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근 경희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경희대 의대, 현 경희의료원 신경외과 중환자실 실장, 현 대한뇌혈관외과학회 총무이사, 현 대한뇌종양학회지 심사위원 사진 최정석 기자
최석근 경희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경희대 의대, 현 경희의료원 신경외과 중환자실 실장, 현 대한뇌혈관외과학회 총무이사, 현 대한뇌종양학회지 심사위원 사진 최정석 기자

서울 회기동에 있는 경희의료원 감마나이프 센터에는 병원을 방문한 ‘뇌동정맥 기형’ 환자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이후 상태가 얼마나 호전됐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수천 건 쌓여있다. 최석근 경희의료원 신경외과 교수와 그의 스승인 임영진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원장(전 경희의료원 신경외과 교수)이 지난 30년간 모아온 것으로, 국내에서 독보적인 수준이다. 최석근 교수는 “감마나이프 수술로 뇌동정맥 기형을 고치려면 긴 시간 환자 상태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추적 가능한 데이터를 쌓는 게 중요하다”며 “경희의료원이 완치까지 10년 넘게 걸리는 환자도 끝까지 쫓아가 뇌동정맥 기형을 고쳐낼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말했다.

뇌동정맥 기형은 임신부 배속 수정란이 세포 분화하는 과정에서 혈관 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뇌 속 동맥과 정맥을 잇는 모세혈관 없이 태어나는 병이다. 1000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희소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모세혈관이 없으면 동맥의 강한 혈압이 정맥에 그대로 전달돼 쇼크나 혼절, 심하게는 뇌출혈까지 발생할 수 있다. 뇌동정맥 기형이 ‘머릿속 시한폭탄’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러한 뇌동정맥 기형을 ‘감마나이프’라는 장비로 수술·치료하는 데 있어 최석근 교수는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감마나이프는 인체에 무해한 얇은 방사선 줄기를 몸속 한 지점에 수십에서 수백 개씩 교차시켜 병변(病變)을 파괴하는 장비다. 돋보기로 태양열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원리와 같다. 뇌동정맥 기형 수술에서는 ‘혈압이 너무 높아 막아야 하는 혈관’을 병변으로 설정한다. 이곳에 감마나이프가 방사선을 쏴서 상처를 내면 해당 혈관에 새 살이 돋기 시작해 나중에는 아예 혈관이 막히게 된다.

혈관이 십 년 안팎에 걸쳐 서서히 막히면, 혈관 속 피가 평소 지나가던 혈관이 막히는 상황에 천천히 적응하면서 주변 다른 혈관으로 경로를 바꾼다. 압력이 치명적으로 높은 혈관이 막히고, 그곳을 지나던 피가 다른 혈관들로 흐르면서 압력이 분산되는 것이다.

경희의료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최석근 교수에게 감마나이프 수술을 받은 뇌동정맥 기형 환자 105명 중 104명이 현재 정상적으로 생활 중이다. 76명(72.8%)은 뇌동정맥 기형이 사실상 완치됐으며, 28명은 병변 크기가 두드러지게 줄어들었다. 최석근 교수팀은 현재 뇌동정맥 기형 사례 중 ‘거대 병변’을 치료하는 방법을 만들며 기존 감마나이프 수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최 교수를 1월 6일 경희의료원 감마나이프 센터에서 만났다.


뇌동정맥 기형은 어떤 병인가.
“수정란이 분화하며 태아가 될 때 혈관 분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뇌 속에 동맥과 정맥을 이어주는 모세혈관 없이 태어나는 병이다. 부모에게서 유전되는 질병은 아니다. 혈관 분화가 정상적으로 되지 않는 이유도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말 그대로 ‘기형’인 것이다.”

뇌동정맥 기형 환자는 어떤 증상을 보이나.
“피는 혈관을 흐르면서 몸 곳곳에 산소와 영양분을 준다. 이게 정상 작동하려면 혈압이 너무 높거나, 피가 흐르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안 된다. 그 압력과 속도를 조절해주는 게 모세혈관이다. 그런데 모세혈관이 없어 동맥에서 정맥으로 피가 넘어갈 때 제대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혼절이나 쇼크가 와서 쓰러질 수 있다. 또 혈관 특정 부위에 오랫동안 높은 혈압이 쏠리면 터져서 뇌출혈이 오기도 한다.”

