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 3’ 완성차 회사 중 하나인 포드는 코로나19 여파 탓에 1분기 20억달러의 순손실을 낸 데 이어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졌다. 사진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이동 제한으로 폐쇄된 미국 미시간주에 있는 포드 공장 전경. 사진 블룸버그
미국 ‘빅 3’ 완성차 회사 중 하나인 포드는 코로나19 여파 탓에 1분기 20억달러의 순손실을 낸 데 이어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졌다. 사진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이동 제한으로 폐쇄된 미국 미시간주에 있는 포드 공장 전경. 사진 블룸버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 먹구름이 꼈다. 전 세계에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셧다운(생산 중단)’과 ‘록다운(이동 제한)’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자동차 업계는 생산과 판매 이중고에 빠졌다.

글로벌 주요 완성차 회사의 1분기 성적표는 암울했다. 미국 ‘빅 3’ 완성차 회사는 휘청했다. 제너럴모터스(GM)는 1분기 순이익이 2억9400만달러(약 3610억원)로 지난해 1분기보다 86.7%나 급감했다. 포드와 피아트크라이슬러(FCA)는 각각 20억달러(약 2조4562억원), 18억달러(약 2조2105억원)의 순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유럽 완성차 회사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 다임러의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1분기보다 68.9% 감소한 7억1900만유로(약 9556억원)에 그쳤고, 폴크스바겐의 영업이익은 81% 급락한 9억유로(약 1조1961억원)였다. BMW도 1분기 판매가 47만711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6% 감소했으며 2분기 수요는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기아차는 1분기 순이익이 818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9% 줄었다. 글로벌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 수요가 코로나19 충격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여러 완성차 회사의 판매가 내리막길을 탔다.

수익성 악화가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감도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코로나19 탓에 부도 위험이 커진 완성차 및 부품 회사 수가 늘었다. 부도 위험이 커진 회사 비중은 2월 말 완성차 33.6%, 부품 회사 36.2%에서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선언 이후인 3월 말 완성차 68.9%, 부품 회사 70.5%로 뛰었다. 신용평가사들은 이미 포드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낮췄고 BMW, 도요타 등의 신용등급도 하향 조정했다. 또 무디스가 현대차와 기아차를 신용등급 하향 조정 검토 대상에 올린 데 이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현대차를 비롯해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했다.

2분기 들어 글로벌 완성차 ‘빅 2’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공장 재가동과 수요 회복 조짐이 일고 있다. GM, FCA, 포드, 도요타, 현대·기아차 등 글로벌 주요 완성차 회사가 5월부터 잇따라 미국 공장을 재가동했거나, 할 예정이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의 최고 위험 지역인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전기차 회사 테슬라 공장도 5월 11일(현지시각)부터 재가동에 들어갔다. 테슬라는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승인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공장 재가동을 강행한 것인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캘리포니아주는 테슬라가 공장을 다시 열도록 당장 허락해야 한다”라고 쓰면서 공장 재가동에 지지를 보냈다.

이동 제한이 완화되면서 대중교통이나 공유 이동 수단 이용을 꺼리고 자가 차량으로 안전하게 이동하려는 소비자가 늘어나 미국 완성차 판매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도 있다. 미국 최대 자동차 유통업체 오토네이션의 마이크 잭슨 최고경영자(CEO)는 5월 11일 1분기 실적 발표에서 “4월 1~10일 신차와 중고차 판매는 50% 줄었지만, 4월 20~30일에는 감소 폭이 20%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자동차 시장은 부침을 겪겠지만, 소비자는 여전히 새 자동차 구매에 관심이 많다”며 “자동차 시장 회복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희미한’ 청신호

하지만 미국 2위 렌터카 업체인 허츠가 파산 위기에 직면하면서 완성차 업계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허츠는 160억달러(약 19조6500억원) 부채에 대한 파산보호 신청을 추진하는 것으로 5월 초 알려졌다. 우버, 리프트 등 차량 공유 업체의 부상으로 실적 부진을 겪은 데 더해 코로나19 사태가 관광객 감소, 재택근무 확대로 이어지면서 허츠는 벼랑 끝에 몰렸다. 미국 렌터카 회사의 대량 구매는 미국 전체 자동차 수요의 20% 수준이다. 허츠 등 렌터카 업체가 경영 악화를 겪으면 미국 완성차 판매가 감소할 수 있다. 렌터카 업체 파산으로 중고차 매물이 쏟아지면 신차 판매 부진이 예상된다.

중국에서는 4월 완성차 판매가 반짝 회복세를 보였지만, 코로나19 영향권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에 따르면, 4월 중국 완성차 생산량은 210만 대, 판매량은 207만 대로 2019년 4월보다 각각 2.3%, 4.4% 늘었다. 4월 중국 완성차 판매량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증가한 것으로, 3월 43.3%나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CPCA)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바닥을 찍은 승용차 판매가 ‘V 자’ 형태로 양호하게 반등하고 있다”고 봤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코로나19에 타격을 입은 완성차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부양 정책을 내놓은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완성차 수요 진작을 위해 친환경 자동차 보조금 연장, 신규 자동차 번호판 발급 제한 완화, 자동차 할부금 이자 인하 유도 등을 시행했다.

이미 코로나19로 판매 부진이 심각한 데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기 전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은 코로나19 여파 탓에 올해 글로벌 완성차 판매가 7880만 대로 전년보다 12%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IHS마킷은 “올해는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2년간 8% 감소했던 것보다 안 좋은 상황”이라고 했다. 또, 2분기 들어 중국을 비롯해 일부 국가에서 자동차 수요가 반등하더라도 코로나19가 재확산할 수도 있기 때문에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역시 코로나19 확산 정도에 따라 최소 20%, 최악의 경우 40%까지 올해 글로벌 완성차 판매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 쇼크 비켜간 테슬라

코로나19 사태를 완성차 회사의 체질 개선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미래차, 모빌리티 서비스 등 차세대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1분기 시장 기대치를 웃돈 실적을 낸 테슬라가 타산지석으로 꼽힌다.

테슬라는 1분기 순이익 1600만달러(약 196억원)를 내면서 수익성을 개선, 2개 분기 연속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덮친 1분기는 다른 완성차 회사는 물론 테슬라에도 우호적인 영업 환경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테슬라가 수익성을 높일 수 있었던 이유는 자율주행, 커넥티비티 등 OTA(Over The Air·테슬라의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능)에 기반한 ‘고수익’ 미래차 사업이 안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성준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1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테슬라는 수요 기반의 실적 개선뿐 아니라 OTA 사업 모델의 확장 가능성을 입증했다”며 “전기차 플랫폼(차대)을 확장해 낮은 원가의 고성능 전기차 비즈니스를 확대한 데 이어 자율주행 솔루션을 도입하는 비즈니스 솔루션이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봤다. 이어 “테슬라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면 같은 지향점을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 온 기존 밸류체인(내연기관 차량 업체)의 대응 시간이 짧아질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