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한국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 학사, 서울대 행정학 석사,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30회,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1차관 3월 2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빌딩에서 김용범 전 기재부 1차관이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김용범 한국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 학사, 서울대 행정학 석사,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30회,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1차관
3월 2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빌딩에서 김용범 전 기재부 1차관이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막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3월. 김용범 한국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이하 김 전 차관)은 기획재정부(기재부) 1차관으로서 당시 거시경제 정책을 총괄하고 있었다. 그는 금융시장 동향을 살피다 등에서 식은땀 한줄기가 흘렀다고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시장에 거대한 충격을 줬던 리먼 브러더스 사태의 전조 증상을 한국 여의도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이 주력 상품으로 판매했던 주가연계증권(ELS)에 문제가 생겼다. ELS는 미국, 홍콩, 유럽 등 세계 주요 지수에 연계된 상품이다. 연계 지수가 30% 가까이 폭락해 한국 증권사들은 돈을 맡겼던 해외 운용사로부터 대규모의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입 통지)을 받았다. 위기에 빠진 증권사들은 정부를 찾았고, 기재부와 금융 당국이 전체 증권사의 ELS 판매 현황을 정리하며 위기가 닥칠 경우를 대비하고 있었다.

김 전 차관은 “증권사 사장들을 급히 만나 ‘ELS 팔면 몇억원씩 인센티브 받는 직원들 말에 현혹되지 말고,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라. 회사가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는 일’이라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2020년 3월 원·달러 환율은 1300원에 육박, 외환시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순간 ‘한·미 통화 스와프’라는 낭보가 날아들었고,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았다. 김 전 차관은 “지수가 30%, 40%씩 하락하는 현상은 역사적으로 드물기에, 제아무리 한국 최상위 증권사들일지라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플레, 오래 지속될 가능성 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위기 상황에서 거시경제 정책을 이끌었던 김 전 차관을 3월 24일 만났다. 그는 최근 ‘격변과 균형’이라는 책을 내고 팬데믹 초기 한국 정부의 대응과 그가 느꼈던 위기감을 소상히 기록했다. 그는 “경제 성장 속도는 줄어들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오래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며 “공급 측면의 쇼크로 인해 1970년대와 유사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 속 지속적인 물가 상승)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현상에 불과할 것이라 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거시경제 진단 능력에 대한 믿음이 상당히 손상된 상황”이라며 “팬데믹이 끝나면 오히려 그동안 긴장하느라 참았던 수요가 폭발하고, 역설적으로 다방면에서 복합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의 원·달러 환율 상승에 대해서 김 전 차관은 위기의 강도에 비해 과도하지 않다고 봤다. 코로나19에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쳤는데, 이 정도면 양호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주가에는 위기 상황이 덜 반영됐다”고 진단했다. 채권시장은 블룸버그 인덱스 기준 리먼 브러더스 때보다 더 많이 하락했는데, 이에 비하면 주식시장에서의 충격은 덜하다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19 초반 상황이 2002~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세계적으로 확산했을 때를 연상시켰다고 했다. 당시 김 전 차관은 세계은행(WB)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하며 200여 명이 모이는 콘퍼런스를 주관했었는데, 중국 정부가 사스 확산 소식을 전하지 않아 뒤늦게 알게 됐던 사례를 떠올렸다. 

그는 “환율이 10원 떨어졌을 때, 원인 분석을 하다 당시 실무자가 ‘우한폐렴(당시 코로나19 명칭)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홍콩 외환시장에 쫙 퍼졌다’고 전해왔다”며 “코로나19도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대외적으로 발표한 것보다 상황이 심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때 머릿속을 스치면서, 국제 금융 라인에 ‘비상’ 체제를 주문했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아주 작은, 사소한 소식까지 전부 보고받았다. 트위터를 활용해 세계의 감염병 학자들과 중국 외신 특파원들의 소식을 꼼꼼히 챙겼다. 김 전 차관은 그의 대학 동기인 김상조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코로나19가 심상치 않으니 꼭 살펴야 한다”고 전했다. 마스크 부족이 본격적으로 이슈화되기 전, 기재부 국제금융국에 세계 각국의 사례 조사를 지시했다. 사람별로 마스크를 제한해 구매할 수 있는 구조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스템을 활용해 이틀 만에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선제적인 대응 덕이었다. 


분명 위기인데, 美 국채 가격이 하락

김 전 차관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과거의 경험에 따른 분석 틀, 패러다임이 맞지 않을 수 있다”며 “지금은 정성적인 판단이 필요하고, 정책 담당자의 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국채 가격이 떨어진 것은 과거의 패러다임이 들어맞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다. 보통 경제 위기 때는 시장 참가자들이 전부 안전 자산인 국채를 사려 하기 때문에, 국채 금리는 떨어지고 가격은 비싸진다. 안전 자산으로 함께 분류되는 달러화에도 수요가 몰린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시기, 미국 국채 가격이 떨어졌다. 김 전 차관은 “이런 현상은 처음 봤다”며 “훈련된 믿음이 깨지자 공포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시장이 흔들렸던 신흥국에서 그 어떤 자산을 내놓아도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다 보니,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라도 팔겠다며 내놓아서 이런 일이 발생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50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지원 관련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있어 그는 “지체된 손실 보상을 해결하는 성격”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경제 충격의 정도가 불균등했기 때문에, 이를 어느 정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는 의미다. 원격 근무가 가능했거나 공장을 돌릴 수 있었던 상장사는 이익을 더 많이 낸 반면,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자산 가격이 급등해 자산가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 격차도 무척 커졌다.

김 전 차관은 “국내총생산(GDP)을 효율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이나 재정 승수 같은 말보다는 지극히 불균등했던 충격을 완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양극화가 심해진 상황에서 에너지, 식료품 가격이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정책이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보다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야 더 적합할 수 있다고도 봤다. 그는 “팬데믹이 모든 걸 지배했는데 경제학자가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라며 “당시 위기 상황에서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찾아봤는데, 감염병 학자들의 의견이 가장 정확했다”고 설명했다.

이민아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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