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홍대입구역 상권과 강남역 상권에 붙어 있는 긴급 재난지원금 홍보 안내문. 사진 조강휘·오민지 인턴기자
왼쪽부터 홍대입구역 상권과 강남역 상권에 붙어 있는 긴급 재난지원금 홍보 안내문. 사진 조강휘·오민지 인턴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때문에 집에서 주로 공부했는데 긴급재난지원금(이하 재난지원금)을 쓰려고 오랜만에 카페에 나왔어요.”

5월 18일 서울 동교동 스타벅스에서 만난 20대 직장인 김모씨는 주머니 속에서 재난지원금으로 발급받은 카드를 꺼내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재난지원금 40만원을 수령하고 오랜만에 외출을 결심했다. 김씨는 “만료 기한인 8월 이전에 생활비나 이직 준비 비용으로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예정”이라면서 미소지었다.

‘이코노미조선’이 5월 18~19일 서울 주요 상권을 직접 돌면서 재난지원금 이용 실태를 확인했다. 5월 13일 재난지원금 사용이 시작되고 첫 주말을 보낸 시점이었다. 홍대입구역 상권(마포구 동교동), 강남역 상권(강남구 역삼동), 청량리청과물시장(동대문구 제기동), 광장시장(종로구 예지동)에 있는 총 40여 곳의 상점을 방문했다.

홍대입구역 인근 매장은 모두 재난지원금 안내문을 붙여 홍보전을 벌이고 있었다. A4 용지에 ‘긴급재난지원금 이용 가능합니다’라고 출력해서 출입문에 붙여놓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가판 상품보다 큼지막한 종이 상자에 ‘재난지원금 환영’을 적어 전시한 곳도 있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로고와 함께 재난지원금 사용 기한과 이용 방법까지 게시했다.

이날 만난 상인은 주말 사이 ‘재난지원금 특수’를 누렸다는 반응이었다. 여윳돈이 생기면서 사치품을 소비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귀금속 판매점 미니골드 홍대점의 여서현(26) 직원은 “이전보다 가격대가 높은 제품이 많이 나간다”면서 “보통 4만~10만원대 제품이 인기가 많았는데, 주말 사이 10만원 이상 제품이 많이 팔렸다”고 했다.

홍대입구역처럼 젊은 유동 인구가 많은 강남역 상권에서도 고가품 소비 현상이 나타났다. 같은 날 강남역 인근 편의점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이전엔 자주 눈여겨보지 않았던 와인과 1인용 삼겹살을 사러 나왔다”고 했다. 강남역 인근 세븐일레븐 점원 이모(25)씨도 이를 증명하듯 “고객의 재난지원금 사용 여부를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고급 주류나 냉동식품을 찾는 손님이 유독 늘었다”고 했다.

실제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재난지원금 사용이 시작된 5월 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 고가 상품의 매출이 전주보다 크게 늘었다. 고가 상품인 와인과 양주 매출이 각각 17.2%, 12.8% 늘었고, 남성용 면도기는 45.2%, 남성 화장품은 48.1%의 증가율을 보였다. 나뚜루나 하겐다즈 등 고가형 아이스크림은 21.6% 매출이 올라 저가형 아이스크림(9.9%)보다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왼쪽부터 5월 19일 낮 12시 청량리청과물시장과 광장시장. 청량리청과물시장에 비해 광장시장은 한산한 모습이다. 사진 조강휘·오민지 인턴기자
왼쪽부터 5월 19일 낮 12시 청량리청과물시장과 광장시장. 청량리청과물시장에 비해 광장시장은 한산한 모습이다. 사진 조강휘·오민지 인턴기자

“이번 기회에 돈 쓰자”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도 “평소라면 쓰지 못하던 곳에 돈을 쓸 계획”이라는 반응이었다. 현모(77)씨는 “아내가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번에 작정하고 가야겠다”면서 “평소 생활비 부족으로 못했던 소비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40대 자영업자 김모씨는 “무릎 수술 이후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주사비가 11만원이 넘는다”라면서 “코로나19로 장사도 안 되니 미뤄왔는데 재난지원금으로 맞으려고 한다”고 했다.

재난지원금 이용 인구가 상권에 유입되면서 10~30% 매출 상승을 경험한 곳도 있었다. 강남역 인근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 장모(30)씨는 “재난지원금 지급일부터 지난 주말까지 매출이 전주보다 20% 늘었다”고 했다. 같은 상권 지하상가 옷가게 22노브에서 일하는 직원 최모씨도 “매출을 확인해보니 전주 대비 30% 정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청량리시장과 광장시장은 분위기 엇갈려

시장에서도 재난지원금 홍보전이 한창이었다. 5월 19일 찾은 청량리청과물시장은 ‘재난지원금 사용 가능’이라는 문구가 적힌 흰색 A4 용지 안내문이 매장마다 일괄적으로 붙어 있었다. 안내문이 붙어 있지 않은 곳에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냐고 질문하니 “사용할 수 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재 청량리청과물시장 정식 매장 중 70~80%에서 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다.

이곳에선 노인 단골의 ‘통 큰 쇼핑’이 매출 상승에 기여했다. 유동 인구 수가 크게 늘진 않았지만, 기존 단골이 더 많은 양을 구매한다는 것이었다.

과일을 판매하는 김모(32)씨는 “지난 주말 매출이 전주보다 20%가량 늘었다”면서 “어르신이 주요 고객층인데 재난지원금 사용 방법을 물어보더라”고 설명했다. 농산물을 판매하는 김모(53)씨는 “재난지원금 사용 방법을 물어보면서 3000원어치를 사가던 고객들이 이젠 5000원어치를 사가는 식”이라고 했다.

반면 같은 시장이어도 재난지원금 특수를 누리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같은 날 점심시간에 찾은 광장시장은 호객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재난지원금 사용 가능’ 안내문을 붙여놓은 상점도 많지 않았다. 15분 동안 50여 곳의 상점을 지나친 후에야 하나를 찾았을 정도다. 광장시장 소재 은하상회 직원 김양님(40)씨는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사태 이후로 손님이 뚝 끊긴 상태”라면서 “재난지원금도 약발을 발휘하진 못하는 것 같다”라고 했다.

광장시장은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많은 곳으로 재난지원금 사용 고객이 많지 않다. 오세운 국선옻칠 대표는 “내가 파는 옻 공예품은 외국인 관광객이 사는 제품이라 재난지원금 효과가 없다”면서 “제로페이를 이용하는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도 결제가 가능하다고 홍보했는데 결제가 여태 한 건도 없었다”고 했다.

현금이나 계좌이체로만 거래하는 먹거리 노점이 많은 것도 한계다. 신용카드 충전 형태의 재난지원금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운숙 광장시장 상우회 상인총연합회 사무장은 “노점이 많은 시장 특성을 고려하면 재난지원금 혜택이 그리 크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곳에서 25년간 분식집을 운영한 이점숙(61)씨는 “먹거리 노점상들은 현금이나 계좌이체로 거래하는 것이 관습”이라면서 “우리 가게도 재난지원금은 취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