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작은 사진은 그의 첫 소설 ‘대통령 정약용’. 사진 조선일보 DB·행복한북클럽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작은 사진은 그의 첫 소설 ‘대통령 정약용’. 사진 조선일보 DB·행복한북클럽

미래와 혁신을 위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현 한양대 특훈 교수)이 집요하게 던져 온 질문이다. 그는 제15회 기술고등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후, KT 상임이사,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정보통신진흥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정책, 강연, 저술로 이 질문에 답하려 노력했다.

그가 이번엔 소설을 썼다. 지난 7월 출간된 ‘대통령 정약용(행복한북클럽)’은 ‘후츠파로 일어서라(2013)’ ‘이매지노베이션(2015)’ 등 혁신을 주제로 한 그의 일곱 번째 책이자 소설 데뷔작이다. 소설은 1818년 다산(茶山) 정약용이 해배(解配⋅귀양을 풀어 줌) 도중, 2022년 대한민국으로 시공간을 이동해, 제20대 대통령으로 추대된다는 내용이다.

윤 전 차관은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원료를 제품으로 만드는 하드 파워의 힘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면서 “이제 상상을 혁신으로 만드는 소프트 파워가 필요하다. 그게 환생한 다산이 말하는 ‘21세기 실학’”이라고 말했다. 8월 말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에서 윤 전 차관을 만났다. ‘대통령 정약용’이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왜 다산인가
“내게 다산에 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는 해남 윤씨 집안의 집성촌이자 다산이 유배되었던 초당마을에서 태어났다. 고시에 합격한 후 사무관으로 부임하기 전, 다산의 ‘목민심서’를 독파했다. 무엇보다 대선 때마다 반복되는 우리 사회의 분열이 우려스러웠다. 2년 전부터 2022년 대선을 상상하며 다산 어른을 모셔와 21세기에 맞는 새 리더십을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정작 다산은 중앙 정치 무대에 복귀하지 못했다
“정조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 조선이 당쟁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정조 반대파(노론⋅벽파)들만의 세상에서 복귀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현재 남북 분단도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당쟁이 원인이다. 세도가들은 내부 싸움에만 몰두하고 급변하는 정세에는 어두웠다.”

1800년대 인물이 현대로 오는 설정이다. 서술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맞다. 하지만 다산은 ‘조선의 다빈치’ 아닌가. 그는 수원 화성 축성에 소요되는 13년 공사 기간을 불과 3년으로 단축하기도 했다. 서양 과학 문물에 대한 그의 해박한 이해도와 열린 마음을 상상하니, 한결 수월하고 과감하게 그를 현대 사회로 끌어올 수 있었다.”

환생한 대통령 정약용은 대한민국 정치 수준을 비판하며 근시안적이라고 말한다
“경제가 빛의 속도로 변하는데 정치라는 차를 모는 운전자는 겨우 전방 10m만 본다는 뜻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유물이 모든 상황을 단정 짓고 비생산적 담론을 만들어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산에게는 21세기 후손들이 디지털 지구(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이 300㎞로 달리는 철마(KTX)보다 더 놀라운 것이다. 왜 그렇게 그렸나
“두 발을 땅에 딛는 물리적 지구가 아닌 디지털 지구는 200년 전 다산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 다산은 디지털 지구의 중요성을 깨닫고 헌법 제3조에 사이버 영토 조항을 넣자고 주장한다. 물리적 영토의 수호가 지금까지의 국방이었다면, 이제는 사이버 영토와 우주 공간까지 국방의 범위를 확장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다산의 경제 정책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창의 계급이 혁신 기업을 열성적으로 만들어 내도록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1624년 영국은 최초의 특허 조례를 만들어 창의적 지식을 보호해 준 덕에 프랑스를 앞질러 산업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다. 사업 초창기에는 아예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제도, 다국적 창업가를 지원해주는 스타트업 비자, 이스라엘처럼 스타트업의 메카로 진화하는 엘리트 군부대 운영 등을 모두 고려해 봐야 한다.”

최근 공정, 기본 소득 등이 정치권 화두인데, 이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다
“사실 디지털 경제에서는 소수의 계급에 부(富)가 집중된다. 창의 계급이 아닌 대다수에게는 부를 일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 소설 속 다산이 부를 사회에 명예롭게 환원하는 ‘황금벽돌’ 제도를 만들자고 하는 이유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이미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기본소득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분배 체계가 될 수도 있다.”

드라마 제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쩐의 전쟁’ ‘대물’ 제작사인 빅토리콘텐츠와 계약으로 드라마 대본을 완성해 가는 단계다. 오는 11월 대선 후보가 확정되는 직후 방송될 것으로 보인다. 다산역을 맡을 주연 배우에게도 이미 책이 전해진 상태다.”

소설에는 다산의 등장으로 세계의 중심 무대가 한반도로 이동한다. ‘팍스 코리아나’라는 단어도 등장한다.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대한민국은 지구 면적의 0.07%, 세계 인구의 0.7%에 더불어 전무한 천연자원으로 불과 50년 만에 10위권 경제를 만든 경험이 있다. 다행히 디지털 지구라는 또 하나의 지구는 국경이 없으며 한국은 세계 최고의 비옥한 디지털 토양을 갖추고 있다. 국민 평균 IQ도 107로 세계 1위다.”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정책 자문 등으로 연락이 왔나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후보 캠프 3~4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나는 소설에서 21세기 극심한 당파 싸움의 와중에 다산을 모셔왔고 다산 어른은 기존 정치에 물들지 않은 18명의 청년과 대한민국을 위한 해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캠프 참여로 책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네거티브 공세가 심해지고 있다.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이 정쟁을 멈출 수 있을까
“양당의 극한 대립과 정책 단절을 일으킨 5년 단임의 대통령 중심제를 끝낼 때도 됐다. 우리나라 정치 시스템도 의원내각제로 바꾸고 과학이나 예술처럼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 미래를 바라본다면 네거티브할 이유가 없다.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에 매몰돼 ‘백미러’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서로 싸우는 것이다.”


plus point

책 ‘다산(多産)’한 다산(茶山)

“나는 다산이 18년간 영어(囹圄)의 몸으로 쓴 책 509권 중 232권이 경학(經學)이라는 데 주목한다. 주자학이 크게 유행한 조선 사회에서 경전 해석은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다산은 4서6경에 대해 과감하게 주석을 달았다.”

‘대통령 정약용’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사의제’ ‘술지’ ‘맹자요의’ ‘경세유표’ ‘논어고금주’ 등 다산이 남긴 저서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점이다. 윤종록 전 차관은 이번 소설을 쓰기 위해 20여 권의 다산 관련 책을 읽었다.

그가 추천하는 책 중 하나가 ‘다산학 공부(박석무 외 지음)’다. 이 책에는 국내외 경학 연구를 비판적으로 수용해 독자적인 견해를 제시한 다산의 방대한 저술 업적이 정리돼 있다. 가령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것이 재(才)이며, 선하기 어렵고 악하기 쉬운 것이 세(勢)이며, 선을 즐기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성(性)이니, 이 성을 따르면 도(道)에 이를 수 있다”는 다산의 결론은 성리학과 다르다는 것이다.

윤 전 차관은 다산의 생가는 매월 한 번씩, 유배지는 1년에 네 번 정도씩 간다고 했다. 그는 “포항의 장기 유배지, 천진암, 배론 성지, 만덕산의 백련사와 강진의 사의재와 고성사 등을 다니며 다산의 정신과 체취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류현정 조선일보 디지털기획팀장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