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총리관저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아베 신조(왼쪽) 일본 총리. 사진 연합뉴스
도쿄 총리관저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아베 신조(왼쪽) 일본 총리. 사진 연합뉴스

아베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 일본 주요 언론들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재집권 이후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아사히신문이 6월 20~21일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31%였다. 5월 집계 지지율인 29%보다는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재집권 당시(59%)의 반 토막 수준이다. NHK나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했다. 아베 정권의 위기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지지율이 위험 수준까지 하락하면서 자민당 내부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아베가 흔들리자 예비 후임자들의 물밑작업이 시작되고 있다. 아직 임기가 1년 넘게 남았지만 아베 총리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9%가 아베의 4연임을 반대한다고 답했다.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하락한 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응 미흡과 올해 초 논란이 된 ‘검찰청법 개정안’, 구로카와 검사장의 ‘내기 마작’ 사건 때문이다.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아베노마스쿠(일본어로 ‘아베의 마스크’라는 뜻)’는 아베 내각의 미흡한 대처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고, 일본 전역에 내린 긴급사태를 서둘러 해제한 것도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많다. ‘내기 마작으로 사직한 구로카와 전 검사장에 대한 처분’에 대해서도 일본 국민의 62%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의 의도대로 정책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일례로 5월 ‘검찰청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는 1000만 명이 넘는 일본 국민이 트위터 시위에 동참해 아베 총리의 개정안을 좌절시키기도 했다. ‘#검찰청법 개정안에 항의합니다’라는 태그를 다는 트위터 시위에는 기존 일본 정서와는 다르게 연예인, 연출가, 만화가 등 유명인사들까지 공개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아베 총리는 “국민의 이해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라며 개정안 보류를 결정했다.

아베 내각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경제 살리기만 한 전략도 없다. 하지만 믿었던 도쿄올림픽마저 연기되고 이제는 취소 위기까지 맞고 있다. 일본 내부에서도 아베 내각이 기댈 구석은 ‘아베노믹스’뿐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아베 내각의 정치적 입지가 점차 좁아지면서 추진력을 얻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2021년 9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만큼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 회생에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되찾겠다는 아베 내각의 야심 찬 경제 정책은 ‘세 개의 화살’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일본의 한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화살 한 개는 쉽게 부러지지만 세 개를 한꺼번에 부러뜨리는 것은 어렵다’는 이야기에서 가져온 말이다. 제1의 화살은 ‘대담한 금융 완화’, 제2의 화살은 ‘기동적인 재정 정책’, 제3의 화살은 ‘민간 투자 유도를 통한 성장 정책’을 말한다.

큰 맥락에서 아베노믹스의 ‘세 개의 화살’은 모두 엔화 가치 하락(엔저)에 따른 이점을 노리기 위한 정책이었다. 제1의 화살은 은행의 대규모 금융 완화로 엔화 가치를 낮춰 글로벌 시장에서 수출 기업들의 실적을 높였다. 뒤이어 제2의 화살로 공공 사업 등을 통한 정부의 대규모 자금 풀기가 이어졌다. 제3의 화살로는 규제 완화로 대외 직접 투자 등 민간 투자를 촉진하면서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정책들이 등장했다.

아베노믹스 출범 초기에는 엔저 목표를 달성하며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은행과 정부의 양적, 질적 통화 완화로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일본 증시가 상승세를 탔다. 일본 정부와 은행은 자금 공급량을 늘리고 초저금리를 유지하면서도 일본 국채를 꾸준히 매입했다. 과감한 금융 완화로 엔저를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엔저 호황이 경제 성장 흐름까지 타지는 못했다. 한·일 경제 갈등과 미·중 무역 분쟁 등으로 일본의 수출 시장 형편은 악화일로다. 또 무리한 통화 완화의 부작용으로 일본 정부의 부채 비율은 240%에 달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의 습격으로 일본 경제의 주축이었던 엔저 신화가 막을 내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5월 13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JP모건은 코로나19로 일본의 엔저 시대가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19로 기업 상황이 악화하면서 일본 기업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 등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저유가를 중심으로 한 일본 내 저물가 흐름 역시 엔화 가치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긴급사태 해제와 함께 공격적인 확대 재정

아베 내각은 5월 25일 전국에 내려졌던 긴급사태를 완전히 해제했다. 긴급사태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일본 국민은 업무 및 식료품 구입을 제외하고는 외출을 자제해야 했고 다중이용시설 사용 등이 중지됐다. 긴급사태 해제가 성급한 것 아니냐는 우려에도 아베 내각은 경기 회복을 위해 긴급사태 해제 결정을 했다. 교도통신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47.2%의 일본 국민이 ‘긴급사태 완전 해제’에 대해 ‘너무 빠르다’고 답했다. 어느 정도 반발을 감수하고라도 긴급사태 해제를 선택한 것이다.

긴급사태 해제와 함께 경기 정상화를 위한 공격적인 돈 풀기도 이어지고 있다. 3월 1차 추경안에서도 117조엔(1321조3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확정했고 1차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같은 수준인 117조엔의 2차 추경안을 편성했다. 6월 12일 추경안은 참의원 본회의를 통과해 가결됐다.

1차 추경안이 재난지원금과 같은 전 국민 대상 지원에 집중했다면 2차 추경안은 대기업을 포함한 기업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임대료 지원책이나 고용 안정을 위한 보조금 인상과 의료 종사자 지원, 지자체 교부금 등이 포함돼 있다.

일본 와세다대학 금융연구센터 고문인 히토쓰바시대학 노구치 유키오 명예교수는 일본 주간지인 ‘현대비즈니스(現代 ビジネス)’의 기고문에서 “일본 정부가 경제 문제에 올바른 판단이 가능한지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일본 정부의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구치 교수는 “평상시라면 경제 메커니즘으로 회복되겠지만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비상시국에는 정부가 경제 활동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경제 회복을 위해 “노동력과 자원을 적재적소에 투입하고 무너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만 한다”라고 당부했다.

오민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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