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결국 택시만 남았다. 가입자가 100만 명에 이르던 최후의 모빌리티(mobility) 스타트업 ‘풀러스’까지 사실상 ‘사업 정리’를 선언했다. 풀러스는 6월 19일 “2019년 3월 사회적 대타협으로 인한 카풀 이용 제한 및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유상 카풀 시장이 크게 축소됐고, 이에 전면 무상 서비스로 전환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자동차가 마차보다 빨라서는 안 된다’는 19세기 영국의 ‘붉은 깃발법’처럼, ‘어떤 모빌리티 혁신도 택시보다 빨라서는 안 된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운수법)’은 수호됐다. 한때 카풀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회사로 전환한 지 오래다. 법인택시 회사 9곳을 인수해 택시면허 900여 개를 확보한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T블루’ 등 가맹 택시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모빌리티 혁신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된 것은 2014년 10월 23일 미국의 모빌리티 플랫폼 우버(Uber)가 한국 시장에 우버엑스(UberX)를 정식으로 출시하면서다. 우버엑스는 차량을 보유한 일반인과 승객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승차 공유(ride sharing) 서비스다. 일반 택시보다 요금은 다소 비싸지만, 택시 잡기 힘든 혼잡 시간대에도 호출률이 높다는 점과 평점제에 기반한 친절한 서비스, 간편한 결제 방식 등의 장점을 내세워 빠른 속도로 이용자를 확보했다.
그러나 우버는 곧 택시 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2014년 11월 18일 서울 지역 택시기사 3000여 명은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우버가 택시면허 없이 ‘유사 콜택시 사업’을 하는 것은 현행법 위반이며, 택시 업계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토교통부는 우버가 여객운수업의 유상 운송 금지 조항을 위반하고 있다고 규정했고, 서울시는 우버 영업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우버 파파라치제도’까지 도입했다. 결국 우버는 정식 서비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한국 시장 철수를 선언했다. 국회는 여객운수법을 개정해 제2의 우버가 출현하는 것을 원천 봉쇄했다.
우버는 실패했지만, 우버가 보여준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했다. 버스와 지하철, 택시 같은 기존 대중교통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틈이 있다는 것. 승차 거부와 불친절한 택시기사에게 진력이 난 소비자들은 대안적 모빌리티에 기꺼이 좀 더 비싼 요금을 지불한다는 것까지. 가능성을 확인한 국내 모빌리티 스타트업들은 제도와 맞서지 않으면서,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15년 12월 등장한 콜버스는 승차 거부가 심한 심야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귀가하는 사람을 모아서 13인승 밴으로 이동하는 서비스를 제시했다.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전세버스 업체와 승객이 계약할 수 있도록 중개하고, 콜버스는 계약 업무를 대리하는 형태로 사업 모델을 구성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대형 법무법인에서 법률적 검토도 끝냈다.
택시 업계 반발에 모두 무용지물
정부도 처음엔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택시 업계가 또다시 들고 일어나며 수포로 돌아갔다. 서울시는 운행 지역을 강남 지역 3개 구로만 한정했고, ‘심야 교통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규제 완화’라는 명목으로 개정된 법은 기존 버스·택시 사업자만 콜버스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지방자치단체에 묶인 버스 업체는 신규 사업에 뛰어들 여력이 안 됐다. 택시 업계는 콜버스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고사 전략을 펼쳤다. 콜버스는 모빌리티를 포기하고, 전세버스 가격 비교 플랫폼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뒤이어 등장한 카풀 스타트업, 럭시와 풀러스 등은 여객운수법의 예외 조항을 파고든 모빌리티 서비스를 내놨다. 출퇴근 때 승용차를 함께 타는 경우에 한해 유상 운송을 허용한다는 것에 착안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5~11시, 오후 5시~오전 2시에만 서비스를 제공한 것. 문제는 럭시가 카카오모빌리티에 인수돼 카카오 카풀이 되고, 풀러스가 탄력근로제 확대에 맞춰 사실상의 이용 시간제한을 없애면서 불거졌다.
카카오 카풀이 크루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발표하자마자, 택시 업계는 대대적인 집단행동에 나섰다. 광화문광장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등에서 수만 명 규모 집회를 여는 한편, 총파업도 단행했다. 이 와중에 택시기사 3명이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부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통해 출퇴근 시간을 오전 7~9시, 오후 6~8시로 제한했고, 카풀 업계는 고사 수순을 밟았다.
타다는 11~15인승 승합차에 한해 운전자를 알선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에 따라 만들어진 승합차 호출 서비스였다. 카풀 문제가 일단락되고 나자, 택시 업계의 화살은 타다로 향했다. 타다는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국토부는 법령 해석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이재웅 쏘카 대표 등이 여객운수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기소했다.
법원이 타다에 대해 ‘불법이 아니다’는 판단을 내리자 국회는 법을 개정했다. 법원은 지난 2월 “전자적으로 이뤄진 쏘카와 타다 이용자의 계약은 원칙상 유효하고 임대차 설립 계약을 부정할 수 없어 초단기 승용차 렌트로 확정할 수 있다”며 “유상 여객 운송의 면허 없는 다인승 콜택시뿐 아니라 운송자 알선이 허용되는 승합차 임대차까지 처벌된다는 건 형법을 확대 해석하는 것으로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다음 달인 3월 타다 영업의 근거가 된 여객운수법의 예외 조항을 없애는 ‘타다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타다는 4월 10일 서비스 중단을 선언하고, 영업에 사용했던 중고 카니발 차량을 판매하고 있다.
택시 업계는 다음 목표로 카카오 모빌리티를 겨냥하고 있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택시면허를 확보하고 완전히 제도권 내에서 ‘카카오T블루’와 ‘카카오T벤티’라는 플랫폼 택시 영업을 하고 있다. 직영 택시 900여 대, 가맹 택시 5200여 대를 운영한다. 택시 업계는 5월 20일 ‘플랫폼 독점 시장 개선 방안’이라는 세미나를 열고 “카카오가 소속 택시 회사에만 콜을 몰아주고 있다”며 “시장 독점 지위를 활용해 택시 업계에 불리한 가맹 계약을 하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T블루 등은 6년 전 우버와 마찬가지로 요금은 좀 더 비싸지만, 승차 거부가 없고 서비스 품질도 기존 택시에 비해 낫다”며 “택시 업계가 두려워하는 것은 ‘더 나은 서비스’에 소비자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