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욱 마장뮤직앤픽처스 대표현 한국대중음악산업학회 상임이사,전 ‘레코드포럼’ 기자, 전 EBS ‘스페이스 공감’ 음악 감독, 전 국립오페라단 제작 감독 사진 마장뮤직앤픽처스
하종욱 마장뮤직앤픽처스 대표현 한국대중음악산업학회 상임이사,전 ‘레코드포럼’ 기자, 전 EBS ‘스페이스 공감’ 음악 감독, 전 국립오페라단 제작 감독 사진 마장뮤직앤픽처스

“‘지지직’ 소리를 기다릴 때의 설렘이 있다. 그 감성을 국내에도 다시 들여오고 싶어 2017년에 공장을 열었다.” 국내 유일 LP 제작 공장 ‘마장뮤직앤픽처스’의 하종욱 대표는 최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국내 LP 생산 시스템을 재구축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하 대표는 “공장 가동 3년 후인 2020년 하반기부터 레코드판으로 불리는 LP(Long Playing Record·장시간 음반) 산업이 역동성을 되찾았다”며 “한 음원당 500장씩 주문하던 수량이 1만 장 이상으로 급증했다”고 전했다. 하 대표는 아날로그 사운드 마니아다. 학창시절부터 LP를 하나씩 사기 시작해 현재 3만 장 이상의 LP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2017년 6월, 국내 LP 생산 시스템의 부활을 꿈꾸며 서울 마장동 녹음 스튜디오와 성수동 공장을 열었다. 2004년 음반 제작사 서라벌레코드가 사업을 접으면서 국내 LP 생산이 중단된 지 13년 만이었다.

마장뮤직앤픽처스는 카세트테이프, CD, 디지털 스트리밍의 등장으로 좁아진 LP의 영역을 계속 확장시켜 왔다. 2017년 2만 장이던 생산량이 2021년 10배 수준인 약 20만 장을 기록했다. 사업 초반에는 록의 대부 신중현, 가왕(歌王) 조용필 등 LP에 친숙했던 1960~70년대 가수들이 이곳을 찾았다면, 최근에는 ‘쿨하고 힙한 것’으로 낡은 매체인 LP를 즐기는 젊은 세대가 늘면서 감성 싱어송라이터 백예린과 크러쉬까지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해외 LP 시장도 성장세다. 음악 판매 데이터 제공 업체 MRC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앨범 판매량은 2007년 5억100만 장에서 2021년 1억900만 장으로 78.2% 줄어든 반면 LP 판매량은 2007년 250만 장에서 2021년 4170만 장으로 15.7배 늘었다. 하 대표는 젊은층이 LP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비대면 시대에 음악과 직접 접촉하고 소통하고, 만지고, 소유할 수 있는 경험이 주는 신선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LP 산업 침체기에 공장을 차린 이유는.
“20여 년 전부터 벨포닉스라는 음반 제작사가 있었다. 그곳을 이끌던 사람들이 마장동 스튜디오와 성수동 공장을 인수했다. 개인적으로 아날로그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해외 LP 시장이 이미 ‘제 2의 전성기’를 맞은 걸 보고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렇게 2016년 벨포닉스에 합류했고, 2017년에 국내 유일 LP 커팅(공디스크에 소릿골을 새기는 작업) 엔지니어인 백희성 엔지니어와 함께 본격적으로 사업 론칭에 돌입했다. 그의 오랜 노하우를 믿고 국내 LP 산업 복원에 도전하고 싶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LP는 전부 이곳에서 제작되는 건가.
“우리가 유일하게 LP 생산의 모든 공정을 보유한 업체이기 때문에 국내 LP는 전부 우리를 거친다. 지금은 폭주하는 주문량에 미처 소화하지 못하는 물량들은 체코, 독일, 중국, 일본 등에 맡겨 생산하고 있다. 앞으로 생산라인을 좀 더 넓히고 좋은 품질과 합리적인 비용으로 해외에서 제작되고 있는 수량들이 국내에서도 생산, 유통, 소비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LP 커팅 작업. 사진 마장뮤직앤픽처스
LP 커팅 작업. 사진 마장뮤직앤픽처스

디지털 시대, LP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나.
“LP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여기에 쏟은 열정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은 LP 생산 시설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었지만 우리는 지난 10여 년 사이에 시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기술을 복원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무수한 불량을 극복하면서 최상의 품질이 나올 수 있는 조건값(온도, 압력, 균일도, 가열, 냉각 시점 등)을 찾았다. 또 수입산 프레스 기계가 아닌 우리만의 설비를 만들고자 직원들과 밤낮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LP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여러 업체들과 기술 제휴을 했고, 수많은 연구와 시도를 거듭한 끝에 마장뮤직앤픽처스의 존재와 성과를 직접 알릴 수 있었다. 그때부터 응원과 지지, 창작자들과 기획사의 문의가 서서히 들어왔다.”

