같다.”

서씨는 일반적인 주말농장에 어린이 체험·교육을 더하자 수익이 2배 늘었다며 농업은 여전히 블루오션 분야라고 강조했다.


소소리농장에 방문한 어린이들이 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소소리농장
소소리농장에 방문한 어린이들이 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소소리농장

농사짓는 일에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아홉 살에 아버지를 따라 시골에 내려왔다. 남양주는 할아버지 때부터 농사를 지은 곳으로 아버지의 고향이다. 시골생활은 재미있었다. 봄이면 나물 캐고, 여름이면 과일 따고 가을이면 버섯도 따는 일이 재미있었다. 지천이 놀 거리고 친구였다. 나이 먹어서도 농촌에서 살고 싶었다. 부모님도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라고 하셨다. 고등학교를 농고에 가고 싶었는데 주변에 농고가 없어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대신 대학을 한국농수산대학으로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향해 부모님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농사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농사는 옛날처럼 육체노동으로 힘쓰며 하는 일이 많지 않다. 기계가 대신해준다. 그리고 우리 농장은 주말농장을 기본으로 어린이 체험·교육 위주로 운영한다. 주말농장은 우리가 땅을 빌려주면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들이 일을 하는 형태다. 회원들이 일하기 때문에 직접 농사를 짓는 것보다 힘을 쓸 일이 많지 않다.”

부모님과 같이 일을 하다 보면 부딪힐 일도 많을 텐데.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일을 할 때는 아버지와 많이 부딪혔다. 아버지는 1996년부터 주말농장을 시작한 우리나라 주말농장 운영 1세대다. 그래도 농업대학을 나온 나를 믿고 결정권을 많이 주셨는데 성과가 기대한 것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부녀가 티격태격했다. 좀 심했을 때는 2년 정도 내가 집을 떠나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에서 직장생활을 한 적도 있다.”

왜 직장을 관두고 농장으로 복귀했나.
“직장에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보는 눈이 넓어지고 생각이 깊어졌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농장을 키우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농장일을 잊지 않고 어떻게 운영할지를 생각했다. 생각한 것을 직접 농장에 접목해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은근슬쩍 집으로 들어와서 다시 농장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목원에 다닐 때 기획한 아이디어를 농장에 적용했는데 성과가 좋았다.”

지금은 이전보다 돈을 잘 버나.
“농장 순이익이 많이 늘었다. 전에는 연간 순이익이 4000만~5000만원 정도였는데 올해는 1억원으로 추정된다. 전에 부모님이 벌던 돈보다 2배 이상 증가하는 것이다. 올해 태풍 ‘링링’만 아니었으면 벌이가 더 좋았을 텐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 수확체험으로 쓰려고 키운 배가 다 떨어졌다.”

어떻게 돈을 버나.
“아버지가 처음 시작한 주말농장이 우리농장의 뼈대다. 주말농장 회원들은 16.5㎡(약 5평) 기준으로 1년에 20만원의 회비를 내고 채소 등을 키운다. 우리 농장이 주말농장 중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나는 이 인지도를 활용해서 어린이 체험학습, 교육학습, 치유농장 등으로 농장의 영역을 확장했다. 우리가 감자, 고구마, 블루베리, 미니사과, 개복숭아, 배 등을 키우면 아이들이 일정한 돈을 내고 과일을 따서 가져가는 식이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블루베리 체험은 1만5000원이다. 블루베리 열매를 따면서 먹고, 300g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농장 규모는 얼마나 되나.
“우리 소유의 땅은 9917㎡(약 3000평)쯤 된다. 이곳에 감자, 고구마, 블루베리, 미니사과, 개복숭아 등을 키운다. 그리고 남은 땅은 일반적인 주말농장으로 활용한다. 올해부터는 체험학습을 위해 배 과수원을 임대하기도 했다. 3306㎡(약 1000평)쯤 된다.”

동물도 많던데.
“일반 닭과 관상용 닭, 거위, 칠면조 등의 가금류를 비롯해 고양이, 개, 황소 등도 키운다. 동물도 체험학습 등에 사용된다. 닭이 낳은 알을 이용해 유정란 줍기 체험을 하고, 황소 타기 등도 한다. 황소는 자기 엄마 때부터 우리 농장에 있던 녀석인데 부모님의 반려동물이자 우리 농장 마스코트다. 성이 ‘천방’, 이름이 ‘지축’이다. 집 근처 개울에는 물고기도 많다. 토종 산골 메기인 미유기를 비롯해 쉬리, 피라미, 모래무지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고기가 산다.”

마케팅이 중요할 텐데.
“전에는 우리 농장을 방문한 사람의 입을 통해 알음알음 농장이 소개됐다. 전파 속도가 느렸다. 지금은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우리 농장을 소개하고, 체험학습 고객을 모집한다. 내가 이 일을 전적으로 맡아하고 있다. 파급력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후배 농부에게 조언할 말이 있다면.
“농업은 여전히 블루오션이다. 자유로운 직업이고, 정부 차원의 청년 지원도 많다. 노후도 보장된다. 남들은 50대 후반이면 직장에서 나와야 하지만 농부는 건강만 허락한다면 하고 싶을 때까지 일할 수 있다. 다만 반드시 농업을, 농부라는 직업을 좋아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농업을 직업으로 삼으라고 적극 권한다.”

박지환 조선비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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