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2월 1일부터 2014년 5월까지 26년이 넘는 기간 삼성그룹을 경영해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0월 25일 별세했다. 1987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그룹 총수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바꾼 2018년까지 삼성그룹의 매출은 39배, 자산은 10조4000억원에서 878조3000억원으로 84.5배, 임직원은 약 10만 명에서 전 세계 52만여 명으로 약 5배 증가했다. 놀라운 외형 성장보다 중요한 사실은 삼성그룹의 주력 산업이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혁명적으로 전환된 점이다. 삼성그룹은 세계 1등 상품이 하나도 없다가 20여 개의 상품에서 세계 1위인 첨단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경영 성과를 넘어 이건희 회장의 성공은 대한민국의 성공과 자부심을 상징한다. 이 기간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국가에서 3만달러 국가로 성장하며 명실상부하게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했다. 최근 미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불평등의 긍정적인 면(The upside of inequality)’에서 저자 에드워드 코나드는 장기간 지속적으로 성장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은 일본, 대만과 함께 역사상 특별한 예외적 기적이라 했다.
그 기적의 첨단에 삼성이 있었으며 반일(反日) 콤플렉스에서 극일의 자부심을 심은 것도 삼성이다. 삼성은 일본의 성공을 대표하던 소니와 대부분의 전자 산업에서 일본을 제치고 한국을 최첨단 산업의 메카로 인식하게 했다. 전 세계 대도시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설치된 TV 속 선명한 삼성 로고는 국민적 자긍심을 상징해왔다.
오랜 시간 준비한 글로벌 경영자
경영학 연구들은 성공한 초대 창업가들의 후손들이 창업가에 상응하는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이러한 일반적 현상의 예외적인 존재다.
우선 이건희 회장은 형제들과의 경쟁과 이병철 초대 회장의 교육을 통해 오랫동안 준비된 경영자였다. 이병철 회장이 도쿄 구상을 할 때면 이건희 회장에게 도쿄와 일본의 발전 방향을 보여주며 변화의 흐름과 업의 본질을 교육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오너들이 자식을 어린 시절부터 조기 교육하고 테스트하는 것은 독일 히든 챔피언 기업들의 성공 요인이기도 하다.
이건희 회장은 글로벌 경험과 글로벌 시장에 대한 야먕을 강하게 추구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은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가장 크고 성공적이며 선진적인 경제를 운영하는 국가에서 훈련을 받으며 재벌 창업 1세대와 달리 글로벌 역량을 갖췄다.
기업 성과는 기업가의 비전과 야망의 크기에 따라 좌우된다. 기업가의 꿈의 크기와 리더십의 차이가 만드는 기적이다. 이병철 회장이 내건 제일주의라는 야성을 바탕으로 국내에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했다. 대부분의 대기업, 재벌들도 삼성과 같이 글로벌 시장을 향해 돌진했다. 사실 세계 경영을 내걸고 해외 시장에 더 중점을 둔 것은 대우그룹의 고 김우중 회장이었다. 그렇다면 삼성을 만든 이건희 리더십의 어떤 차별점이 삼성의 성공을 이끌었을까.
그것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에 필수적인 품질 경영과 디자인 경영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신경영이다. 저임금 노동력을 기반으로 가성비를 앞세우는 양(量)과 질(質) 그리고 명품으로 인정받는 격(格)이 있는 제품을 만들 역량을 구축한 것이 삼성이 오늘날과 같은 수익성 높은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인재 경영과 철저한 관리의 승리
이러한 혁신을 주장하지 않는 경영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삼성만 이건희 회장의 “자식과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자”는 혁신이 실천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이병철 회장의 경영 철학인 인재 경영과 관리의 삼성을 철저히 승계하고 심화한 결과라는 것이 삼성 전문경영진의 의견이다.
이건희 회장은 천재 한 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인재 욕심을 숨긴 적이 없다. “믿지 않으면 맡기지 않고, 일을 맡겼으면 믿고 일을 시켜야 한다”는 이병철 창업가의 인재 경영은 잘 출근하지 않는 이건희 회장에 의해 한국의 어떤 기업보다 임직원에게 위임과 큰 재량권을 주는 경영으로 실천됐다.