‘감마나이프 수술’은 어떻게 뇌동정맥 기형을 치료하나.
“뇌동정맥 환자의 뇌혈관을 엑스(X)레이 촬영으로 보면 동맥과 정맥이 한곳에 둥글게 뭉쳐 꽁꽁 엉켜있다. 모세혈관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여기서 혈압이 너무 높아 막아야 하는 혈관, 즉 병변을 찾아 방사선을 어디, 얼마나 쏠지 정한다. 이후 얇은 방사선 줄기들을 한곳에 모으도록 특수 제작된 헬멧을 환자 머리에 씌우고 수술을 시작한다. 혈관 벽에 방사선을 쬐면 상처가 생기고, 여기에 새 살이 돋아 ‘비후(어떤 조직이나 기관이 과형성돼 크고 두툼해진 상태)’가 발생하면서 혈관이 천천히 막힌다. 혈관이 완전히 막힐 때까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넘게 걸린다. 그 과정에서 평소 지나가던 혈관이 막히는 상황에 피가 알아서 적응하고 다른 혈관 쪽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이러면 몇 년에 걸쳐 혈류(피의 흐름)가 재편되고 혈압이 분산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진다. 쉽게 말해 어느 날 갑자기 6차선 도로에서 차선 4개를 한꺼번에 없애면 항상 그 도로를 지나던 차들이 큰 혼란에 빠지고 정체도 심해질 거다. 그런데 차선을 6개월에 하나씩 줄여나가면 차들이 알아서 다른 경로를 찾아 빠져나가게 된다. 감마나이프로 뇌동정맥 기형을 치료하는 건 그런 원리다.”

감마나이프 수술로 뇌동정맥 기형을 치료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첫째는 방사선을 통과시킬 병변을 정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병변 면적을 너무 크게 잡고 방사선을 쏘면 혈압이 높은 혈관 주변에 있던 정상적인 혈관들까지 상처를 입고 막히게 되면서 뇌 혈압이 역으로 더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압력이 과하게 몰리는 혈관 부위를 정확히 포착해서 방사선 타격을 가해야 한다. 둘째는 데이터 축적이다. 뇌동정맥 기형은 감마나이프 수술이 끝나자마자 바로 없어지는 게 아니다. 혈관이 막히면서 혈류가 완전히 재편되는 데 10년 안팎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완치를 위해선 말 그대로 환자를 계속 쫓으며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

30년간 뇌동정맥 기형 환자 데이터를 쌓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1992년 경희의료원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감마나이프 장비를 들인 이후부터 스승인 임영진 교수가 축적한 데이터다. 임 교수가 모아온 데이터를 물려받아 10년 넘게 더 쌓아 올렸다. 환자 한 명을 고치는 데도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뇌동정맥 기형이라는 병 자체를 공략하기 위해 데이터를 모아왔다. 어떻게 생긴 병변에 어느 정도 세기로 방사선을 쐈더니 몇 년 후 어떻게 되더라. 그런 형태의 데이터를 30년간 모아온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단순히 수술하는 걸 넘어 뇌동정맥 기형이라는 병 자체를 연구할 수 있다. 환자 수술 데이터와 치료 노하우를 동시에 쌓아온 셈이다.”

감마나이프 이외에 뇌동정맥 기형을 치료할 수 있는 수술법은 없나.
“미세수술, 즉 직접 머리를 여는 개두술을 통해 물리적으로 혈관을 막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뇌에 손상을 줄 가능성이 커 잘 쓰지 않는다. 이외에 색전술(색전 물질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혈류를 막는 수술법)을 쓰기도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뇌동정맥 기형을 치료할 수 없어 보조 역할로만 이용한다. 결국 뇌에 직접 손상을 줄 가능성이 매우 작으면서 병변만 확실히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은 감마나이프뿐이다. 감마나이프는 전신마취도 필요 없기 때문에 여러모로 환자 입장에서 편리하고 안전하다.”

감마나이프 수술 적응증을 ‘거대 병변’으로까지 늘리고 있다던데.
“거대 병변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게 감마나이프의 한계였다. 병변이 커지면 환자에게 쏴야 할 방사선 줄기들도 넓어져야 하는데, 이러면 병변뿐만 아니라 방사선이 통과하는 모든 뇌 조직에 피해가 갈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첫째로 병변을 분할해서 하나씩만 방사선으로 타격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10인치짜리 병변을 5인치씩 둘로 나눠 감마나이프 수술을 두 번 진행하는 것이다. 둘째는 색전술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색전술로 혈관 일부를 물리적으로 막으면 병변 크기가 줄어든다. 병변이 작아지면 감마나이프를 사용하기가 쉽고 안전해진다. 방사선 줄기들을 얇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어서다. 이런 방법들에 대해 현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환자를 장기 추적할 수 있다는 건 뒤집어 말해서 결국 전부 다 완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술과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분들 머릿속 병변을 끝까지 쫓아가서 확인 사살해나가는 게 목표다.”

최정석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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