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 서울대 외교학, 미 인디애나대 블루밍턴 정치학 박사,현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사진 김상배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 서울대 외교학, 미 인디애나대 블루밍턴 정치학 박사,현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사진 김상배

‘탈(脫)세계화’ 굉음이 요란하다. 미·중 경쟁이 고조되는 가운데,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등 대내외 충격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사이버 전쟁, 데이터 주권화, 인공지능(AI) 및 우주 선점 경쟁 등 디지털이라는 새 변수가 국제 사회를 흔들고 있다.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유행했던 고전적 지정학만으로 ‘시계(視界) 제로’인 국제 정세의 향배를 탐지하기 어렵다. 

탈세계화, 미·중 경쟁, 디지털이라는 삼각 파고(波高)의 흐름을 거시적, 미시적으로 진단하는 전문가의 심층 인터뷰를 연속으로 게재한다. 첫 번째 인터뷰는 김상배(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과 진행했다. 

그는 4월 6일 출간한 저서 ‘미·중 디지털 패권 경쟁’에서 “국가 간 기술 경쟁이 국가 안보 문제로 비화하고, 이는 국제 사회의 권력 구조까지 바꾸는 ‘디지털 패권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정학의 귀환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구화(세계화)의 역풍이 불어닥친 결과다. 이미 2019년 다보스 포럼에서 불균등한 성장이 정치적 갈등과 지정학적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렇다고 로널드 레이건 시대의 냉전 프레임으로 상황을 인식하는 것은 문제다. 제품 생산·소비의 글로벌화가 구조적으로 자리 잡았고 탈지정학 성격의 사이버 공간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합지정학의 관점이 필요하다.”

복합지정학에선 권력 게임의 룰(규칙)을 다르게 보나.
“‘자원 권력’의 게임이 아닌 ‘네트워크 권력’의 게임으로 본다. 국가를 단일 행위자 모델이 아닌, 네트워크 국가(network state) 모델로 본다는 뜻이다. 중앙 정부, 지방 정부, 다국적 기업, 금융 자본, 글로벌 싱크탱크와 초국적 시민운동단체, 테러단체 등이 연대하고 흩어지면서 세력을 만든다. 최근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달라진 게임의 규칙을 잘 보여준다.”

왜 그런가. 
“우크라이나가 혼자 싸우는 게 아니다. 미국·서유럽의 나토(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동맹, 국제 사회 네트워크가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러시아 사이버 공격 부대와 수많은 자발적인 해커가 대결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 빅테크의 참전이다. 스페이스X는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를 제공하고 구글과 트위터는 러시아발 가짜 뉴스 차단에 나섰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까지 나서 위성 관측 사진을 제공하지 않았나. 희극 배우 출신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여론전까지 더해져 속전속결로 끝내겠다는 러시아의 전략이 거센 저항을 받고 있다.”

미·중 경쟁도 가속화하고 물가도 크게 오르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안보 위협론을 확산하는 데 성공을 거둔 뒤, 실제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까지 나서고 있다. 화웨이 장비에 백도어(해킹 구멍)가 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신흥 기술과 결합한 안보 이슈는 (새롭기 때문에) 담론만으로도 현실을 재구성하는 위력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안보를 챙겨야 한다는 프레임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동안 삼성·SK·LG 등 주요 기업들이 중국에 거점 공장을 확대해 왔는데.
“앞으로는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차세대 기술 및 제품 생산 생태계에서 배제하겠다는 게 미국의 가이드라인이다. 

중국은 기술 자립과 내수 시장 강화에 매진할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 시장 진출 기회가 줄어드는 셈이다. 기업은 기술 이슈가 외교·안보, 동맹의 이슈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정부도 민간 영역의 안보 이슈를 챙겨야 한다.”

최근 저서에서 미·중 경쟁을 디지털 패권 전쟁으로 정리했다.
“5세대(5G) 통신, 반도체, 배터리, 백신 등 신흥 기술을 둘러싼 경쟁은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 이슈로 비화하고 있다. AI를 탑재한 무기 체계, 양자 기술의 군사적 활용, 극초음속 미사일 도입 등이 안보 쟁점이 됐다. 앞으로 인터넷도 둘로 쪼개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가까운 국가들은 미국 주도의 인터넷을, 중국과 가까운 국가들은 중국 주도의 인터넷을 쓸 것이다. 중국 인터넷은 천망(天网·CCTV 감시망)에서 보듯 위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디지털 천하 질서’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식 인터넷 모델은 일대일로(一带一路·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다만, 중국이 매력의 문턱을 넘어 보편성을 획득한 제국으로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의 편파 판정, 코로나19의 봉쇄 조치 이후 반중(反中) 정서가 들끓고 있다.”

신흥 안보(emerging security)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복잡계 이론의 ‘창발(emergence)’이라는 개념을 원용해 국제 정치를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 2015년 무렵이다. ‘행동(action)-반응(reaction)’의 단순한 안보 개념으로는 기후 변화, 미세먼지, 난민, 바이러스와 같은 이슈의 안보 해법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임계점을 넘어서면 물질의 성질이 바뀌는 것처럼 안보 이슈도 여러 사건이 혼합하며 대형 이슈로 발전하는 동태적 관점으로 봐야 한다. 이슈를 가로지르며 널리 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부 조정·관제 타워(control tower)가 필요한 이유다.”

대전환 시기에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보다 한국의 국익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경제 발전’과 ‘세계화’ 등의 슬로건이 낡았다. 디지털 플랫폼으로서의 경쟁력,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경쟁력을 보면 한국의 잠재력은 크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서구 진영과 비서구 진영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미들 파워(middle power)’가 된다면, 한국의 장기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 호에는 ‘행복한 감시 국가, 중국’의 공동 저자인 일본 고베대학 대학원 경제학연구과 가지타니 가이(梶谷懷)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됩니다.


plus point

‘66년 전통’ 한국국제정치학회, 국가 인터넷 전략 학술회의 개최

한국국제정치학회(KAIS)는 지난 3월과 4월에 걸쳐 ‘대전환 시대의 미래 국가 전략’이라는 주제로 네 차례 특별 학술회의를 열었다. 미·중 전략적 경쟁과 코로나19 출현이 전 지구적 질서를 바꿔놓는 가운데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백 년을 내다보는 국가 모델을 학회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국방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회미래연구원 및 국회외교통일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등이 공동 주최하거나 후원했다. 특히, 4월 7일 열린 학술회의에서는 ‘미래 국가 인터넷 전략의 방향 모색’을 주제로 비전통적 안보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1956년 창립한 한국국제정치학회는 사회과학 분야 최대 규모의 학회 중 하나다. 1961년 창간한 학회보 ‘국제정치논총’, 2010년부터 선보인 영문국제정치논총 ‘Korean Journal of International Studies(KJIS)’ 발간과 다양한 학술대회 개최로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정책과 여론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다. 2022년 현재 학자 및 국제 관계 전문가 200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며, 주제별 연구분과위원회는 국방·통상·미국·일본·중국·중동 등 23개에 달한다. 올 6월과 12월에도 미래 국가 전략에 방점을 둔 하계·연례 학술대회가 열린다.

류현정 조선일보 디지털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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