이건희 회장이 어린 시절 친구 없이 자란 배경도 이러한 신뢰에 의한 ‘은둔 경영의 배경’이 된 것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위임과 더 큰 재량권은 이에 상응하는 신상필벌의 관리제도에 의해 조직이 이완되거나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는 ‘메기 효과’를 통해 책임 경영으로 실현됐다. 이는 오너가 중요한 결정을 하고 전문경영인들의 책임 경영을 독려하는 이상적 조합의 사례다. 미국의 포드 가문, 일본의 도요다 가문,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 등이 대를 이어 성공적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경영인의 배출이나 훈련 그리고 전문경영인 시장이 잘 발달하지 않은 우리 기업 역사에서 섣부른 경영과 소유의 분리나 전문경영인의 경영만이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10년 후 먹거리에 대한 끝없는 질문
이건희 회장은 기업의 단기적 경영을 전문경영인들에게 완전히 위임하고, 언제나 철저한 미래 지향적 준비에 몰두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경영인들에게 늘 5~10년 후 모습과 핵심 인재 영입 여부를 질문하기도 했다.
또 이건희 회장은 삼성 스포츠를 사랑했고, 그래서 비인기 종목 스포츠의 든든한 후원 기업이 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우리나라의 올림픽 유치와 스포츠 외교에 큰 공을 남겼다. 결국 이건희 회장의 선택인 승마 지원이 삼성이 이른바 ‘정유라 사건’에 연루되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글로벌 스탠더드 이탈한 규제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은 단기적으로 진행되는 최고경영자에 대한 사법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고 정치·사회적 압력으로부터 삼성을 지켜야 하느냐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법 리스크는 크게 보면 우리 사회의 반기업, 반재벌 정서와 정치의 산물이다.
한국의 재벌들이 사법적 위협에 시달리는 주요한 원인은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경영권 세습을 부인하는 약탈적 상속세에 기인한다. 상속세가 없거나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이 허용되는 나라에서는 할 필요가 없는 소위 ‘편법 상속’을 하지 않고는 경영권 승계가 쉽지 않다. 다른 나라에서는 처벌하지 않는 계열사 지원을 배임죄로 처벌하는 등,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벗어난 기업에 대한 처벌과 사법 당국의 자의적인 법 해석이 근본 원인이다.
경제를 자본가의 착취 구조로 보고 노조의 조직화한 노동자 경영 참여를 추구했던 독일의 조직자본주의가 경제민주화라는 사이비 이론으로 둔갑했다. 이어 재벌 총수들을 ‘기업 범죄의 몸통’으로 인식하는 전근대적이고 적대적인 기업관을 가진 정권이 등장했다.
그들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크게 이탈한 반기업 규제법안들을 공정경제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우리 대기업들에 칼을 겨누고 있다. 기업가가 투자 의욕을 잃고, 기업이 야성을 잃고, 시장 경쟁이 아니라 규제 대응에 전전긍긍하면 기업도, 국가 경제도 활력을 잃는다.
그것은 최근 대두하는 국가주의, 전체주의 국가나 남미형 인기 영합처럼 ‘종이호랑이’로 망하는 길이다. 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개발경제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 교수가 역설하는 역사의 교훈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우리 사회가 그런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징조의 하나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의 근본적인 도전은 이러한 정치·사회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성공 DNA를 유지·확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잃어버린 30년 갈림길 선 한국 경제
이재용 부회장 등 우리의 3세 경영자들은 선대보다 더 깊은 글로벌 경험과 교육과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간 이병철, 이건희 회장의 경영 과정에서 구축된 조직과 관리 체제가 이들의 부족함을 보완할 것이다. 빠른 모방자에서 새로운 제품과 시장을 정의하는 파괴적 혁신 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는 삼성의 지속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으로 빠지지 않을 것인가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물론 한국 사회가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의 주술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자식은 재벌 기업에 취업하기를 바라면서 재벌 저주와 비난이 깨인 자인 줄로 아는 위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이재용의 삼성이 계속 발전하고, 한국이 부활할 수 있다. 삼가 시대의 영웅 이건희 회장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