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간 한국코러스 대표 부산대 미생물학, 현 지엘라파 대표이사 회장
황재간 한국코러스 대표 부산대 미생물학, 현 지엘라파 대표이사 회장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시대, 정부는 한국을 글로벌 백신 허브(생산 기지)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2021년 SK바이오사이언스가 아스트라제네카(AZ)와 얀센 코로나19 백신을 위탁생산(CMO)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길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와 mRNA(메신저리보핵산) 방식의 백신 생산 계약을 했다.

한국코러스는 이보다 앞선 지난 2020년 러시아가 개발한 스푸트니크V(스푸니크) 백신 생산 계약을 맺으며 ‘K-글로벌 백신 허브’의 신호탄을 쐈다. 스푸트니크 백신은 인간 아데노바이러스를 전달체로 활용하는데, 이 중에서도 한국코러스가 생산하는 라이트 백신은 1회만 접종해도 80~90%의 코로나19 예방효과를 보여 백신 소외국들의 관심이 높다. 황재간 한국코러스 회장을 2021년 12월 17일 서울 문래동 한국코러스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최근 한국코러스에서 생산한 스푸트니크 백신이 최종 품질 인증을 받은 것으로 안다. 언제 러시아로 수출하나.
“완제품(DP) 230만 도스를 러시아의 가말라야연구소에 보내 품질 인증을 받은 건 2021년 11월 첫째 주 얘기다. 정식 출고가 한 달째 늦어지고 있다.”

출고가 늦어지는 이유는.
“러시아 현지 공급에 필요한 제조소 등록 과정을 밟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스푸트니크 백신은 수출용으로 쓰일 것이기 때문에 러시아 제조소 등록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러시아 정부에서 제조소 등록을 요청해 왔다. 러시아 정부가 우리가 생산한 백신을 자국에 쓰려는 것으로 보인다. 제조소 등록 여부는 걱정하지 않는데, 시간이 문제다.”

‘시간이 문제’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2021년 11월 첫째 주 최종 품질 인증 공문을 받았을 때만 해도, 곧바로 정식 출고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백신을 바로 출고할 수 있게 준비까지 해 뒀다. 그런데 여기에 연말 연휴까지 겹치면서 올스톱됐다.”

러시아 정부는 한국과 시스템이 좀 다른가.
“스푸트니크 백신을 두고 러시아 6개 정부 부처가 얽혀 있다. 백신 개발은 한국의 국립보건연구원과 같은 ‘가말라야 연구소’가 했고, 상용화는 러시아국부펀드(RDIF)가 하고 있다. GMP 허가는 보건부(MOH)가 맡고 있고, 수출입은 무역부(MOT)에서 한다. 기술 이전이나 기술 검증은 또 다른 부처가 한다. 이런 복잡한 구조를 뚫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대안은 없나.
“자체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국내 생산한 스푸트니크 백신의 구매 의사를 타진했더니 몇몇 국가에서 ‘받겠다’는 응답을 했다. 당장은 한국코러스에 백신 판매 권한이 없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러시아 정부 측에 제조소 등록을 하지 않고, 판매할 수 있도록 의사를 타진해 놓은 상태다.”

‘백신을 받겠다’고 답한 국가가 어디인가.
“아랍에미리트(UAE), 아르헨티나, 동유럽 국가에 (백신 생산) 초도 물량이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국제 비정부기구(NGO) 단체에서도 백신 구매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러시아 정부 쪽 반응은 어떤가.
“한국코러스가 자체 수출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국코러스는 지난해 러시아 정부와 스푸트니크 백신 CMO 계약을 맺을 때 국내 바이오 중소기업 5곳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계약을 따냈다. 이수앱지스와 제테마는 원료의약품 생산(DS)을, 종근당바이오·큐라티스·보령바이오파마는 완제의약품 생산(DP)을 각각 맡아 6억5000만 도스의 백신을 생산하기로 했다.

컨소시엄을 구성한 이유는 뭐였나.
“스푸트니크 백신을 6억5000만 도스까지 생산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받지 않으면 그 물량을 인도 기업이 받아 갈 상황이었다. 그래서 국내에서 교류하던 바이오 기업과 의기투합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스푸트니크 백신이 언론에 오르내리며, 한국에 기술력 있는 중소 바이오 업체들의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기대만큼 효과가 있었나.
“그렇다고 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과 비교하면 한국코러스는 이름 없는 회사였다. 지금은 ‘한국코러스’라고 하면 스푸트니크 백신을 만드는 회사라고 알아본다.”

대웅바이오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창업했는데 계기가 있었나.
“대기업에 소속돼 일하는 것은 재미없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은 벤처 붐이 한창이었다. 유전공학의 가능성을 보고, 호주 시드니대학으로 유학까지 갔다. 공부는 흥미가 없어서 돌아왔지만, 헬스케어 산업의 미래를 봤다. 그래서 줄기세포 1호 벤처기업을 만들었다. 장래성도 있어 보였다.”

이렇게 회사를 일구기까지 고생도 많았을 것 같다.
“첫 벤처는 큰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후에 우연찮게 의약품 수출에 발을 들이게 됐다. 국내 제약사 가운데 수출에 관심 있는 기업이 많지 않았다. 그러니 가방을 싸 들고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면서 국내 의약품을 알렸다.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으면 물건은 팔 수 있다. 한국 의약품 가격은 저렴하고, 품질이 좋다.”

맨땅에서 물건을 파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나는 그런 것들이 적성에 맞았다. 그때 영문 서류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의약품 수출을 해 본 사람이 없으니, 내가 직접 등록 서류를 작성해 내야 했다. 대웅바이오 재직 당시 독일 제약사로부터 품목 도입(라이선스 인) 절차를 담당한 것이 큰 밑천이 됐다. 독일 제약사에서 파견 온 외국인 등록 전문가가 통역했는데, 그때 의약품 등록 서류 서식 하나하나를 배웠다.”

글로벌 백신 허브를 추진하는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
“K바이오는 혼자만 잘났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 나라의 바이오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한국도 바이오 인프라를 좀 더 육성해야 한다. 이번에 스푸트니크 백신을 생산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한국은 백신 기초 소재를 만드는 기업이 없다. 바이러스와 미생물 배양할 때 배지가 필요하고, 정제하려면 레진도 필요하다. 그런데 국내에는 씨가 말랐다. 전부 수입해 쓴다.”

스푸트니크 백신 생산 과정이 힘들었겠다.
“웬만한 상황에서 원·부자재 조달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는 백신 만드는 원·부자재 구하는 일이 사실 너무 힘들었다. 국제 정세도 아마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스푸트니크 백신도 미국산 원·부자재를 썼는데, 막상 상업화가 되니까 미국 (원·부자재 생산) 기업들이 공급을 끊어버리더라. 미국 정부가 백신 원·부자재를 전략 물자로 취급하면서 상황이 곤란해졌다.”

정부의 K바이오 육성책 성공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다국적 제약사와 대결해 한국이 신약을 개발해서 허브가 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물론 CMO는 가능성이 있다. 다만 바이오는 반도체보다 원·부자재 부문에서 취약하다. 셀트리온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곳도 배지나 필터를 수입해 쓰는데, 만약에 공급이 중단되면 생산은 올스톱된다. 그러니 (허브가 되려고 한다면) 핵심으로 가져갈 기본 품목들을 정부가 육성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