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된다.
새해부터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된다.

2020년 새해를 맞이하는 기업의 가장 큰 고민은 달라지는 노동법이다. 올해 1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로제(주 52시간제) 확대 적용’과 ‘법정공휴일 유급휴일화’가 시행된다. 기업으로서는 근로시간은 단축하면서, 인건비 지출은 늘려야 하는 이중고에 처했다. 시행 시점 자체는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 당시부터 예고됐지만, 업종의 특수성이나 인력 충원 부담으로 인해 주 52시간제 도입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이 많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50인 이상 299인 이하 기업 중 42.3%가 ‘주 52시간제 준비 미완료’ 상태였다. 이 중 39.6%는 새해 전에 준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코노미조선’은 새해부터 달라지는 근로 제도에 대한 다양한 대응 방안을 살펴봤다.

개정 전 근로기준법은 법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규정하고, 여기에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을 더해 최대 주 68시간 근로를 허용했다. 2018년 2월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통합하고, 상한선을 최대 12시간으로 낮췄다.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휴일근로 12시간을 더한 주 52시간제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는 2018년 7월 1일부터 적용됐고, 50인 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에는 2020년 1월 1일부터 적용됐다. 2021년 7월 1일부터는 5인 이상 49인 이하 사업장으로도 확대된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 52시간제를 지키지 않는 사업주는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2021년 1월 1일까지 1년간 계도 기간을 두고, 50인 이상 299인 이하 기업을 장시간 근로 감독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법 위반 사실이 적발되면 최대 6개월의 시정 기간을 부여하고, 사업주가 고소·고발당해도 검찰과 협의해 최대한 선처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계도 기간 내에 어떻게든 주 52시간제 대응 방안을 완성하라는 과제를 받은 셈이다.


돌발 상황에선 주 52시간 어려워

기업이 아무리 주 52시간제를 준수하려고 노력해도, 특정 기간에 업무량이 집중되거나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등 주 52시간을 초과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먼저 주 52시간제가 적용된 대기업 근로자 사이에서는 ‘컴퓨터가 꺼져서 수기로 업무했다’ ‘마감 시한을 맞추기 위해 집이나 근처 카페에서 일하는 상황이다’는 불만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제도가 ‘유연근로제’다. 유연근로제는 크게 근로자 재량에 따라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선택근로제)’와 일시적으로 근로시간을 당겨쓰는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로 나뉜다.

선택근로제는 출퇴근 시간을 업무 환경과 특성에 맞게 조정하는 방식이다. 업무 시작 및 종료 시각, 1일 근로시간을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한다. 소프트웨어 개발, 사무 관리, 연구, 디자인 등 시기에 따라 업무량 편차가 발생하는 업종에 효과적인 근로 방식이다. 업무 효율을 높여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하는 것이다.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넘기지 않으면 일별 근로시간이 8시간을 초과해도 연장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선택근로제를 도입하려는 사업주는 취업 규칙에 ‘시업 및 종업 시각을 근로자의 결정에 맡긴다’는 내용을 기재하고,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로 구체적인 시행 방법을 정하면 된다.

동원F&B 청주공장은 지게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선택근로제를 통해 근무 효율을 높였다. 일률적인 ‘9시 출근, 6시 퇴근’ 제도에서 벗어나 출근 시간을 다양화해 주문 마감 이후 본격적으로 제품을 출하하는 오후 시간대에 인력을 집중했다. 정보기술(IT) 회사 특성상 출시·업데이트 일정에 따라 업무가 몰리는 넷마블도 선택근로제를 도입했다. ‘코어 타임’으로 정한 오전 10시~오후 4시를 제외하고 나머지 업무시간은 직원이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선택근로제는 근로시간 총량이 주 52시간을 넘길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50인 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 중 다수는 대기업과 원·하청 관계이거나 공공기관 조달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이다. 하청 기업 특성상 무엇보다 납기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려면 장시간 집중근로가 필요하다. 이런 경우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탄력근로제’다. 탄력근로제는 어떤 근로일의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 근로일의 근로시간을 단축시키는 일종의 총량제다. 근로자와 합의한 기간, 평균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을 넘기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초과근로 한도를 높일 수 있다.

탄력근로제는 최장 3개월까지 설정할 수 있다. 납기가 얼마 남지 않은 하청 기업이라면 두 달 동안 주 64시간을 근로하게 하고, 나머지 한 달은 주 28시간을 근로하게 하는 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 월말에 업무가 집중되는 회계직이라면 매달 셋째 주에 44시간 일하고, 넷째 주는 60시간을 일해 업무량 과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탄력근로제는 단위 기간에 따라 설정 방법이 다르다. 2주 이내 단위로 탄력근로제를 설정할 경우 취업 규칙이나 이에 준하는 것으로 규정하면 된다. 2주 이상 3개월 이내 단위로 설정할 경우 사업주는 근로자 대표와 △대상 근로자 범위 △단위 기간 △근로일 및 근로일별 근로시간 등에 대해 서면으로 합의해야 한다. 다만 탄력근로제를 도입해도 하루 근로시간은 최대 12시간, 주당 근로시간은 최대 64시간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두 가지 유연근로제 모두 결국 근로시간 총량이 주당 평균 52시간을 넘어설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대량 리콜 사태, 돌발적인 기기 고장 등 경영상 문제로 긴급한 대처가 요구될 경우 사업주는 ‘범법자가 될 것인가’ 또는 ‘사업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선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로 소재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이 시급했던 사례도 있다. 이런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특수한 상황에 무제한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제’ 인가조건을 확대하기로 했다.


유급휴일만 16일 늘어난다

300인 이상 기업은 새해부터 법정공휴일이 유급휴일로 변경된다. 법정공휴일은 ‘관공서가 쉬는 휴일’로 이전에는 공공기관만 유급휴일로 의무 적용했고, 민간 기업은 고용 계약서와 취업 규칙에 따라 무·유급 여부를 지정할 수 있었다.

2020년에는 신정·설날·석가탄신일 등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합쳐 모두 16일이 유급휴일로 지정돼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모든 근로자에게 연간 16일치의 임금을 더 지급해야 하는 셈이다. 유급휴일에 근로할 경우 기업은 근로자에게 휴일근로 가산임금을 합해 평일의 250%를 지급해야 한다.

다만 국내 대기업 대다수는 이미 법정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지정하고 있어 당장 파급력이 크지는 않을 전망이지만 정규직 근로자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 단시간 근로자에게도 적용돼 대기업도 인건비 부담이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이나 배송업 등 법정공휴일에 일감이 몰리는 업종의 경우 ‘휴일대체제도’를 통해 인력 부족과 인건비 부담에 대처할 수 있다. 취업 규칙이나 단체협약을 통해 법정공휴일을 근로일로 정하고, 통상의 근로일을 휴일로 대체하면 휴일근로수당을 추가로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