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일본 도쿄의 한 지하철 출입문 옆에 ‘TOKYO 2020’이라고 쓰인 올림픽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중국에서 발발한 코로나19의 확산 우려 때문에 7월 24일 개막하는 도쿄 올림픽이 취소 혹은 연기될지 모른다는 루머가 퍼졌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그럴 가능성을 부정했다. 사진 AP연합
1월 31일 일본 도쿄의 한 지하철 출입문 옆에 ‘TOKYO 2020’이라고 쓰인 올림픽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중국에서 발발한 코로나19의 확산 우려 때문에 7월 24일 개막하는 도쿄 올림픽이 취소 혹은 연기될지 모른다는 루머가 퍼졌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그럴 가능성을 부정했다. 사진 AP연합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06년 쓴 책 ‘새로운 나라로’에서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일본이 가장 빛났던 시기’로 꼽았다. 아베 총리는 책에서 당시 초등학교(일본은 소학교) 4학년이었던 어린이 아베의 눈에 비쳤던 일본의 부활을 길게 서술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1964년 도쿄 올림픽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그의 꿈이 악몽으로 바뀔 위기에 놓였다.

이소야마 도모유키(磯山友幸) 경제 저널리스트는 ‘3조엔 투입한 도쿄 올림픽 실패로 불황 찾아온다’라는 주간지 ‘프레지던트’ 2월 7일 자 기사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례를 볼 때 코로나19 사태가 도쿄 올림픽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꽤 크다”고 분석했다. 사스는 2002년 11월 16일 중국에서 시작됐는데 세계보건기구(WHO)가 종식을 선언한 것은 2003년 7월 5일이었다. 사스 창궐 뒤 종식 선언까지 8개월 걸렸다. 코로나19가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병한 것은 2019년 12월 12일, 사스 때와 같은 수준이라면 종식 선언은 올해 7~8월은 돼야 나올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감염·사망자는 이미 사스 때 최대치를 넘었고, 전염력은 사스보다 더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 올림픽 개막일은 7월 24일. 코로나19 종식 선언이 늦어지면 올림픽을 보기 위해 일본을 찾으려는 관광객 수가 격감할 것이다.

애초 일본 정부는 올해 방일 외국인 4000만 명을 목표로 세웠다. 지난해 방일 외국인이 3188만 명으로 사상 최다이긴 했지만, 한·일 관계 악화로 한국인이 급감한 탓에 전년보다 2.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올해 추세대로라면 4000만 명은 고사하고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중국인은 전년보다 14.5% 늘어난 959만 명에 달했다. 지난해 중국인이 일본에서 쓴 돈은 전년보다 14.7% 늘어난 1조7718억엔(약 19조1000억원)으로, 외국인 소비액의 37%에 달했다.

올림픽이 기대만큼의 경제효과를 가져오지 않을 경우 일본 경제는 대회 후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일본이 올림픽을 유치했을 당시엔 ‘세계 제일의 콤팩트한 대회’를 목표로 했지만, 관련 예산은 목표를 크게 초과한 상태다. 지난해 말 일본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림픽 사업에 대한 국가 지출은 이미 1조600억엔(약 11조4000억원)에 달했다. 그 외에 도쿄도청·조직위가 지출한 비용까지 더하면 올림픽 관련 지출은 3조엔(약 32조3000억원)을 넘는다. 올림픽은 과거 국가 위신을 걸고 치르는 국제 대회라는 색채가 강해 거액의 국가 예산이 투입된다. 그 결과 대회 후 심각한 불황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2월 10일 자 교도통신은 “일본 국내총생산(GDP) 1% 하락 우려, 감염증 장기화되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코로나19의 유행이 1년 정도 계속될 경우 일본의 실질 GDP가 적어도 1% 이상 하락할 것”이라며 “그 결과 2020년은 일본이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도쿄 올림픽 강행할 듯

2월 9일 자 산케이신문은 ‘도쿄 올림픽 앞으로 166일- 감염병 위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3월 도쿄마라톤에 중국인이 불참하기로 하는 등 코로나19가 스포츠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면서 “올림픽 전까지 국내에서 종식 선언을 할 수 있느냐에 올림픽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썼다. 2월 8일 자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코로나19, 올림픽에 위기감’이라는 기사에서 “유행이 장기화할 경우 대회 준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썼다.

