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 / 사진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 / 사진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2019년 7월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이하 베링거)이 한국 바이오 스타트업의 특발성 폐섬유증 신약후보 물질을 최대 1조5680억원(11억4500만유로) 규모로 기술이전(수입)했다.

직원이 20명도 되지 않는 창업 4년 차 스타트업이 600억원대 투자금으로 개발한 신약후보 물질이 조(兆) 단위 수출에 성공하자, 국내 전 언론이 주목했다. 코스닥 상장에 두 번 실패한 회사의 성공을 두고 ‘코스닥 삼수생의 업(業)생 역전’이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1년여 만인 지난해 11월 베링거가 기술을 반환했다. ‘잠재적 독성’이 이유였다. 주당 2만1200원이던 주가는 8100원까지 떨어졌다. 시장에 비관론이 가득했지만, 회사는 자체 분석 후 직접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1년. 이 회사를 이끄는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이하 브릿지바이오) 대표를 10월 15일 경기도 판교 본사에서 만났다. 서울대 화학과 87학번인 이 대표는 LG화학 연구기획⋅사업개발부로 입사한 후 이 분야 한 우물을 팠다. 그는 1999년 LG화학이 국내 최초 FDA 신약 승인 신청에 성공했던 ‘팩티브(Factive)’ 프로젝트 책임자였다.

브릿지바이오 주가는 10월 현재 1만1000~1만3000원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 대표는 주가 얘기가 나오자 “(폐섬유증 신약으로) 최근 FDA에 면담을 신청해 임상 설계를 보완하라는 회신을 받았다”며 “내년엔 임상 2상 승인을 받아 안전성과 효력을 입증받겠다”고 했다. 그는 “경쟁 약물을 개발하던 회사(갈라파고스)가 임상을 중단하면서 뒤처져 있던 우리가 선두(First-in-class) 후보 물질로 올라섰다”고도 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가 경기도 판교 본사 연구실에서 신약후보 물질 임상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명지 기자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가 경기도 판교 본사 연구실에서 신약후보 물질 임상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명지 기자

특발성 폐섬유증 신약후보 물질(BBT-877)로 미국 FDA에 면담을 신청해 회신을 받았다고 들었다. 어떤 답변이 왔나.
“우리 자체 실험은 물론 제3의 기관에 의뢰한 분석 결과 (베링거 측이 주장한) 잠재적 독성은 DNA 손상이 아니라 임상 과정에서 약물을 고농도로 처리한 데 따른 이상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FDA에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면담(C타입 미팅)을 요청했고, 얼마 전 ‘임상 2상 설계를 보완하라’는 답을 받았다.”

‘보완하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어떤 뜻인가.
“FDA에서는 우리 후보 물질이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에 쓰이는 표준 의약품과 충돌하지 않는지 등을 더 확인해보라고 했다. 부정적인 뜻이 아니다.”

표준 의약품과 ‘충돌한다’는 의미가 뭔가. 약을 섞어 쓰지 말라는 건가.
“폐섬유증은 폐가 딱딱해져서 폐 기능을 잃는 병이다. 현재 이 병은 진행을 늦추는 의약품은 있지만 근본적 치료제가 없다. 우리가 개발하는 후보 물질은 폐섬유증 등을 일으키는 단백질(오토택신)만 골라내서 못 움직이게 막아내는 치료제에 해당한다. 이 병을 앓는 사람은 표준 의약품을 복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표준 의약품과 우리가 개발하는 신약을 함께 복용했을 때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지 확인하라는 것이다.”

그런 확인 절차는 기초적인 내용 아닌가.
“맞다. 그래서 FDA의 회신을 받은 직후엔 ‘작은 바이오벤처라고 무시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FDA의 이런 권고는 우리와 같은 계열의 선두 물질(GLPG1690)을 개발하던 갈라파고스가 올해 2월 임상 3상을 중단한 것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라파고스가 임상 3상을 중단한 것의 원인이 ‘의약품 충돌’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나.
“연말쯤 FDA에 면담을 다시 신청해 임상 2상 설계를 구체화하고, 임상시험계획(CTA)을 신청할 계획이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안전성 및 효력을 입증하면, 글로벌 대형사로의 기술이전 등도 자연스레 뒤따를 것이다. 이전 (베링거와) 기술이전 계약 규모(약 1조5000억원)와 비슷하거나, 더 큰 수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신약 개발 관련한 FDA와 면담(C타입 미팅) 방식도 궁금하다.
“FDA는 신약을 개발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개별 면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걸 미팅(meeting)이라고 한다. FDA에 면담 요청을 접수하면 60일 안에 회신을 주고, 회신받은 후 FDA가 요구하는 문서 등을 이메일 등으로 제출하면, 다시 FDA가 검토한 후 대면, 유선 또는 서면으로 답변한다. 우리는 서면(이메일)으로 면담을 했다.”

FDA는 면담에 따로 비용을 받지는 않나.
“받지 않는다. 그 대신 FDA의 정식 허가 심사 수수료가 34억원으로 매우 비싸다.”

FDA의 허가 수수료가 너무 비싼 것 아닌가. 식약처 수수료는 몇백만원 수준이다.
“식약처 허가 수수료는 약 887만원이다. 나는 오히려 이 금액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 신약 허가 심사 수수료가 너무 저렴하다 보니,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일단 신청부터 하고 본다. 허가 여부와 상관없이 신청해 놓고 보완하는 식이다. 식약처는 식약처대로 밀려드는 신청에 업무 과부하에 시달린다. 식약처가 허가 심사 수수료를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고, 거기에 맞춘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좋겠다.”

하지만 미국에서 허가받으려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나. 국내 제약사와 협업은 어떤가.
“기존에 치료제가 없는 분야의 신약은 소규모 임상만으로도 신속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신속 허가를 받은 후 대규모 임상을 하는 식이다. 이 경우 수백억원 내외로 도전이 가능하다. 국내 제약사보다는 글로벌 기업과 협업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바이오 사업 개발과 연구 기획 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가.
“LG화학에 입사해서 25년 동안 연구-기획-개발-사업 분야에 있었다. LG화학에 입사했을 때 외부 자문역으로 있었던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에게 많이 배웠다. 그 변호사와 함께 LG화학이 개발한 신약후보 물질 ‘팩티브’ 기술 수출, FDA 신청 과정을 다 겪었다. 1990년대 한국은 ‘바이오’라고 할 게 없었는데, 우리 물질이 좋으니 외국계 제약사들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고, 초특급 호텔을 잡아 줬다. 그때 깨달았다. ‘영어가 문제가 아니다. 좋은 물질만 개발해내면, 미국 그 어떤 회사도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글로벌 제약사 및 선진국 학계와 협업 네트워크, 고객사(빅파머 등 글로벌 기업) 니즈를 파악하는 방법도 배웠다. 세계 각국의 CRO(임상시험수탁기관), CMO(의약품위탁생산기관), 자문단 등 전문 네트워크는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