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곤 농업협동조합 ‘파주로 1박2일’ 대표가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파주로 1박2일
지성곤 농업협동조합 ‘파주로 1박2일’ 대표가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파주로 1박2일

10월 22일 경기도 파주. 평일임에도 적지 않은 차들이 달리는 자유로 인근의 논은 벼 수확이 한창이었다. 파주는 서울과 지척지간(咫尺之間)에 있다. 차창밖 풍경은 아름다웠다. 누렇게 익은 벼가 만드는 풍요로운 황금빛 들판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차가 판문점에 조금 못미처 자유로에서 벗어나자 농업협동조합 ‘파주로 1박2일’의 조합원이 운영하는 ‘DMZ 천년꽃차’가 나타났다. 자유로를 오가는 사람들이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꾸민 이곳은 조합원들이 생산한 농산품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이다.

단정한 2층 건물 내부는 여느 관광지의 건물보다 세련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봐 온 농업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점포들은 아무리 꾸며도 농촌 냄새가 풍겼지만, ‘DMZ 천년꽃차’는 유명 유통회사들이 운영하는 아웃렛 점포 못지않았다. 진열된 농산품도 공장에서 갓 나온 물건처럼 깨끗했다.

이곳에서 지성곤(37) 농업협동조합 ‘파주로 1박2일’ 대표를 만났다. 지 대표는 파주 적성면에서 젖소 100마리를 이용한 체험농장 ‘고구려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인터뷰 장소에는 김기태 ‘하마캠핑장’ 대표, 김정호 ‘쇠꼴마을’ 대표도 함께 나왔다. 이들은 ‘파주로 1박2일’ 조합원이다. 총 5명의 조합원 중 2명은 일정상 함께하지 못했다.

세 명의 농부들은 구릿빛 얼굴에 탄탄한 몸매였다. 헬스클럽에서 몸을 만든 이들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건강함이 느껴졌다. 옷차림도 농장에서 일하다가 온 사람치고는 깔끔하고 세련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과 행동에서도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적게는 매년 수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는 시골 부자들이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겸손했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부모들이 파주 적성면과 인근 지역에서 농사를 지은 농부의 자식들이고, 도시 부자들과는 비교할 수준이 못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먹고살고 아이들 키우는 데 부족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하는 시골살이 덕분인지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지 대표는 파주 땅값이 비싸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개발 붐이 불면서 농장 주변 땅값이 많이 올랐다고 하는데, 팔아야 돈이지”라고 했다. 그는 이어 “조합원들이 아직 젊어 앞으로도 농사를 계속 지을 생각이고 아이들도 농사일에 관심이 많아 땅을 팔 일은 전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주변 땅값이 오르면 오히려 농장을 지금보다 키우고 싶어도 키울 수 없게 된다”고도 했다. 조합원 각자가 해마다 대기업 임직원이 부럽지 않은 돈을 버는 상황임에도 굳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협동조합 활동에 한창인 지성곤 대표. 사진 파주로 1박2일
협동조합 활동에 한창인 지성곤 대표. 사진 파주로 1박2일

‘파주로 1박2일’은 주로 어떤 농사를 짓나.
“우리 조합은 구성원이 5명인데 다른 지역 협동조합과 다르다. 우리 조합원들은 서로 다른 농사를 짓는다. 젖소를 키우는 조합원이 있는가 하면 양계를 하는 조합원도 있다. 사과나 블루베리 등의 과수원을 운영하기도 한다. 목련꽃차를 만들고 커피숍을 운영하는 조합원도 있다.”

조합원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체험이 가능한 농장 형태로 운영한다는 점이다. 고구려목장은 체험고객이 젖소에게 여물을 주기도 하고 짠 젖으로 치즈를 만들 수 있다. 다른 농장은 원래 양어장을 하다가 아이들이 낚시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과일을 따고, 잼이나 쿠키를 만들어 볼 수 있는 농장도 있다. 5개 농장에서 총 100여 종의 농사나 놀이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다.”

일반적인 협동조합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다.
“그렇다. 그게 우리 조합의 경쟁력이다. 다른 체험농장은 우리 조합처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우리는 조합원들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서로 다른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마캠핑장’에서는 메기낚시를 하고 캠핑을 할 수도 있다. 다른 농장에서는 치즈 만들기 체험이 가능하다. 조합원들이 각자의 농장을 방문한 고객에게 다른 조합원이 운영하는 농장의 체험프로그램도 소개해준다.”

서로 다른 농사를 짓는 농장들이 조합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도 원래 각자의 농장에서 체험프로그램을 독립적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파주에 기업형 체험농장이 등장하면서 우리 조합원들처럼 소규모 체험농장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치즈 만들기를 예로 들면 기업형 체험농장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통째로 빌려 운영하고 있다. 당연히 자금이나 인력 면에서 그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소규모 체험농장의 경우 홍보나 마케팅 능력은 ‘제로(0)’다. 하지만 여러 농장이 모이니 자금에 여유가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공동으로 홍보 작업이나 마케팅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조합을 만드니 어떤 효과가 있나.
“고객이 늘었다. 2017년 조합을 만든 이후 체험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공동 홍보와 마케팅을 펼친 덕이다. 지난해 체험을 위해 우리 조합원이 운영하는 농장을 찾은 고객이 20만 명쯤 된다. 적은 숫자가 아니다. 재방문율도 조합을 만들기 이전보다 50%쯤 증가했고, 개별 농장의 수익도 평균 30%씩 증가했다.”

체험 비용은 어느 정도인가.
“체험의 종류와 수에 따라 따르다. 캠핑장이나 팬션에서 하루를 자면서 체험을 하면 1인당 10만원 이상이다. 하지만 기름값, 고속도로 통행료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서울에서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부모들은 푹 쉬면서 아이들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싼 가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합을 만든 이후 이용자들이 증가하는 것만 봐도 우리의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조합원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우리 조합의 조합원들은 모두 부모들이 파주에서 농업에 종사한 승계농들이다. 이 중에는 지금도 대학에서 부동산 관련 강의를 하는 이도 있고,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유학파도 두 명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귀농한 이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농사를 지은 사람은 한 명이다. 재미난 것은 조합원 모두 파주 출신이고 각자 자란 동네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전혀 안면이 없었다. 파주시에서 운영하는 농촌 관련 교육을 받으면서 서로 처음 얼굴을 봤다.”

향후 계획은.
“그동안은 조합원들이 어린이 농촌체험 위주로 농장을 운영했다. 앞으로는 농업활동을 하면서 마음과 몸이 아픈 이들을 농업을 통해 치유하는 ‘힐링농업’으로 체험프로그램을 좀 더 전문화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설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전문인력도 필요한데 이를 위해 정부, 지자체와 협의를 진행 중이다.”

박지환 조선비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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