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서울대 의과대, 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미국 하버드의대 연수 /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의 뇌 단면이 비친 모니터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 서울대병원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서울대 의과대, 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미국 하버드의대 연수 /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의 뇌 단면이 비친 모니터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 서울대병원

불안하거나 우울감, 혹은 강박감을 느끼는 사람의 상당수는 이를 단지 ‘기분 탓’이라고 막연하게 여기고 방치한다. 일상에서 이러한 기분이 지속해서 반복되거나 생활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까지 도달한다면 이는 질병이자,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관장하는 뇌(腦) 상태의 변화다. “정신질환은 마음의 병이자, 뇌의 병”이라고 말하는 의사가 있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다. ‘조선비즈’는 7월 8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병원에서 권 교수를 만났다. 그는 “기분이 우울하다던지 불안하다는 등 겉으로 보이는 정신 현상과 뇌의 변화는 동시에 일어나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라며 “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고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한다면 정신질환을 극복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이어 “사람은 누구나 때로는 우울하거나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라며 “그런데 평소 감정보다 더 우울하거나, 수면 및 식습관 변화, 무가치함 등을 느껴 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면 반드시 병원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권 교수가 정신질환을 뇌과학과 연계시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96년 미국 하버드의대 정신과에서 연수를 하면서부터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의 뇌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착안, 조현병 환자의 뇌를 뇌파와 뇌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분석했다. 이후 그는 정보 전달에 핵심 기능을 하는 ‘감마(γ)파’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고, 국제학회에서도 발표했다.

그는 귀국해서도 MRI, 양전자 방사 단층 촬영(PET) 등 뇌영상술을 이용해 정신질환 기전이나 치료에 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뇌영상을 이용해 정신질환자 뇌의 구조적, 기능적 이상을 밝히는 연구와 정신질환 고위험군의 예방적 치료에 기여한 바를 높이 평가받아 2013년 ‘제6회 아산의학상’을 받았다.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정신질환 ‘우울증’

한국인에게서 가장 흔하게 발병하는 정신질환은 우울증이다.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우울증 유병률(병에 걸릴 확률)은 36.8%로 OECD 국가 국민 중 1위다. 우울증 환자들은 뇌 기능도 우울하다. 권 교수는 “우울증 환자들의 양전자 단층 촬영(FDG-PET)을 보면 뇌 전반에 걸쳐 포도당 대사가 감소해 있다”라며 “뇌도 우울한 상태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조현병 환자의 경우에는 전두엽 기능이 위축돼 있다. 그는 “뇌 MRI로 조현병 환자의 각 부위 용적을 측정해보면 측두엽, 전두엽, 해마, 편도 등이 정상인보다 축소돼 있다”라고 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도 1위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간한 ‘2021 자살 예방 백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6.9명으로 전년 대비 0.2명 증가했다.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우울증은 자살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 환자는 일반인보다 자살 위험이 약 4배 높다. 권 교수는 “자살 시도자의 80% 이상이 우울증이며 나머지가 조현병을 비롯한 그 밖의 정신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라며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서는 조기에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강박증과 조현병 치료의 권위자다. 지난 1998년 국내 최초로 ‘강박증클리닉’을 개설했다. 많은 사람이 강박증을 단순한 성격 문제로 가볍게 여긴다. 그는 강박증을 ‘뇌의 딸꾹질’이라고 비유한다. 강박증이 생기면 의지와 상관없이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특정 행동을 반복한다. 손톱을 자주 뜯거나, 손을 자주 씻거나, 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는 “내가 나를 피곤하게 하는 것이 쉽게 말해 바로 강박증”이라고 정의했다.

권 교수는 2011년에는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을 ‘조현병(調絃病·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는 뜻)’으로 바꾸는 데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신의 부조화를 현악기의 줄을 맞추듯 치료하면 정상 생활이 가능함을 알리고자 해서 조현병이라 명명했다. 권 교수는 “현악기의 줄이 적절한 음을 내기 위해서는 조율이 잘돼야 한다”면서 “우리의 뇌도 적절한 사고나 감정을 가지기 위해 신경세포 연결이 적절해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에서 명칭을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정신질환 환자 입원’ 관련 규정을 담은 개정 법안이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다. 권 교수는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의 경우 초기 집중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현재의 정신건강복지법 재점검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2017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 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된 이후, 의사가 치료를 더 받아야 한다고 판단하더라도 환자 본인이 원하면 즉시 퇴원시켜야 한다.

권 교수는 “입원 요건이 강화됨에 따라 정작 퇴원이 필요한 환자는 사회에 인프라가 부족해서 퇴원을 못 하고, 응급으로 입원을 해야 하는 급성기 환자는 치료가 적시에 이뤄지지 않아 질병이 악화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급성기 환자는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하고, 재활이 필요한 환자는 지역사회에서 재활을 활발히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조속히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정신질환도 조기 발견 및 치료가 최선”

정신질환은 치료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조기에 치료한다면 완치도 가능하다. 당뇨 등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도 늦게 발견돼 병원에 오거나 치료 도중 약을 끊어 재발하는 경우, 치료가 더 어려워진다. 결국 조기 발견 및 치료가 최선의 치료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 교수는 “현대 의학은 ‘4P’를 중요하게 본다”면서 “정신질환도 가장 최선의 치료는 ‘예방’이며, 일찍 발견해 치료하면 얼마든 정상적 사회생활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4P란 ‘예측(prediction), 예방(pre-vention), 정밀(precision), 참여(participa-tion)’다. 그는 “정신질환 전 단계에 있는 ‘고위험군’을 찾아내 발병 전 미리 예방 치료를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과거보다는 많이 좋아졌다”면서도 “아직도 병원 찾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사회에서 낙오자가 될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신질환을 앓는데도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은 약 22%에 불과하다”면서 “정신질환은 특별한 사람이 걸리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뇌의 질환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민 8명 중 1명은 정신질환에 걸렸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는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기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권 교수는 “이러한 시기일수록 규칙적인 생활, 운동 등을 계속해야 한다”면서 “조급한 마음을 비우고, 복잡한 생활을 잠시 쉬어간다고 생각하고 책도 읽고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도움 될 것”이라고 했다.

장윤서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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