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영 건국대병원 교수 이화여대 의대, 이화여대 의대 신경과 박사, 현 건국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  현 대한신경과학회 학술이사 사진 김명지 기자
오지영 건국대병원 교수 이화여대 의대, 이화여대 의대 신경과 박사, 현 건국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 현 대한신경과학회 학술이사 사진 김명지 기자

작년 4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은 유산 26조원 가운데 현금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혔다. 7000억원은 감염병전문병원 건립에, 3000억원은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 환자를 위해 쓰기로 했다. 

그로부터 1년여 만인 5월 감염병전문병원 건립 사업이 윤곽을 드러냈다. 기부금을 받은 서울대병원은 소아암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인공지능(AI) 플랫폼 구축 사업을 시작했다.

어린이 희귀질환으로 기부를 받은 서울대병원을 그 누구보다 부러워하는 의사가 있다. 희귀질환 중에서도 극(極)희귀질환으로 분류되는 ‘hATTR(유전성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다발신경증)’을 진료하는 오지영 건국대병원 신경과 교수 얘기다. 

‘hATTR’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몸속 신경 세포에 비정상적으로 아밀로이드(단백질 찌꺼기)가 쌓여서 생기는 병이다. 처음에는 손발 저림, 설사 같은 작은 증상으로 시작해서 전신 마비, 심부전 등으로 급사(急死)한다. 초기 증상이 경미한데, 병의 진행 속도가 빠르다 보니 진단과 치료가 어렵다. 희귀질환 중에서도 특이한 경우지만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은 못 받았다. 의료계에선 이 병이 성인에게 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부분의 유전병은 영유아 때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 병은 성인이 된 후인 20~50대에 나타난다. 

‘자식이 희귀병에 걸리면, 부모가 정신을 잃지만, 부모가 희귀병에 걸리면 그 자식은 냉정해진다’는 말도 있다. 오 교수는 “‘희귀병 환자가 50세까지 살았으면 많이 산 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10년 전만 해도 치료제가 없는 난치병으로 통했지만, 2012년 글로벌 제약사인 화이자가 아밀로이드 축적을 늦추는 신약(빈다켈, 성분명 타파미디스)을 개발하면서 치료가 가능해졌다. 지난 2011년 국내에서 이 질환을 처음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한 오 교수를 5월 20일 서울 화양동 건국대병원 진료실에서 만났다.

hATTR은 어떤 병인가.
“전신에 아밀로이드가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는 병이다. 아밀로이드가 신경에 쌓이면 몸의 움직임에 이상이 오고, 심장에 쌓이면 부정맥으로 급사할 수 있다.”

초기 증상은 어떤 것들이 있나.
“양발이 저리고, 손목터널 증후군 같은 흔한 증상이 초반에 나타난다. 일어설 때 어지러운 증상과 잦은 설사 같은 증상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아밀로이드가 몸의 어느 부위에 쌓이느냐에 따라 증상이 달라서 딱 ‘이거’라고 할 만한 증상은 없다.”

hATTR 질환을 국내에서 처음 발견했다고 들었다.
“나도 내가 제일 처음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 ‘1980년대 우리나라에도 hATTR 질환이 있었다’는 학술 보고서를 찾았다. 다만 1980년대 당시에는 국내에 유전자 검사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아서, 진단은 못 한 것으로 안다. 내가 발견한 건 2011년이었다.”

첫 환자는 어떤 환자였나.
“말초 신경병증으로 내원한 50대 남성 환자였다. 이 환자가 이유 없이 혼절하는 등 자율 신경계에 이상 증상을 보였다. 여러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심장이 크게 부풀어 오른 것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10년 전이면 검사 자체도 어렵지 않았나.
“그 당시에는 상업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해 주는 곳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가톨릭대학에 기초연구를 하는 교수님을 찾아가서 검사를 받았다.”

그 당시에 치료제가 있었나.
“화이자 치료제(빈다켈)가 유럽 허가를 받고, 국내에 들어올 준비를 할 때쯤이었다.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약값이 연간 2억원 가량이 든다고 했다. 가격 때문에 약을 시도할 엄두는 못 냈다.”

병을 알아도 치료를 못 하는 상황인가.
“그렇다. 그런데 이런 환자에 대한 유전자 치료제 임상시험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약사의 제안에 앞뒤 재지 않고 곧바로 ‘임상에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그 환자가 임상에 참여했나.
“안타깝게도 그 전에 사망했다. 국내 임상 준비 과정이 1년 정도 걸렸는데, 그사이에 돌아가셨다. 이후 같은 질환을 앓는 환자의 형으로 임상을 시도하려고 했는데, 이분도 갑자기 사망했다.”

임상에는 국내 환자가 참여를 못 한 건가. 
“연거푸 환자를 놓치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부터 더 적극적으로 환자를 찾기 시작했다. 다른 병원에 연락해 비슷한 증상의 환자를 유전자 검사를 하고, 우리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첫 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보통 이런 유전 질환은 영유아 때부터 증상이 나타나지 않나.
“그래서 이 병이 어렵다. 증상이 20~50대에 처음 나타난다. 진료한 환자 중에서 가장 어린 환자는 15세 중학생이었는데, 병의 진행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치료제를 쓰기도 전에 사망했다.”

희귀질환인데, 사회적으로 그렇게 큰 주목은 못 받은 것 같다.
“hATTR은 성인이 다 되어서 증상이 나타난다. 남편이나 아내, 자식들이 환자를 열심히 돌보긴 하지만,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처럼 헌신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치료에 성공한 환자들도 있나.
“이 병은 치료하더라도 ‘성공’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애매하다. 현재까지 개발된 약이 병이 악화되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지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관리하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3년여 전쯤 조기 검진으로 초기 부터 치료제를 쓰기 시작한 환자가 있는데, 현재까지 아무런 증상 악화 없이 정상인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

환자들에게 약값이 부담이 되지는 않나.
“2018년부터 건강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약값의 10% 정도만 환자가 부담한다. 문제는 이런 건강보험 급여가 질환 초기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정작 치료제가 필요한 환자들은 약을 써 보지도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신경계 이상으로 내원한 환자 중에서, 상태가 악화해 심장에 문제가 생겨 사망하는 사람이 자꾸 나온다.”

건강보험 적용 조건이 까다로운가.
“크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자력으로 걸을 수 있어야 하고, 조직 검사에서 아밀로이드가 검출돼야 하며, 유전자 검사에서 변이가 나타나야 한다. 조직 검사가 문제다. 유전자 검사는 양성인데 조직 검사에서 아밀로이드가 검출되지 않아 네 번씩 검사를 받는 환자도 있었다. 몸속 어느 부위에 아밀로이드가 쌓이는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국제학회에서 만난 일본 대학병원 신경과 교수와의 일화를 들려줬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일본인 교수가 오 교수에게 한국에서 hATTR 환자 치료의 어려운 점을 질문하면서 시작됐다. 오 교수는 한국에서는 증상이 경미한 초기 환자들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답답하다고 말하면서 “한국 정부는 경제성 평가를 중요시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일본인 교수는 “환자들에게 치료제가 유일한 희망인데, 돈 때문에 그걸 뺏겠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오 교수는 그 답변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아찔했다고 한다. 5월 23일은 희귀질환 극복의 날이었다. 지난 2017년 희귀질환 관리법을 제정한 이후 올해로 벌써 6년째다. 우리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일지는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달렸다. 오 교수는 우리에게 말한다. ‘50세까지 살았으면 많이 살았다’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김명지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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