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체르마트의 한 스키 리조트에서 스키어들이 스키를 타고 있다. 유럽연합(EU) 소속이 아닌 스위스는 스키장 ‘완전 개장’을 선언했다. 사진 AFP연합
스위스 체르마트의 한 스키 리조트에서 스키어들이 스키를 타고 있다. 유럽연합(EU) 소속이 아닌 스위스는 스키장 ‘완전 개장’을 선언했다. 사진 AFP연합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스키장 폐쇄’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폐쇄를 주장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스키장발(發) 코로나19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과 “경제·고용 상황부터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이 충돌하고 있다. 유럽의 스키장 수는 3777개로, 매년 340억유로(약 45조2200억원) 규모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11월 26일(이하 현지시각) 베를린 연방하원 연설에서 “유럽 전역 스키장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키어들의 이동으로 발생하는 국경 간 감염을 막아야 한다”며 “EU 국가들이 동참해달라”고 요구했다.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주(洲) 주지사도 연방하원에서 “EU 국가들이 스키장 폐쇄에 합의해야 한다”면서 “스키를 탄 사람들은 10일간 격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나섰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코로나19 확산세가 멈추지 않자, 스키장 폐쇄를 주장했다. 11월 26일까지 코로나19로 인한 독일의 누적 사망자는 1만5000명을 넘었다. 독일은 11월 2일부터 4주간 술집과 레스토랑, 레저 시설의 문을 닫는 ‘부분 봉쇄’에 들어갔지만, 재확산이 이어지자 부분 봉쇄 기한을 12월 20일로 연장했다. 메르켈 총리는 “크리스마스 후 다시 부분 봉쇄를 펴 내년까지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고, 독일 정부 대변인은 3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키장은 앞선 3월 코로나19 1차 확산 시기에도 ‘유럽의 코로나19 최대 진원지’로 지목된 바 있다. 오스트리아 서쪽 티롤주에 있는 스키 리조트 이쉬글(Ischgl)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6000여 명이 집단감염됐다. 당시 스키장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리조트 내 술집에서 새벽까지 파티를 즐기고, 이후 방역수칙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바이러스는 유럽 내 45개국으로 전파됐다. 오스트리아의 소비자 권리단체 ‘VSV’는 이쉬글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오스트리아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며 4개의 민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일부 EU 국가는 스키장 폐쇄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연휴 때까지 스키장 재개장을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프랑스 정부는 리조트 내 상점 영업만 허용하고, 리프트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도 자국민에게 “크리스마스 연휴 때 EU의 스키장에 인파가 몰리는 것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연간 110억유로(약 14조5460억원)의 수익을 내는 스키 산업 대신 방역을 택한 셈이다.

스키장 폐쇄 주장에 오스트리아는 곧바로 반발하고 나섰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스키 관광은 국가 정체성의 일부”라며 “스키장 개장 여부는 EU가 개입할 영역이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게르노트 블뤼멜 오스트리아 재경부 장관도 “스키장 폐쇄 시 최대 20억유로(약 2조6000억원) 손실이 예상된다”며 “폐쇄 조치가 이뤄지면 EU가 경제적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오스트리아는 스키장을 폐쇄할 경우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오스트리아 경제연구소(WIFO)에 따르면, 인기 스키장이 많은 오스트리아 서쪽 지역은 2018~2019년 겨울철 관광업으로 149억유로(약 19조7200억원)의 수익을 냈다. 스키장 산업이 주춤할 경우, 국가의 전체 국내총생산(GDP)은 무려 1.5%포인트 감소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스키장을 폐쇄할 경우, 매주 8억유로(약 1조580억원)의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스페인 카탈루냐주의 리조트들은 이동 제한이 풀리는 12월 21일부터 개장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불가리아 내 주요 리조트들도 “개장을 취소할 이유가 없다”며 강행을 예고했다. 스키 업계 관계자는 “유럽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일으킨 주범은 스키가 아니라 스키가 끝나고 열리는 파티”라고 선을 그었다.


유럽의 스키장이 모두 폐쇄되면 경제적 손실과 고용 쇼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진 블룸버그
유럽의 스키장이 모두 폐쇄되면 경제적 손실과 고용 쇼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진 블룸버그
오스트리아 압테나우에 위치한 스키 리조트. 사진 AFP연합
오스트리아 압테나우에 위치한 스키 리조트. 사진 AFP연합

EU 스키장 폐쇄 합의 순탄치 않을 듯

당장 일자리를 잃게 생긴 스키업 종사자들의 ‘고용 쇼크’도 문제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프랑스의 스키 리조트는 겨울에 12만 명을 임시로 고용하고, 이탈리아는 스키강사, 호텔리어, 식당 주인 등으로 약 40만 명을 고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진원지’로 불리던 이쉬글이 위치한 오스트리아 티롤주 같은 경우, 스키업 종사자는 주 전체 일자리의 16.3%를 차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스키업에 직간접적으로 고용된 인구는 8%에 달한다. 오스트리아의 언론은 “스키장 폐쇄로 실업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

독일 내부에서도 스키장 폐쇄로 발생하는 경제 손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독일스키협회 DSV는 “독일 스키장이 몇 개월간 방역수칙을 잘 지켰으니 스키장 폐쇄 계획을 철회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독일스키강사협회는 죄더 주지사에게 공식 항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독일 남부지역의 발더슈방에서 스키학교를 운영하는 크네벨(Knebel·59)은 ‘이코노미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정부의 조치를 비판했다. 그는 “스키학교 측에선 감염률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는데 이번 폐쇄로 인해 다 물거품이 됐다”며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EU의 스키장 폐쇄 합의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U가 각 회원국의 스키 리조트를 강제로 폐쇄할 권한이나 중재할 책임 소재는 없기 때문이다. EU 비회원국인 스위스는 결국 스키장 완전 개장을 선택하며 ‘마이웨이’ 선언을 하기도 했다. 유럽 스키어들이 모이는 방역 사각지대가 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1월 30일 스키장 개장 여부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면서 스키장 내 감염 위험을 충분히 검토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WHO 긴급대응팀 책임자인 마크 라이언 박사는 “스키장 내 감염은 공항, 셔틀버스 그리고 리프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