LP의 특별함은.
“LP는 몹시 까칠하고 오만한 기록 매체다. 관리도 어렵고 쉽게 손상된다. 하지만 CD, MP3, 스트리밍이 담지 못하는 자연스러운 음색, 윤기, 밀도가 있다. 또 LP는 추억과 향수의 ‘다시 듣기’ 상품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따라 소리가 미세하게 달라지는 ‘처음 듣기’의 상품이다. 음악을 ‘듣는’ 행위에 ‘소유하고 만지는’ 행위가 더해지기 때문에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젊은 세대가 LP 수집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 네이티브(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가 LP에 열광하는 이유는 LP는 생소하지만 신선한 문화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는 음질이 ‘다르다’라는 기준에서 시작된다. 카트리지 바늘이 LP의 소릿골에 닿아 자아내는 백그라운드 노이즈까지 LP는 풍부하고 섬세한 소리를 담고 있다. 디지털이 포착하지 못하는 밀도와 자연스러움이 있는 것이다. 디지털 매체로 느낄 수 없는 ‘접촉의 경험’이 있다.”

LP의 인기를 체감하나.
“‘메이드 인 코리아’ LP의 명맥이 뚝 끊겼던 터라 초반에는 주문이 많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인기를 체감하게 된 시점은 2020년 하반기부터다. 한 음원당 500장씩 주문받던 물량이 1만 장 이상으로 확대됐다. 2021년 매출은 공장 설립 첫해인 2017년 대비 약 5배 성장했다. 올해에도 현재 주문량이 약 6개월가량 예약 대기 중인 상황이다. 2020년 6월부터 해오던 1일 2교대, 야간 근무를 멈출 수가 없다. 시장 흐름과 LP 품질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인기는 계속될 것 같다.”

국내 LP 시장에도 ‘제2의 전성기’가 온 건가.
“아직 시행착오와 과도기의 과정을 겪고 있다고 본다. 해외 시장에 비해 한국은 명백히 후발 주자다. 미국과 유럽, 일본 음악 소비자들에게 LP 부활 현상은 2010년 즈음 시작되어 꽤 시간이 지났다. 워낙 인디 음악 문화가 발달해 있어 LP 마니아층이 두껍다. LP 산업이 쇠퇴할 때에도 생산 시설을 그대로 유지한 덕분에 산업이 빠르게 회복했다. 국내는 2019년부터 비로소 인기가 가시화됐다. 이럴 때일수록 소비자들의 니즈를 잘 파악해야 한다. 리셀러들의 사재기 현상,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모든 음반이 소중하지만 아무래도 첫 프로젝트에 애정이 크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조동진 선생님과 작업한 ‘나무가 되어’다. 직접 발품 팔아서 의뢰를 맡길 수 있도록 선생님께 의지와 노력을 설명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다. 이후 아티스트와 함께 만들어간다는 마음으로 조동진 선생님의 동생 조동익님의 ‘어떤날’ 1, 2집 LP 발매도 계약할 수 있었다.”

앞으로 사업 계획은.
“자동화 기계를 개발하고 신규 공장을 열어 대량 생산 라인을 늘리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해외 업체에 맡긴 물량을 국내에서 100% 생산하기 위해서다. 또 마장뮤직앤픽처스에서 자체 제작한 자동화 프레스 기계를 현재 테스트 중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이를 생산 과정에 직접 적용해 매출을 더 끌어올릴 생각이다. ‘음악을 새깁니다’라는 회사 문구에 맞게 커팅부터 포장 단계까지 음악을 정성으로 새겨 국내 LP 시장을 이끌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아시아 최대 LP 생산 시설 구축, 코넥스 상장까지 바라보고 있다.”

김혜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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