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담희씨가 완성된 술을 병에 담고 있다. 사진 좋은술
김담희씨가 완성된 술을 병에 담고 있다. 사진 좋은술

“술 만드느라 친구들과 놀 시간이 아주 많이 부족하긴 해요. 그 점만 빼면 술 빚고, 사람 만나 제가 만든 술을 소개하고, 파는 일이 정말 좋아요.”

2019년 끝자락인 12월 30일 서울 지하철 신촌역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담희(22)씨는 자기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경기도 평택에서 부모님과 함께 전통주를 빚는 청년 농업인이다. 나름 화장을 했지만 앳된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복장도 편안한 운동복 바지에다 후드티였다.

궁금한 것이 많은 기자와 달리 김씨는 심통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와 친구들과 놀기로 했는데, 점심을 잘못 먹었는지 체해서 놀지 못했다”고 했다. 거침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젊음이 부럽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다. 아픈 것보다 친구와 놀지 못한 것을 더 속상해하는 젊은이가 고루해 보이는 전통주 빚기에 푹 빠진 이유가 궁금했다. ‘젊은 친구가 전통주 맛을 알면서 만들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김씨가 부모님과 운영하는 양조 회사 ‘좋은술’은 막걸리·약주·소주 등의 전통주를 만든다. 대표 술인 ‘천비향’은 2014년 ‘아시아 와인트로피 위대한 전통주’에 선정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2016년 청와대 만찬주 리스트에 올랐고, 2018년에는 우리 술 품평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김씨가 부모님과 만드는 대표 제품. 사진 좋은술
김씨가 부모님과 만드는 대표 제품. 사진 좋은술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전통주를 빚는 것이 생소하다.
“원래 아버지 쪽(본가) 친척이 모두 술을 잘 마신다. 본가 식구 만날 때는 술이 빠지는 날이 없다. 물론 나도 본가 체질을 닮아 술을 좀 마시는 것 같다.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면서 술 만드는 것을 배웠다. 처음에는 재미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재밌었다. 특히 맛 좋은 술을 직접 만들어 마실 때 뿌듯했다.”

부모님이 술을 빚기 시작한 계기는.
“대를 이어 술도가를 운영한 것은 아니다. 은행 지점장으로 일하시던 아버지가 은퇴한 이후 엄마의 주도로 술도가 사업을 시작했다. 인생 이모작 프로젝트였다.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시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몇 년 전까지 언니와 함께 골프를 배웠다. 프로골퍼가 되고 싶었다. 술 만드는 일은 부모님이 바쁠 때 가끔 도와드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딸 둘이 골프를 배우니 연간 2억원쯤 들었다. 적은 돈이 아니다. 나보다 골프를 더 잘 하는 언니가 계속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골프를 포기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하는 전통주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힘은 안 드나.
“술 빚는 일은 기술도 필요하지만 육체노동이 기본이다. 어렸을 때 골프를 쳐 체력은 자신이 있다. 하지만 누룩 만드는 일, 밑밥 짓는 일, 술이 가득 담긴 무거운 항아리 옮기는 일 등 뭐하나 힘을 쓰지 않는 일이 없다. 그래도 누룩과 쌀이 술로 변하는 것이 신기했고, 쌀과 누룩을 발효시켜 향기 좋은 전통주를 만든다는 것도 재미있다.”

술도가에서 어떤 일을 하나.
“원래는 일하는 사람을 썼는데 지금은 가족끼리 술도가를 운영하고 있어 특별히 한 가지 일만 맡지는 않는다. 누룩도 만들고, 술을 빚어 거르기도 하고, 술을 증류하기도 한다. 여기에 마케팅, 판매도 내 몫이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사람을 만나 우리 가족이 만든 술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이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을 때면 술 만드는 일을 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은 아직 대학에 다닐 텐데. 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나.
“사실 처음에는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창업농으로서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나만의 아이디어로 미래를 구상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친구들은 조만간 대학을 졸업하는데 ‘좋은 일자리 잡기도 어렵고, 어렵게 얻은 일자리도 스트레스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요즘에는 내가 부럽다고 하는 친구들도 부쩍 많아졌다. 일반 대학에 다니지 않지만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사이버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공부를 계속해 국내 최연소 양조학 박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이미 지난해 2월 소믈리에 자격을 취득했고, 한국가양주연구소 최고지도자과정도 병행 중이다.”

만드는 술에 대해 소개해 달라.
“우리는 막걸리, 약주, 소주까지 모든 전통주를 만든다. 다른 술도가와 차별화되는 점은 5번 발효시킨 오양주 ‘천비향’을 만든다는 점이다. 주력 상품인데 제조 관련 특허도 여럿 가지고 있다. 천비향은 맛과 향을 인정받아 ‘우리 술 품평회’ 약주 부문 대상, ‘대전 국제 와인 페어’ 전통주 부문 대상 등, 상을 많이 받았다. 우리는 걸러낸 약주를 저온 창고에서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쯤 숙성시키는데 다른 술도가에서 만드는 전통주보다 상대적으로 숙성 기간이 길다. 전통주는 누룩과 멥쌀을 섞어 만든 밑술에 찹쌀 고두밥을 추가로 넣어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치는데 횟수에 따라 이양주, 삼양주, 사양주, 오양주라고 구분해 부른다.”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은 술을 오래 숙성시키면 상하지는 않나.
“전통주는 알코올 도수가 20도 미만으로 아주 높은 편이 아니지만 저온에서 오래 숙성시켜도 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술맛이 훨씬 좋아진다. 오래 숙성시킬수록 알코올 특유의 냄새가 사라지고 술이 부드러워진다. 쌀 특유의 향과 맛이 강해진다. 제대로 숙성된 술은 과음한 날이면 으레 겪는 숙취도 거의 없다.”

오래 숙성하면 생산비가 올라가지 않나.
“사실 우리가 만드는 술은 싼 편이 아니다. 가격은 발효 횟수와 숙성 정도에 따라 다르다. 500㎖ 기준으로 가장 저렴한 술이 1만원, 1년 숙성한 고급 약주는 5만원쯤 된다. 비싸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옛날처럼 술을 많이 마시는 분위기가 아니고 가격보다 품질을 따지는 사람도 많아서 판매는 꾸준하다. 품질을 인정받아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앞으로 목표는.
“거부감 때문에 또는 비싸거나 맛이 없어서 소주나 전통주를 외면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내 꿈은 20·30세대가 부담 없는 가격과 맛으로 즐길 수 있는 전통주를 만드는 것이다. 아주 맛있으면서 숙취가 없는 막걸리, 고리타분하지 않은 맛과 향을 지닌 전통주를 빚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시장 분석, 제조 원가, 포장 디자인 등을 연구한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도 배운다. 중장기적으로는 내가 개발한 전통주를 기반으로 가족, 연인 등이 자유롭게 찾아와 체험, 구매,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패밀리 카페테리아’를 여는 것이다. 그날그날 약간씩 다른 술맛에 따라 음식 메뉴와 분위기를 달리하는 페어링(pairing) 공간을 조성하면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명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술도가는 술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주로 찾는데, 술지게미를 이용해 아이들이 쿠키나 빵을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박지환 조선비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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