일본 공중파 방송국인 TV아사히의 인기 시사 프로그램인 ‘비트 다케시의 TV 태클’에서는 ‘일본에도 감염자 급증, 도쿄 올림픽 괜찮을까’라는 제목의 2월 9일 특집 방송에서 “도쿄 올림픽까지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을 경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최종 수단으로 관객 없이 경기를 치르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최근 일본 보도에 따르면, 일본 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도쿄 올림픽이 취소·연기될 것’이라는 루머 글이 5만 건을 넘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일본 정부·당국이 도쿄 올림픽을 취소·연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그러나 취소보다 강행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재앙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돈은 돈대로 쓰고 흥행에 실패할 경우 일본 경제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아베 총리는 ‘벚꽃을 보는 모임(이하 벚꽃회)’과 관련해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다. 벚꽃회는 매년 봄 도쿄에서 총리가 여는 행사인데, 아베 집권 후 총리를 비롯한 정권 요인이 지역구 후원회원 등을 초청하는 행사로 변질시켰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민의 불신감이 커졌다.

최근 일본 대표 기업까지 휘청거리면서 위기감이 더해지고 있다. 일본 1위 철강 회사인 일본제철은 지난해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이 4400억엔(약 4조7000억원) 적자가 전망된다. 창사 이래 최대 적자다. 업계 전체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철강 생산 규모가 급속히 쪼그라들고 있다.

일본의 세계 철강 수주량 점유율은 2015년 28%에 달했지만, 지난해 13%까지 떨어졌다. 4년 전 일본과 점유율이 비슷했던 한국과 중국의 지난해 점유율은 각각 37%, 33%로 상승했다.

일본 평판디스플레이의 영광을 되살리겠다며 2012년 경제산업성 주도로 소니·도시바·히타치의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사업을 통합해 만든 JDI도 5년 연속 적자다. 업계에서는 회생 불능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일본에선 지난해 소비세 증세(8%에서 10%)도 있고 해서 일본 국내 소비가 얼어붙고 있고, 아베 총리 최대 치적인 아베노믹스 성공마저 ‘무제한으로 돈을 풀어 거둔 허상일 뿐, 경제 체력을 키우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불황 여파가 일본을 다시 덮칠 것이 염려되는 판에 일본 정부가 기댈 곳은 올림픽 특수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이마저 망쳐버릴지 모르게 됐다.


Plus Point

크루즈선 감염자 200명 넘어 日, 감염국 이미지 탈피 총력

2월10일,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가 벌어진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방호복을 입은 작업자들이 나오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2월10일,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가 벌어진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방호복을 입은 작업자들이 나오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일본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확산되면서, 도쿄 올림픽 성공에 빨간불이 켜졌다. 2월 13일 현재 이 크루즈선에서 발생한 감염 확진자는 무려 218명이다. 단일 지역 감염으로는 중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다. 전체 승선자(3711명) 가운데 이미 6%가 감염 판정을 받았다. 승선자와 별도로 검역관 1명도 감염이 확인됐다. 이 검역관은 선내 검역 때 마스크·장갑은 꼈지만 방호복·고글은 착용 안 한 것으로 조사돼 일본 정부의 부실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크루즈선 감염을 제외하면 2월 13일 현재 일본 국내 감염자는 28명. 크루즈선 감염을 포함하면 247명이다. 확진자만 5만 명을 넘는 중국을 빼면, 국가별 확진자 수에서 일본이 압도적이다.

한편 2월 11일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정부가 크루즈선 감염자를 ‘상륙 전 감염’이라는 이유로 일본 감염자에 포함시키지 말라고 언론에 요구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관광과 경제에 타격이 커질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 요청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는 2월 6일 이후로 크루즈선 확진자 발생분을 일본이 아닌 기타로 재분류해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2월 12일 교도통신은 “크루즈선 추가 감염 발생 등으로 ‘일본 내 감염자’가 203명이 됐다”고 보도하는 등 언론이 정부 방침을 지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