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시작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에 따라 연초 기업들의 시무식 풍경은 ‘실종’됐다. 한국 경제호를 이끄는 대기업들은 영상, 이메일 등을 통해 총수들의 신년사를 전했다. 총수들의 메시지는 어느 때보다 강했다. 이들은 위기 극복에 머물지 말고 성장을 주도하라고 주문했다. 총수들은 ‘신사업과 기존 역량 강화를 통한 도약’ ‘사회적 책임’ ‘고객 감동’을 키워드로 내세우며 판을 바꾸는 게임체인저가 되자고 했다.


“미래 먹거리, 성장 역량 강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첫 업무일인 1월 4일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고, 대신 경기도 평택에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찾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새해를 맞아 새로운 삼성으로 도약하자”며 “삼성전자와 협력사, 학계, 연구기관이 협력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에서도 신화를 만들자”고 했다. 파운드리는 비메모리 반도체 영역의 하나로, 삼성이 이미 세계 1위인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주력사업으로 키우는 신성장동력이다. 이 부회장은 2019년 4월 133조원을 투자해 2030년까지 메모리 반도체뿐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앞서 이 부 회장이 언급한 ‘진정한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함)’를 위해선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대만의 TSMC를 넘어서는 게 관건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메일 신년사에서 “‘신성장동력으로의 대전환’을 이루자”고 주문했다. 그는 “올해를 미래 성장을 가름 짓는 중요한 변곡점으로 삼아야 한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변화를 미리 준비한 기업만 생존할 수 있고, 우리는 새 시대의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회장은 친환경과 신기술, 사업 경쟁력 성과를 강조하며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 기반의 신차,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로보틱스 등을 언급했다. 또 올해 출시될 수소연료전지 브랜드 ‘HTWO’를 모빌리티와 다양한 산업 분야 동력원으로 확대해 탄소중립 실현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GS 신년 모임’을 온라인으로 열고 “디지털 역량 강화와 친환경 경영으로 신사업 발굴에 매진해야 한다”며 “인공지능(AI), 데이터,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자”고 했다. “디지털 전환을 모든 사업에 확대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역량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유례없는 상황에 우리의 핵심 역량이 제 기능을 발휘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도 “축적한 역량을 바탕으로 지금껏 간과했던 위험 요소의 대비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신 회장은 이어 “주변 위험 요인에 위축되지 말고, 회사마다 가진 장점과 역량을 합쳐 그룹 시너지를 만드는 데 집중하자”며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된 자세와 경기회복을 주도하겠다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고객의 열망을 찾자”

고객 중심의 경영 강화 주문은 올해도 반복됐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신년 영상 메시지를 통해 2019년부터 강조해 온 ‘고객 가치 경영’ 메시지를 구체화했다. 그는 “고객이 감동하고 열광할 때까지는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집요함이 필요하다”며 “고객을 세밀히 이해하고, 고객 감동을 완성해, LG의 팬으로 만들자”고 했다. 그동안 고객의 ‘페인포인트(Pain-point·불편함 등 부정적 의견)’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이를 넘어 고객을 더 세밀히 이해하고 이들의 마음속 열망을 찾자는 이야기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신년 영상을 통해 “‘지지 않는 싸움을 하겠다’는 과거의 관성을 버리고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판을 바꾸는 대담한 사고를 해달라”며 “고객의 변화된 요구에 ‘광적인 집중’을 해서, 시장 경쟁 환경이 급격히 재편되는 때 최상의 기회를 절대 놓쳐선 안 된다”고 했다.


“사회적 책임, 새 기업가정신 필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메시지도 이어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2~3년은 산업 전반의 지형이 변화하는 불확실성의 시간이 될 것”이라며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위기 극복에 앞장서며 지속 가능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자”고 했다. 사회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지속 가능 경영을 글로벌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사람이든, 기업이든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며 “사회와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새로운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그는 “어려운 여건들이 우리의 행복 추구를 저해하지 못하도록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당부했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들이 위기를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모색하는 게 절실하게 느껴진 신년사”라고 했다.


Plus Point

5대 금융지주 회장 신년사
“빅테크 기업과 경쟁… 플랫폼 강화”

왼쪽부터 윤종규 KB금융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
왼쪽부터 윤종규 KB금융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

금융지주 회장들은 신년사에서 올해 위기상황 속에서 절박감을 표하며 생존전략으로 ‘디지털 혁신’을 내세웠다. 초저금리 시대 네이버, 카카오 등의 대형 기술기업과 핀테크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행보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금융 소비자 보호도 강조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고객 중심의 디지털 혁신으로 넘버원 금융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고객의 종합 자산 관리가 가능한 획기적인 금융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며 “자동차, 부동산, 헬스케어, 통신 등 비금융 플랫폼을 성장시켜 새로운 영역의 진출 기회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신한의 운명은 디지털 전환에 좌우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혁신을 위해 업의 경계를 뛰어넘는 일류 개방성이 필요하다”며 “핀테크·빅테크 등 다양한 기업과 협력하고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디지털 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에 나서자”고 덧붙였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플랫폼 금융은 손님 기반을 확대하는 최적의 도구”라며 “우리가 플랫폼 사업자의 상품 공급자로 전락하기 전에 다양한 생활 플랫폼과 제휴해 사업을 주도하는 생활금융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혁신적인 기술을 활용한 전사적 디지털 혁신으로 플랫폼을 혁신하고 디지털 넘버원 금융그룹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며 “그룹 내 비어 있는 비은행 부문에 대해 다방면으로 포트폴리오 확대를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지속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위기 속에서 성장하겠다는 것이다.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도 “농협금융만의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며 “빅테크·핀테크 기업 등과 제휴를 확대하고 오픈뱅킹, 마이데이터 등을 활용한 상생 사업 모델을 발굴해 사업 영역을 확장해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